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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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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 가기가 겁난다- 영어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평소 영어를 거의 쓰지 않다가 갑자기 돌발상황에 맞닥뜨리면 말이 안나와 당황하기가 십상이다. 비근한 예로 이곳 현지 레스토랑에 가면 적잖이 곤혹스러운게 사실이다.

 

 수년 전 한국에서 친지가 다니러 온 적이 있었는데, 그분은 나름 외국음식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우리는 좀 괜찮은 스테이크 하우스에 데려갔다. 그런데 그분은 자기는 이곳 사정을 모르니 우리가  알아서 맛있는 메뉴를 시키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현지음식을 자주 먹어봐서 잘 알 거 아니냐는 것이다.

 

 이럴 때 평소 한국음식만 먹어온 내가 무슨 음식을 추천하고 주문할지 참 막막하기만 했다. 솔직히 이실직고 하며 “우리는 한국음식만 먹어서 잘 몰라요” 할까.

 

 속으로 비지땀이 흘렀다. 나는 도대체 이곳에 살면서 음식메뉴 하나도 제대로 주문하지 못한단 말인가. 나는 고시공부하듯 애꿎은 메뉴판만 뒤적거리고 있는데, 마침 아내가 재치있게 메뉴를 시켰다. 가정과 출신인지라 음식에 대한 상식이 있기 때문이다.

 

 Appetizer는 무엇에, 메인 메뉴는 고기를 어떻게 구워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슬그머니 “나도 그걸로 하지 뭐…” 하고 넘어갔다.

 

0…이런 상황에서 서양메뉴를 능숙하게 오더할 수 있는 한국인(이민 1세)이 얼마나 될까. 한식당에 가서도 무얼 먹을까 하면 대개 “아무거나!” 하는 습관이 있는데 복잡하기 짝없는 양식요리를 세세히 주문할 수 있는 한국인이 몇이나 될까 말이다. 그렇다고 한식당처럼 “Anything!”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일이 있은 후 나는 마음 속으로 다짐을 했다. 앞으로 혹시 서양 레스토랑에 갈 일이 있으면 아예 사전에 메뉴를 정해놓고 오더할 말도 미리 준비를 하자고. 그야말로 남들 앞에서 (개)망신 당하기 싫으면 그렇게라도 해야겠다고.

 

 특히 곤혹스러운 것은 한국에서 누가 왔을 때 그들을 이곳 레스토랑으로 안내했을 때다. 그들은 당연히 우리가 영어를 잘하고 서양음식도 잘 주문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텐데 실상은 이러한 것이다.   

 

0…언어는 필요이자 습관이다. 평소 영어를 사용해야 할 필요성이 절박하고 일상생활이 습관화돼야 하는데 우리는 정반대 환경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민 와서 5~10년 이내에 영어환경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멀어져간다. 동족끼리 어울리는 생활습관이 몸에 배는 것이다. 이민연조가 오래되신 어르신들이 더 언어장벽을 느끼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즉 이민연수(年數)와 영어습득은 오히려  반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캐나다에 그리 오래 사셨으면서 영어를 못하세요?”란 말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평생을 언어 불편자로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새로 이민 온 ‘프레시맨’들에게 가능한 현지사회와 어울려 살아갈 것을 권한다. 훗날  “내가 영어만 잘하면 뭐든지 자신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0…내가 아는 한국분 중에는 조준상 대표가 영어를 자연스럽게 잘한다. 40여년간 부동산 일을 하면서 현지인들과 소통해온 덕일 것이다.

 

 이처럼 영어가 늘려면 현지인과 자주 교류하고 영어로  대화해야 한다. 굳이 고차원적인 영어가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영어가 최고다.

 

 집에 자녀가 있으면 도움 좀 청하면 좋을 것이다. 나의 경우 둘째딸이 집에서 근무중이라 궁금한 영어가 나오면 수시로 물어본다. 마침 딸이 (나를 닮아서 그런지!) 언어재능과 감각이 있다. 영어는 물론이고 한국말도 아주 섬세한 표현까지 이해하고 있어 내가 무엇을 물어보면 정확하게 가르쳐준다. 

 

 두 언어 중 하나라도 어색하면 번역이나 통역을 해도 정확한 표현을 하기가 어려운 법인데 우리 딸은  뉘앙스까지 파악해내니 큰 도움이 된다.

 

 지난 주엔 골프를 치는데 앞서가는 조가 너무 더디게, 할 짓 다해가며 느리게 플레이를 했다. 그래서 지나가는 마샬(marshal)에게 “Those guys are so slow…”라고 불평을 했더니 그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가서 주의를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그런 complain이 왠지 어색해보였다. 그래서 집에 와서 딸에게 물어보았다. 이럴 땐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이에 딸은 “The group in front is holding us back”이라고 하는게 좋겠다고 했다. 역시!       

 

0…사실 이는 매우 아이러니한 얘기다. 아이들이 한국말 잊지 않도록 집에서 한국말만 쓴 결과 아이들은 한국말이 자연스러운 반면, 부모는 그만큼 영어 쓸일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아이들이 부모에게 그 은덕(?)을 돌려드려야 하는 것 아닌지. 

 

 집에서 자녀들과 영어만 쓴 분들은 적어도 일상회화는 잘 하실 것이다. 반면 자녀들의 한민족 정체성과 한국말 소통 면에서는 아쉬운 점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이민 1세들의 눈물어린 애환인 것이다. 

 

 아무튼 주변의 작은 일에서조차 쉽게 사용할 말을 어렵게 생각해서 하려니 힘이 든다. 하지만 배움에 너무 늦었다란 말은 없다(It's never too late). 죽을 때까지 영어를 배우고 익혀 비록 남의 나라 땅이지만 당당하게 살아가야겠다.   

 

0…영어와 관련한 에피소드는 무궁무진하다. 책으로 써도 몇권은 될 것이다.

 

 내가 이렇게 영어에 대해 시리즈로 쓰는 것은 나 자신이 그 절실한 필요성을 새삼 깨달으며 이제라도 공부 좀 하자는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하다.

 

 영어권 이민생활에서 가장 남는게 무엇이겠나.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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