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의 기적 방문 기록 100 만 넘어 오늘은 5 월 27 일 부처님 오신날 그 동안 2003 년 65세의 늦은 나이에 컴퓨터를 배우고 브로그를 만들고 글을 올리고 이웃 브로그와 인터냇에도 글을 올리기 시작 한지 20 년이 되었읍니다 그리고 그 동안 나의 글을 방문 해 주신 숫자가 800 만을 넘어 섰읍니다 그리고 현재 6개의 미니 홈피를 운영중에 있는데 그 중에서 불교 홈피의 연꽃처럼 과 이웃에 불교에 관한 글올 올리고 있었는데 어제 총 방문 기록이 100만 명을 넘어 섰읍니다 컴에 미숙하고 무지 한 나에게 이것은 큰 기쁨이요 영광이 아닐수 없읍니다 더군다나 이 기록이 부처님 오신날에 이루어 저 놀랍고 감격해 하지 않을수 없읍니다 이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아닐수 없읍니다 그런데 부처님 오신날에 기적이 하나 더 있읍니다 그것은 토론토 로렌스 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복권을 팔고 있엇는데 부처님 오신날 아침에 복권 공사에서 나의 상점에서 500만불 당첨자가 나왔다고 연락이 온 것입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었읍니다 전에도 100 만불 당첨이 나 왔는데 그때는 내가 손님에게 수퍼7 티켓을 골라 준 것이 당첨 된 것이어서 너무 신기하고 놀라 웟읍니다 부처님 오신날의 100 만명 기록 이것은 부처님 오신날의 제2 기적이요 부처님의 선물 같아 너무도 기쁘고 부처님께 감사 드립니다 또한 부족한 글을 방문 해주신 여러분 분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23 년 부처님 오신날 새벽에 대성 임 정남
. 광우스님의 재미 있고 알기쉬운 법문 이야기
. 우리에게감동과머리속에여운을 남기게 하는 수준 높은작품들을 소개 합니ㅈ다
. 이제 우리집 베란다, 화분에서도무궁화 키울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금리인상과 부채상환비용은 시차를 두고 상승합니다. 그렇기에 작년에 꾸준히 오른 금리인상여파 때문에 모기지비용도 계속 오르고 있으며 캐나다중앙은행도 이 점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벌써 3분의 1 이상의 캐나다가구가 모기지페이먼트가 증가했으며 이것은 결국 모기지 채무불이행으로 나타날 것이며, 결국에는 대출기관의 신용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모기지 재융자를 하거나 할부 상환기간을 연장하여 그나마 견뎌냈지만, 캐나다중앙은행의 조사에 의하면 이미 상당한 가구가 재정적 압박에 직면하고 있으며, 최소 60일 이상 모기지를 연체한 가구가 점점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주택구입 시 상환기간을 더 길게 하는 경향이 있으며 상환기간이 25년 이상인 신규모기지 비율이 2019년에 34% 였던 것에 비해 2022년에는 41%에서 46%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급증하는 모기지 이자비용은 인플레이션까지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팬데믹기간 중에는 재택근무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사무실의 수요가 줄어들었지만, 팬데믹이 거의 해제된 지금은 다시 사무실의 세입수요가 급증했습니다. 또한, 새 이민자의 유입이 다시 활성화되어 임대주택 공급물량이 부족한 상태로 되다 보니 결국 토론토의 주택임대료는 지난 2년 사이에 무려 40%나 상승했다는 보고서도 있습니다. 이런 요인들이 인플레이션을 계속 조장하고 있어 시장은 다시 금리인상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지난번 미국이 이자율을 인상할 때 캐나다 중앙은행은 이자율을 인상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놀랍습니다. 때문에, 스코치아 은행의 경제학자인 데릭홀트 씨가 말하기를 “캐나다중앙은행이 중요한 결단을 내지 않으면 인플레이션을 2%로 낮추는 데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참고로, 캐나다 중앙은행은 40년 만에 최고치까지 치솟았던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기준금리를 지난 1년 동아 0.5%에서 4.5%로 인상했습니다. 사실, 캐나다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점차 낮추어 내년 후반기에는 2%대의 숫자를 기대하지만 시장은 여전히 이 숫자와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실제로, 캐나다국민들은 더 오랫동안 더 높은 인플레이션을 바란다는 증거로 데릭홀트 씨는 최근에 단체 교섭협약에서 인상된 급여를 언급하며, “아무도 앞으로 몇 년 동안 2%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몇 주 전에 오타와와 캐나다 공공서비스연합(Public Service Alliance of Canada)은 전국적인 파업을 통하여 4년 동안의 임금인상을 2021년 6월로 소급적용하여 12.6%로 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인 티프 맥클럼(Tiff Macklem)씨도 지난 4월 금리결정할 때 “인플레이션을 2%로 되돌리기 위해 필요하다면 기준금리를 더 올릴 준비가 되어있다.” 며 향후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을 열어두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는 6월 7일 회의 때 캐나다 중앙은행이 금리인상을 결정할 지에 모든 이의 눈과 귀가 향해있습니다. 그럼, 다음 편에는 ‘파산신고를 하면 집과 자동차는 안전할까?’라는 주제로 만나겠습니다. (캐나다경제 2023년 5월 26일자 1면)
*<“부동산 투자가 최고다?”>광역토론토(GTA) 등에서 단 한채의 주택을 장만하기도 어려운 실정…하지만 일찌감치 부동산 투자에 눈 뜬 젊은이들이 투자용 주택을 사려는 경향 뚜렷…업계 조사에 따르면, 이 젊은이들은 자기가 살 집보다 우선 투자용 주택을 사서 고정수입을 올리려 노력…이에 렌트나 부모와 함께 살면서 투자주택을 사둔 젊은층이 두채 이상 주택을 소유한 경우 많아…이들은 콘도보다 단독주택을 선호하기도…“이제까지 보와왔듯, 주식보다 부동산이 낫다”는 인식…하지만 부동산 투자에 대한 지식도 없이 뛰어드는데다 최근 모기지 이자율이 급상승하면서 집을 팔려고 내놓는 경향도…https://www.kocannews.com/realestate/bb2fm8t2pn5xnnklma6ad5bxpasl5d *<토론토 철도 상공에 대형 콘도 개발>토론토 다운타운 철도부지 상공에 대형 콘도 개발 프로젝트 추진…Rail Deck District로 알려진 이 철도부지는 Front Street 남쪽 Blue Jays Way와 Bathurst Street 사이에 위치…존 토리 전 시장이 토론토의 Central Park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밝혔던 지역…콘도 개발사는 CKF Rail Development Ltd. Partnership 콘소시엄…지난 2013년 CN Rail로부터 철도부지 공중사용권(air rights) 획득해 철도 위에 20~65층 짜리 콘도 9개 타워 6,126 유닛을 세우겠다는 청사진 제시… https://www.kocannews.com/realestate/p8c939s5tbw7zajpmlyr5sdwna3gcr *<개스값 모처럼만에 내린다>지난 열흘간 계속 오르던 개스값, 주말(27일)에 다소 하락…리터당 3센트 내린 163.9 cent(s)/litre 고시…광역토론토 지난 열흘 사이 15센트(리터당) 급등…https://toronto.citynews.ca/toronto-gta-gas-prices *<“My Heart Will Go On”>캐나다의 국민가수 셀린 디옹(55), 건강 악화로 모든 월드투어 취소…"무대에 설 준비 될 때까지 모든 것 취소…포기하지 않을 것"…작년 12월 희귀 신경질환인 '전신근육강직증후군'(Stiff-Person Syndrome: SPS) 앓고 있다고 공개…이 질환은 사람의 몸을 뻣뻣하게 만들고, 소리와 촉각, 감정적 자극에 따른 근육 경련 유발…https://www.cbc.ca/news/canada/montreal/celine-dion-cancellation-world-tour-1.6855481 *<올리비아 차우 대세 굳히기>6.26 토론토시장 보궐선거 한달 앞으로…각종 여론조사 결과 올리비아 차우(Olivia Chow) 지지율 선두 고수…금요일 발표된 Mainstreet Research 조사결과, 차우 후보는 응답자의 35% 지지율로 1위 질주…특히 일주일 전(30%)에 비해 지지율 더 오르며 2위와 더블스코어로 격차 벌어져…이어 Ana Bailao(16%), Mark Saunders(12%), Brad Bradford(10%), Josh Matlow(10 %), Mitzie Hunter(5%)…https://www.kocannews.com/social/pbwsah46y6nw6xmz6ae398hedxa2ad *<한낮 브램튼서 총격사건>오늘 오전 11:30분경 브램튼의 플라자(Central Park Dr./Grenoble Blvd.)서 총격사건, 13세 여학생 1명 중상입고 병원 이송…이 일대 9개 학교 비상경계조처(hold-and-secure orders)…경찰, 남자 용의자 추격중…https://toronto.citynews.ca/2023/05/26/brampton-youth-shot-schools-lockdown/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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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kraine said Thursday it had shot down all 36 Iranian-made drones launched by Russia in overnight attacks, which it said probably targeted critical infrastructure and military facilities.
. 적멸보궁이 있는 강원 정선 정암사의 수마노탑이 서울 광화문광장 한복판에 위엄을 자아내면서 거룩한 봉축등을 환하게 밝혔습니다
. 광우스님의 소나무 시즌3 53회
. 우리나라의 국화 무궁화에 비만 개선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꽃봉오리를 모아 차를 만들어 먹으면 지방 형성을 억제해 체중을 줄여준다는 건데요.
*<토론토에 사무실이 남아돈다>광역토론토에 업무용 오피스 빌딩이 수요에 비해 지나치게 많아 사무실이 남아도는 형편…이는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 패턴이 일상화되면서 굳이 사무실이 필요 없어진 이유가 주원인…장차 수년 안에 사무실 공실률(vacancy rate)이 무려 46%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GTA에 건축중인 오피스 연면적은 4천만 square feet, 하지만 실제 필요한 공간은 1,500만sqft…수입도 없는 오피스 빌딩 허물고 콘도를 짓는게 훨씬 낫겠지만 Zoning change가 쉽지 않아…개발사들은 정부의 zoning policy 바꿀 것을 요구…https://www.kocannews.com/realestate/k4j4kgkl6zaazb79l8zdblmd39llxd *<GTA 개스값 계속 급등>광역토론토 개스값 목요일 5센트(리터당) 오른데 이어 금요일에 또다시 3센트 인상 고시…일주일 사이 13센트 급등, 작년 11월 이래 7개월 만에 최고치…이는 최근 알버타의 대형 산불과 경기침체, 미국의 부족한 정유 공급망 등이 주요인…특히 미국의 정유 재고량은 2014년 이래 최저 수준…여름 휴가철 앞두고 계속 오를 전망…GTA의 개스값은 작년 6월 사상 최고인 $2.149/litre까지 폭등한 기록…https://www.kocannews.com/economy/5wg3h96r86ehn5g2x4fn8d4864tg4h *<한인여성회 프로그램 안내> -예비 이민자와 유학생 등을 위한 비자 및 이민상담 서비스(무료) -일시: 2023년 6월부터 매월 두번째 목요일 (자세한 내용은 아래 포스터 참고)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아픈 상처는 빨리 잊어야 세상을 살다보면 항상 즐겁고 기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묘한 인간세계엔 얽히고 설킨 인연과 대인관계로 인해 상처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일을 당하고 나면 한동안 계속해서 그 생각만 머릿속을 맴돈다. 그 일만 생각하면 자꾸 미운 얼굴이 떠오르고 마음이 괴롭기 짝이 없다. 밥맛도 없고 잠도 오질 않는다. 일손도 집중이 되질 않는다. 이런 일은 누구나 한번쯤 겪어본 경험일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잊어버리는 기술이다. 인간에겐 어쩌면 무엇을 기억하는 것보다 잊어버리는 기술이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정신건강을 위해 꼭 필요하다. 0…영어에도 이런 표현이 많다. It’s water under the bridge, 즉 과거의 일은 다리 밑을 흘러가는 물과 같다. 이미 다 지나가 버렸으니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매우 시적(詩的)이다. 이는 영국의 유명 가수 겸 작사작곡가(singer-songwriter)인 아델(Adele)이 동명의 제목(Water Under The Bridge)으로 노래를 불러 한층 더 알려졌다. ‘Don't pretend that you don't want me. Our love ain't water under the bridge. Say that our love ain't water under the bridge’ 마음 아픈 일로 끙끙대지 말고 어서 잊으라는 의미로 Don’t dwell on it이란 말도 있다. 즉 그런 쓰라린 기억 속에 살지 말라는 것이다. 또 Don’t let it ruin your day(그런 기분 나쁜 일로 하루를 망치지 말라)는 조언도 있고, 그냥 쉽게 Just let it go(빨리 잊어버려)라는 말도 있다. Let bygone be bygone(지난 과거는 과거일 뿐), It’s no use crying over spilt milk(엎질러진 우유 앞에서 울어본들 소용없다), This, too, shall pass(이 또한 지나가리라) 등등 많다. 그러고 보면 마음이 괴로울 때 빨리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것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0…“그때 조금만 참을걸” “내가 먼저 식사비를 낼걸”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해줄걸” “조금만 (부조)비용을 더 쓸걸” “귀찮아도 가볼걸” “미워도 먼저 악수의 손길을 내밀걸…” 이제껏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스스로 만족스럽고 뿌듯한 일들보다는 후회스럽고 아쉬운 일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학창시절 왜 좀 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직장생활을 하면서 왜 좀 더 성실하게 근무하지 않았을까. 결혼해서는 아내에게 왜 좀 더 살갑게 대해주지 못했을까. 철이 들어서는 왜 좀 더 돈 벌 궁리를 안했을까. 그에게 왜 관용을 베풀지 않았을까. 그 자리에서 왜 그렇게 옹졸하게 처신했을까… 이런 ‘까, 까, 까’ 다음엔 대개 ‘~할걸(껄)’이란 접미어가 따라 붙는다. 좀 더 사랑할걸, 좀 더 베풀걸, 좀 더 마음을 열어줄걸… 0…죽어가는 사람을 돌보는 호스피스(hospice) 운동의 선구자요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그녀의 제자 데이빗 케슬러가 써서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인생수업(Life Lessons)’은 죽음 직전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인생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을 전해준다. 여기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삶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별의 순례자’이며 단 한번의 즐거운 놀이를 위해 이 세상에 왔다. 따라서 살아있는 동안은 행복만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눈이 찬란하지 않다면 어떻게 이 아름다운 세계를 반영할 수 있는가. 우리는 삶을 너무 심각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닌지. 0…가장 중요한 교훈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충실하라는 것이다. 지나간 과거나 다가올 미래는 나의 힘으로는 통제가 안된다. 돌이킬 수도 없고, 앞당길 수도 없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 이 순간 뿐. 과거의 실수에 집착해 괴로워할 필요도, 확실치도 않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할 필요도 없다. 그 일만 잘 풀리면, 승진만 하면, 돈을 좀 더 벌면, 해외여행도 가고 취미생활도 하고 불우이웃도 돕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 밥도 사주고… 꿈이 이루어지면 세상이 달라질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질 않다. 막상 소원이 성취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지금 당장 실천하지 않는 꿈은 나중에 후회로 남는다. 0…죽어가는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그때 하고 싶었던 일을 할걸”이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행복 외에는 다른 숙제가 없다. 행복해지기 위해 무언가를 시도한 적이 언제였나? 멀리 떠나 본 적이 언제였나? 누군가를 진정으로 껴안아 본 적이 언제였나? 지금 이 순간을 살면서(Live), 사랑하고(Love), 웃고(Laugh), 배우자(Learn).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다. 0…내 힘으로,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꼭 계획대로 일이 진행된 적이 얼마나 있는가. 내일은 어떤 세상이 전개될지 아무도 모른다. 나중에 ‘껄껄걸’ 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가슴 뛰는 삶을 살자. 지나간 일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Just let it go!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One step to Korean War 2.0 and Two steps to Hot Sino-American War? Dr. Joseph H. Chung (정희수), Professor of Economics in Montreal (UQAM) (지난 호에 이어) Therefore, Biden would have put pressure on Yoon, as the condition for being invited as state visitor, to accept Japans view of Japanese colonialism. And, Yoon has accepted Biden's demand, because he has the same view of Japanese colonialism. If Kishida and Yoon have the same view of Japanese colonialism and if hey cooperate for the global hegemony of Washington, it would be one of Biden's successful diplomatic accomplishments, which will give an edge in the coming presidential election. But, Yoon is surely aware of the violent reaction of the majority of the South Korean population who have nationalistic view of Japanese colonialism. This does not seem to bother him much, because he thinks that he can silence the dissidents with prosecutors' force. The results of Yoon's summit with Kishida have turned out to be what was expected. It made it clear that the Japanese colonialism was beneficial to the inferior Koreans. Yoon gave away everything which is dear to Koreans. Yoon knows well that South Koreans will fight back. But, he does not care, because he thinks that he will be protected by Kishida and Biden, because he is riding on the wagon of China killing. 2.1 Yoon's gift to Kishida The following is the list of what Japan wanted and what Yoon gave • The justification of Japanese colonialism in Korea • The compensation payment for the labour slavery • The Glob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 Comfort women • Trade sanction • Dokto/Takeshima Island • Fukushima Sea Foods Justification of Japanese Colonialism in Korea Japan has been arguing that its colonialism in Korea was beneficial to Korea, because without Japanese colonialism, Korea could never modernize itself and develop its economy. On August 15, 2022, at the annual commemoration day of Korea's liberation from Japan, Yoon Suk-yeol justified, in his speech, Japan's claim. This can be interpreted by Japan that Korea would welcome Japanese colonialism 2.0. Compensation payment for labour slavery During the 35-year of Japanese illegal occupation of Japan in Korea, Japan committed countless war crimes against humanity. One of these crimes was the conscription of almost one million Korean workers forced to work in Japanese mines and factories under sub-human living conditions. The negotiation between the former slave masters (Japanese corporations) and the former slaves (Korean workers) for Japan's sincere apology and compensation has lasted for decades. At last, in 2018, the Supreme Court of Korea ordered two Japanese corporations- Mitsubishi Heavy Industries and the Nippon Steel- to pay the compensations to the victims of the labour slavery. It was reported that these corporations were ready to pay the compensation, but the Japanese government told them not to do so. You may not believe this. Since Japan refuses to pay the compensation to the victims, the Yoon's government has decided to force the Korean corporation to pay the compensation. Then, Korea will ask the Japanese corporation to pay later. This is ridiculous idea; the Japanese corporation will never pay. Thus, the Korean corporations which have nothing to do with the labour slavery have to pay the victims of slavery imposed by Japanese corporations. Moreover, Yoon violated the Korean constitution by disobeying the ruling of the country's Supreme Court. This can be a reason for impeachment. What is more shocking is this. A ranking Japanese cabinet minister says that the conscription of Korean workers never took place. Yoon did not protest against such irresponsible declaration of a Japanese cabinet minister.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Then, there was the issue of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GSOMIA). It is an agreement on the exchange of security related information. Under the agreement, partner countries must share security-related information after proper analysis of information. During the Korea-Japan trade war of 2019, under the government of Moon Jse-in, Korea withdrew from the agreement, but, the agreement was restored informally. But, this time, Yoon agreed formalized GSMIA and Korea must provide Japan with information on North Korean military activities which may be a threat to Japan and South Korea. The agreement is a lopsided agreement, which is more beneficial to Japan. What worries Koreans is that this agreement is likely lead to Japan-Korea military alliance which will allow the return of the Japanese military to the Korea soil. This will be never accepted by Koreans. Comfort Women Yoon went to Japan hoping that Japan would show remorse and apologise for raping more than 250,000 Korean girls during several years by Japanese soldiers. True, in the past, handful Japanese political leaders showed remorse: Kono (1993), Murayama (1995), Obuchi-Kim joint declaration (1998), Koizumi (20005). But in 2015, Shinzo Abe denied all these manifestation of apology or remorse. Fumio Kishida, current prime minister of Japan, was asked if he would apologise for the sex slavery. He answer was that he would follow the position taken by his predecessors, but he did not say which predecessor. The predecessor was most likely Shinzo Abe. But Yoon did not protest. So, the negotiation on the apology for sex slavery ended up with total victory of Japan. It is reported that even before the summit, Yoon sent someone to Kishida begging him to say a simple word of regret for the crime against the poor comfort girls. Kishida ignored such humiliating request. In practical terms, Kishida was saying that the sex slavery never happened. Yoon did not protest.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영화 '콰이 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는 아마 연세가 좀 드신 분들은 모르시는 분들이 없으리라. 특히 영국군 포로들이 휘파람으로 부른 '콰이강 행진곡'은 지금도 우리 귀에 그 여운이 남아 있다. '콰이 강의 다리'는 '혹성 탈출'(Planet of the Apes, 1963)의 원작자 피에르 불레(Pierre Boulle, 1912~1994)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원작 소설을 거장 데이비드 린(David Lean, 1908~1991) 감독이 연출한 전쟁 영화이다. [註: 각본은 마이클 윌슨(Michael Wilson, 1914~1978)이 썼지만 정작 오픈 크레디트에 그의 이름이 없다. 당시 매카시즘에 의한 헐리우드 블랙리스트에 올랐기 때문이었는데 '우정 어린 설복(1956)'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등의 오리지널 필름에서도 이름이 빠졌으나 1995년에 복원되었다. 그는 또 샌드파이퍼(1965), 혹성탈출(1968), Che!(1969)의 각본가로도 유명하다.] 1957년 컬럼비아사 배급. 감독 데이비드 린. 출연 알렉 기네스, 윌리엄 홀든, 잭 호킨스, 하야카와 셋슈(早川雪洲, 1886~1973), 제임스 도널드. 러닝타임 161분. 시기는 제2차 대전과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3년, 무대는 버마(지금의 미얀마) 국경 근처 태국 내에 설치된 영국군 포로수용소. 영국군이 '콰이강의 행진곡'을 부르며 질서정연하게 행군한다. 포로수용소장은 일본군 사이토 대령(하야카와 셋슈). 그는 영어에 능통한 인텔리 장교로 포로들을 가혹하게 다루진 않는다. 한편 포로들의 대표인 영국군 니콜슨 중령(알렉 기네스)도 사이토 소장에게 깍듯이 경례를 붙이며 적절히 예의를 지킨다. [註: 대화에선 단순히 'Colonel'이라 불러서 우리말 자막도 '대령'이라 번역하지만 엄밀히는 'Lieutenant Colonel' 즉 '중령'이다. 또 해군 출신인 쉬어즈 소령도 단순히 'Commander'라고 부르고 있으나 실은 그 앞에 'Lieutenant'를 빼고 부르기 때문에 중령이 아니다. 이와 같이 한글자막이 모두 한 계급씩 올려 번역하고 있어 고칠 일이다.] 어느 날, 수용소 부근에 있는 콰이강에 수송열차가 통과할 수 있는 다리를 단시일 내에 건설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이토 소장은 장교를 포함한 모든 포로들을 공사에 동원하려고 한다. 소장이 포로들에게 연설한다. "항복한 순간부터 너희들은 더 이상 군인이 아니다. 장교들은 항복함으로써 너희들을 배신했으며 너희들의 수치는 장교들의 불명예"라며 "노역자로 사는 것이 영웅으로 죽는 것보다 낫다. 장교들이 너희들을 데리고 왔다. 그러므로 장교들도 노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사이토. 그러나 니콜슨 중령이 '장교는 노역에서 제외된다'는 제네바 협약 27조를 상기시키며 장교 포로들에겐 육체노동을 강요할 수 없다고 강변하자 그의 뺨을 때리는 사이토. 니콜슨은 "문명 세계의 법을 무시하겠다면 우리도 복종할 의무가 없다."며 일본군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영국군의 명령에 의해 장교를 제외한 병사들만 사역장으로 보낸다. 이래야 '노예'가 아닌 '군인'으로서의 사기를 높여주게 되기 때문이란다. 트럭이 한 대 연병장으로 들어온다. 차 속에는 기관총이 장치돼 있다. 사이토가 셋을 셀 동안 결정하지 않으면 발포한다고 선언한다. 병상 막사에서 이 과정을 지켜보던 포로 환자들 중 '포로는 군인이 아니라 살아있는 노예'라고 생각하는 미국 해군 소속 쉬어즈 소령(윌리엄 홀든)이 "저들은 한다면 진짜 한다"며 우려를 나타내자, 영국군 군의관 클립턴 대위(제임스 도널드)가 절체절명의 순간 뛰쳐나와 "무장 안 된 사람을 쏘는 것이 일본의 군사규약이냐?"고 따지니까 사이토는 겸연쩍은 듯 사무실로 돌아간다. 이 처사에 항의하여 작열하는 뙤약볕에 정렬한 채 부동자세로 서 있는 장교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자 한 장교가 일사병으로 졸도한다. 이윽고 명령불복종죄로 장교들을 감옥에 처넣고, 니콜슨 중령만을 끌고 몽둥이를 들고 사이토 사무실로 데려가는 일본군들. 해가 질 무렵 일을 끝내고 돌아온 포로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항의하자 니콜슨을 부축해 나온 일본군은 그를 양철지붕의 찜통 속에 가둔다. 이때 영국군들이 일제히 노래를 불러 그를 격려하는데 '유쾌하고 좋은 친구(For He's a Jolly Good Fellow)'라는 노래다. [註: 이 노래는 오늘날 결혼식, 생일 파티, 스포츠에서 승리했을 때 많이 부르는 익숙한 노래다. 원래 이 곡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시기인 1709년 9월11일 벨기에와의 국경 근처인 프랑스 말플라케(Malplaquet)에서 일어난 영국-프러시아-오스트리아-네덜란드 연합군과 프랑스군과의 전투에서 불리한 전황을 만회하기 위해 영국군 지휘관인 말버러 공작이 죽었다는 헛소문에 유래한 프랑스 민요 "전장의 왕자 말버러(Malbrough s'en va-t-en guerre)"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 후 마리 앙트와네트(1755~1793)가 하녀가 부르는 이 노래를 들은 후 유명하게 된 곡이라고 한다. 이 민요는 그 후 1813년 6월21일 스페인에서 일어났던 프랑스와 영국 간의 빅토리아 전투(Battle of Victoria)에서 나폴레옹의 형인 조셉 보나파르테(Joseph Banaparte, 1768~1844)를 물리친 웰링턴 공작인 아더 웰즐리(Arthur Wellesley, 1769~1852)의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 베토벤이 작곡한 "Wellington's Victory, 작품91"의 바탕이 된 곡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에 삽입된 세계적인 곡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편 밤을 틈타 탈출을 시도하는 포로들. 그러나 영국군 제닝스 중위와 위버 하사는 사살되고 미국군 쉬어스 소령은 절벽 밑의 콰이강으로 떨어져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다. 이 무렵 다리 건설에 동원된 포로들은 일본인 엔지니어인 미우라 중위(K. 가츠모토)의 감독하에서 일을 하지만 사보타지로 맞선다. (다음 호에 계속) ▲ '콰이 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1957)' 영화포스터 ▲ 니콜슨 중령(알렉 기네스·맨앞)의 지휘하에 영국군 포로들이 '콰이강의 행진곡'을 부르며 질서정연하게 행군하고 있다. ▲ 콰이강의 다리 건설을 위해 장교를 포함한 모든 포로들을 공사에 동원하려고 연설하는 사이토 대령(하야카와 셋슈). ▲ 환자인 미 해군 쉬어즈 소령(윌리엄 홀든)이 "저들은 한다면 한다"며 기관총 발사를 준비하는 일본군 앞에 버티고 선 니콜슨 중령의 위기를 감지하는데… ▲ 일본군이 아닌 영국군의 명령에 의해 장교를 제외한 병사들을 사역장으로 보내는 니콜슨 중령(알렉 기네스). '노예'가 아닌 '군인'으로서의 사기를 심어주기 위해서란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지난 호에 이어) 매일 매일 비처럼 내리는 옳고 지당한 진리와 도덕 그리고 양심의 소리를 피하며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음침하고 어두운 골짜기를 찾아다니며 평생을 방황하고 살아온 것만 같은 나의 지나온 삶에 그래도 가끔씩 영혼에 꽂히며 맺히는 말씀들은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게 하며 또 나의 죄를 기억하게 한다. 어두운 뒷골목을 서성이며 피난 속의 삶 속에도 때때로 나의 영혼을 적시는 끝없이 내리는 양심의 가랑비가 차라리 소나기로 변하여 나의 죄는 물론 우리 인간의 모든 죄와 악을 몽땅 씻기고 벗기어 저 먼바다로 쓸어버렸음 하는 마음이다. 지난 겨울엔 아내와 정치를 하는 큰아들과 휴가차 딸이 살고 있는 저 멀리 바베도스란 섬나라의 피서지 해변가를 걷는데 참으로 말로 표현키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과 해변, 예술 그 자체였지만 여기저기 해변가에 관광객들에 의해 버려진 쓰레기 더미를 보면서 한숨을 쉬는 필자를 보고 인간은 원래 모두가 악하며 그런 악성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는 아들의 말이 생각났다.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셨다는, 우리를 만들고 생명을 불어넣으신 우리의 조물주님은 왜 그러셨을까? 누구나 그렇듯이 필자 역시 가끔씩 지나온 인생을 더듬어 볼 때가 있는데, 어린 시절엔 그저 매일 먹을 것이 삶의 목표가 되었고, 학창시절엔 함께 어울려 다녔던 친구들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고, 또 젊은 시절엔 멋지고 아름다운 이성을 만나는 것이 나의 꿈이었고, 그리고 장년이 되면서는 성공과 생존경쟁을 위한 투쟁의 연속, 중년이 되면서 자식들이 삶의 전부였고, 노년이 되면서 건강이 매일의 목표, 이제 황혼이 되면서는 하늘만 바라보는 삶이 되어 버렸다. 다만 이제 안타깝고 서럽고 때론 화도 나는 것은 우리의 조상들이 그래왔듯이 우리가 겪고 쫓았던 모든 것이 부질없고 헛되다는 것을 깨달으며 이제 우리 세대는 영원히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가끔씩 세상에 살면서 나의 적은 무엇이었고, 아군은 무엇이었을까 생각을 해보는데 나 자신이 바로 나의 적이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순서대로 나열을 해본다면 나의 교만, 나의 위선, 나의 욕심, 나의 허영, 나의 고집이 나의 인생을 좀더 보람있고 멋있는 인생보다 너무나 평범하고 어찌 보면 못나고 또 보잘것 없는 삶을 만들어 놓은 것만 같다. 필자가 믿고 있는 성경말씀엔 믿는 자들의 최고의 적은 교만이라 말하며 그것은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고, 반대로 사탄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라며 교만한 자마다 모두 멸망한다고 적혀있다. 나의 생각과 행동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나 혼자만의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남을 무시할 때 바로 교만이 찾아오고, 그것은 바로 나의 최고의 적이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깨달아야 한다고 말씀한다. 그 교만은 바로 나의 성장을 멈추게 하고 결국 실패를 안겨주며, 나아가선 남들을 해치고 파멸케 만든다는 것이다. 이 교만은 종교계뿐 아니라 정치계, 교육계, 예능계 어느 곳에서도 존재하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 소크라테스의 명언을 무색하게 하듯이 우리 모두는 아직도 내가 누군지 모르고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또 누구이며 왜 살고 있을까 생각을 해볼 때는 이 중에 한가지도 명확한 답이 안 나오니 결국 나는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며 평생을 지내는 것 같다. 필자의 경우엔 내가 나를 조금이라도 알기 위해서 가끔씩 나 자신을 남의 눈으로 또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을 하는데, 즉 내가 나를 어떻게 보나 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나를 생각해 볼 때 조금이라도 나 자신을 바라볼 수가 있는 것도 같다. 예를 들어 나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의견 그리고 생각들과 소문, 또한 동업자들, 친구들, 이웃들이 날 어찌 바라보고 있을까 상상을 해볼 때 내가 누구란 것을 짐작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는 나를 볼 수가 없지만 남은 나를 볼 수가 있기에 그렇다. 나의 교만, 나의 위선, 나의 욕심, 나의 허영, 나의 고집을 버린다면 이 세상은 한없이 좋은 세상 그리고 평등하고 살만한 세상으로 변하겠지만 우리는 원죄와 악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기에 그것이 불가능하단다. (다음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이번 사건은 오랜만에 주인의 손을 들어준 사건이고 세입자에게 실제로 $4,400 을 주인에게 지급하라는 오다를 받은 사건이다. 그동안 많은 주인들이 세입자에게 데미지 클레임을 해왔는데 실제로 보상을 받은 경우는 많지 않은 듯하다. 보상을 받아도 주인이 클레임한 것에 비해 적은 보상금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사건의 주인은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므로 주인이 클레임한 금액을 고스란히 받았다. 주인은 하우스 인스팩션을 통하여 집에 데미지 난 것을 발견하고 사진과 비디오로 기록을 남겼다. 부엌 바닥의 타일이 7개가 깨어져 있었고, 베스탑 안이 깨어져 있었고 부엌 수납장 도어도 부서져 있었다. 주인은 베스탑을 갈아야 했고 $1,700의 경비를 쓰게 되었다. 그리고 부엌바닥 타일은 전체가 깨진 것은 아니었지만 마켓에 더 이상 같은 타일을 구하기 어려워서 전체 면적을 갈아야 한다고 주장 하였다. 바닥 전체면적이 100 스퀘어 피트이고 비용은 $1,200+HST로 견적이 나왔다. 그리고 부엌 수납장의 도어가 부서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인은 수납장 도어만 갈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가는 것보다 비용이 더 나간다고 주장하며 전체적으로 가는 것이 더 저렴하다면서 비용은 $900+HST 라고 견적서를 첨부하였다. 히어링 때 이 세입자는 주인의 클레임을 부정한다. 원래부터 깨어져 있었다 아니면 원래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등등, 하지만 주인은 직접 찍어놓았던 사진과 비디오 증거로 세입자의 의견을 무산시켰다. 주인은 세를 주기 바로 직전에, 유닛을 비디오로 촬영을 해놓았었고 촬영 날짜가 비디오에 기록으로 남아있었다. 주인의 수고가 보상받는 시간이었다. 데미지 클레임의 히어링은 대부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왜냐하면 세입자가 부인을 하기 때문이다. 이 케이스는 증거자료가 충분하니까, 뭐 서로 내가 잘했니 네가 못했니 할 필요가 없었다. 45 분만에 히어링을 끝냈고, 2주 만에 오다를 받았다. 며칠 전 주인이 $4,400을 세입자로부터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렇게 용의주도한 주인이라면 어떠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해도 해결책을 찾기가 용의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떤 주인들은 세입자에 대하여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분들도 계시다. 한 달에 들어오는 월세만 기억하시는 분도 계신다. 위와 같이 앞으로 일어날수 있는 사건들을 내다보며 준비해 놓으면 자신의 재산 과 권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본인을 대신해서 지켜주지 않기 때문이다. <세입자 법으로 문제 있는 분 연락 주십시오. Grace Yun(Paralegal, GY Legal Service) / 647-328-5150 / [email protected]>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노삼열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과 석좌교수(은퇴)) (지난 호에 이어) 우리가 캐나다로 이주하여 정착하는 사이 한반도는 휴전의 긴장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독재정치체제를 유지하고 굳혀가는데 좋은 토양이 되어 주었다. 한편 정부의 단계적 경제계획은 보란 듯이 성공을 거듭했고, 서서히 서민과 중산층 국민들은 한강의 기적이 가져다 주는 경제적 열매에 도취되기 시작했다. 정치적 탄압과 언론과 표현의 자유 및 국민의 기본권을 많은 부분 포기해야 하는 불편함을 누르고 체제에 맞부딪치지 않으며 살아가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쏟아지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것은 수천 년 한반도 역사에서 처음으로 기회의 땅으로 거듭나는 시작이었다 라는 평을 받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작부터 내전의 피폐가 워낙 컸고 남북한 사이의 긴장이 해소되지 않았고, 국가가 강요하는 많은 제약에서 오는 불편함 때문에 적지 않은 수의 중산층 한국인들은 더 밝고 자유로운 삶을 동경하게 되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과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등지로 이민을 꿈꾸게 되었다. 할리우드 영화 속에 비춰지는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행동의 장면들, 그리고 서울의 거리마다 가득 메운 팝송들이 서울과 전역의 젊은이들의 마음에 미국과 서양문화에 대한 동경을 깊게 심었다. 또한 한국이 기회의 땅으로 변하기는 했지만 그 기회마저도 여전히 제도적 차별로 굳어져 가는 듯 했고, 서민들의 수입성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뛰어오르는 부동산값과 인플레이션의 행진을 앞지르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남보다 여러 배 노력하고 희생을 해야만 했다. 그런 중에도 여기저기에서 기적과 같은 성공의 스토리들을 통해 국민들을 격려하는, 한국은 그야말로 패러독스의 땅이 되었다. 이런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깔려있던 혼란과 불안감 외에도 당시 많은 중산층 한국인들에게 탈 한국이 가장 좋은 옵션이라고 믿었다. 기회가 있으면 나가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 사이 1960년부터 캐나다 역시 영어나 불어를 사용하지 않는 비유럽계 국가들에게 문을 열기 시작했다. 특히 교육수준이 높고 근면하고 섬세한 작업에 손길이 빠르고, 가정중심적이며 비폭력적 문화적 특징을 지닌 동양인들에게 대한 환영의 손길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는 캐나다 정부가 전자제품의 폭발적 시장 수요를 담당하는 중소기업들이 겪고 있던 인력부족의 해결책의 하나였다. 그리고 그 정책은 매우 적극적이었고, 신규 이민자들에 제공되던 서비스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우리가 토론토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언어(영어)교육 수강이었다. 오전 9시경부터 오후 3시경까지 수업이 진행되었다. 학생(?)들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6개의 등급 중 적절한 클래스에 배치되어 6개월간 훈련을 받게 된다. 교육이라기보다는 산업현장에서 쓰임받을 수 있는 정도의 훈련을 시키는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하지만 영어를 시험을 치르기 위해 책으로만 배워온 다수의 한국인들에게 호흡이 살아있는 현실적 표현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종종 "이렇게 쉽게 말하면 되는데 뭘 그렇게 좋은 문장을 만들려고 고민했을까?"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언어 훈련 기간에는 기초생활비가 주어졌다. 2인 가족에 주 $30가 조금 넘는 액수였다고 기억한다. 우리가 부엌과 욕실을 나누어 사용하는 단칸방을 임대하고 전연 부족하지 않은 화려한(?) 식탁을 마련하고, 필요한 교통비와 주일 헌금까지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때때로 서울에 있는 가족과 집안 어른들의 생일을 기억하여 작은 액수의 카드도 전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수준의 생활이 풍요롭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저 받기에는 넘친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좁은 공간을 타인들과 공동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불편함이야 어쩔 수 없었지만, 목욕탕에 가지 않고 집에서 언제나 온수가 제공되고, 좌변기를 사용한다는 점이 매우 좋았다. 이런 편의시설은 어느 곳에나 있었다. 게다가 몇 백 달러만 주면 중고이기는 하지만 거대한 세단으로 자가용도 마련할 수 있으니 어찌 놀랍지 않은가? 처음 보는 지하철 역시 인상적이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니 도시를 가득 가리운 각종 나무들이 어울려 도시 전체가 마치 오일 페인트로 태어나는 것 같았다. 이 같은 환경의 변화는 이미 신분상승을 이룬듯한 착각에 빠트리기도 했다. 그러나 변화와 성장의 폭은 한국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그 사이 한국에서는 계속하여 제도적 억압과 전쟁의 불안이 여전히 엉켜서 풀리지 않고 있었지만 경제개혁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8년 만에 이민 후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8년 전과 비교하여 서울의 겉모습은 많이 커지고 분주하고 정돈되어 있었다.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친구들과 지인들의 놀라운 성공 케이스들이었다. 대다수 나의 친구들은 대기업에 취업했고 더러는 개인기업을 키웠다.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가까운 친구 L은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조그마한 상점 하나를 임대하고 몇몇 판매원들과 남성용 셔츠를 월부 판매를 했다. 불과 8년 후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자기가 운영하는 회사 임원들에게 제공하는 자가용이 60여대에 달한다고 자랑스런 애기를 들려줬다. 물론 고가의 한정식으로 저녁까지 제공하면서. 또한 나는 어머니가 20여년간 운영하시던 아동복 제조공장에서 일했던 소위 ‘여공’들을 여럿 만나 보았다. 전쟁 중 25세에 남편을 잃고, 4살 아들과 생후 3개월짜리 딸을 안은 어머니는 8남매(그중 5 동생들은 학생)의 장녀로서 힘든 여생을 시작했다. 외로웠을 어머니는 직원들을 성심으로 사랑하고 정직한 관계를 지키셨다. 직원들은 하나같이 작은 농어촌 출신의 국민(초등)학교 졸업 내지는 미필이 전부였다. 혹은 가족을 시골에 남겨두고 동네 언니를 따라 홀로 서울로 온 이들도 있고, 또는 부모의 결정에 따라서 온 가족이 함께 이사해 온 경우도 있었다. 그들의 삶은 전태일의 글 속에서 상세히 읽을 수 있는 피복산업 분야의 여공들 삶의 모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공장 내부가 천정이 높고 창문을 많게 하여 실내에 먼지가 오래 머무르지 않도록 했다. 그들은 때로 10시간이 넘는 작업 후에 1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설날이나 추석 연말연시와 입학식이나 어린이 날과 같은 대목 절기에는 며칠씩 퇴근없이 작업했다. 돌아가면서 쪽잠을 잤다. 공장은 우리 집 한옥 대청과 대문 옆 현관을 통해 출입할 수 있도록 건축되어 있어서, 어머니는 직원들과 함께 밤새 일하셨다. 타고난 건강이 무기였다. 나도 공장에서 다리미질도 하고 무거운 원단도 옮기고 청소도 하면서 도왔다. 낮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원단 구매를 위해 공장과 도매상에 동행할 때도 있었다. 직원 중 몇몇은 어머니와 이런 동고동락(?)을 10년이 넘도록 계속했다. 어머니는 그들의 형편을 소상히 알고 계셨고 그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다. 예를 들면 가을이면 우리 3식구 가족의 김장은 언제나 300포기를 넘겼다. 직원들이 점심으로 밥을 담을 공간을 조금이라도 늘려 김장김치를 반찬으로 조금이라도 더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신 것이다. 나는 때로는 라면을 한 솥 가득 끓여 삼립표 빵과 함께 내놓곤 했다. 직원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늘 즐거웠다. 놀라웠던 것은 내가 만난 직원들이 모두 기독교 신자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독실한 신자셨는데 오랫동안 같은 직원들과 사업을 하는 동안 어느새 그들이 전도된 것이다. 알고 보니 내가 한국을 떠난 1년 뒤 어머니가 캐나다로 이민하셨는데, 떠나기 전에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직원들에게 디자인 패턴 봉제 판매 등 모든 노하우를 전수했다고 한다. 내가 그들을 다시 만났을 때 몇몇은 도매상까지 소유한 알부자들이 되어 있었다. 나는 첫 한국 방문 중 잠시 동안 이민에 대한 비교적 평가를 할 수 있었다. 쉽게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결국은 캐나다에 조금은 후한 점수를 주었다. 그리고 휴식 잃은 이민여정은 이어졌다. (다음 호에 계속) *지난주 필자의 글 중 ‘꼭꼭 눌러두지 않을 수 없었다. 김태열의 분신이 있었고…’는 전태일의 오기였기에 바로잡습니다.-편집자 주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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