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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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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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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0
이별 연습

 
 

 우리 주변을 보면 항상 붙어다니는 부부들이 있다. 어떤 모임이나 행사이건 꼭 부부가 함께 다닌다. 시장 보러 갈 때도, 골프를 쳐도 부부가 함께 한다. 우리 부부도 그렇다. 우리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닭살부부’로 불린다. 어딜 가나 함께 다니길 좋아하고, 골프도 친한 친구 부부와 함께 치는 것이 마음 편하다. 무슨무슨 단체 골프대회에 오라고 해도 여간해선 안 간다. 아내는 홀로 집에 놔둔 채 남자끼리 떼로 몰려 다니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시간낭비에 불과한 것 같아서다. 

 

 

 


 이민생활에선 부부가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영업을 하면 좋든싫든 24시간 함께 붙어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느땐 늘상 보는 얼굴이 지겨울 때도 있다. 어느 친지가 하던 말. 저녁에 가게문을 닫고 집에 가기 위해 먼저 차에 탄 남편이 옆좌석에 앉으려는 아내를 보고 “에고, 또 너냐?” 하며 한숨을 쉬었단다.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부부가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환경이 이민생활이다. 그래서 부부 사이가 좋아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이처럼 나의 반쪽처럼 지내던 배우자 중 어느 한쪽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어느날 갑자기 나 혼자 남았을 때, 그 삶은 과연 어떨까. 이는 겪어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알 것이다. 


 내가 아는 친지의 요즘 모습이 너무도 안쓰럽다. 금슬 좋기로 소문났던 분들인데, 50여일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시고 나니 다른 한쪽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저히 자신이 없어 하신다. 아침에 눈을 뜨면 침대 옆에 남편이 누워있는 것 같고, 식탁 옆에도, 화장실에도, 공원 길을 걸어도, 남편의 생생한 환영(幻影)이 보여 미칠 것만 같다. 밤에 혼자 자려면 너무 무섭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다. 교회에 나가도 남편의 그림자가 밟혀 정신을 잃을 것 같다.


 남편의 빈자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세상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허무해 보인다. 길거리에서 누굴 만나도 그이와 비슷하고 상황마다 그때그때 추억이 떠올라 미칠 지경이다. 이러다 자칫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질 것만 같다. 


 연세 80이면 사실만큼 사신 것 같은데, 미망인이 느끼는 슬픔은 감당이 안 되는 듯하다. 함께 해온 날들이 너무 길고, 잊을래야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너무도 많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이는 부부간 사랑이 깊고 의지한 정도가 클수록 더욱 심각하다. 떠난 사람보다 남아 있는 사람이 더 딱하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다. 의술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졌다고는 하나 사별(死別)의 아픔은 나이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민생활 대부분의 모임이 부부가 함께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쪽이 먼저 떠가고 나면 모임에도 나가기가 어려워진다.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것도 그렇고, 다들 커플끼리 모이는데 분위기 깨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고독과 외로움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운전도 못하면 더욱 고립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요즘엔 수명이 길어져 부부가 함께 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그러나 그런 시간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언젠가는 누군가 먼저 떠날 것이고, 홀로 남은 이의 삶은 공허하기만 하다. 


 사랑하는 이와 사별하는 것보다 더 큰 스트레스는 없다. 그야말로 온 세상이 무너진 것 같고 내 몸 한쪽이 마비된 것만 같다. 삶에 아무런 의미도 없어진다. 


 배우자를 잃고 혼자가 되는 것은 그저 독신이었을 때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한 일이 아니다. 여러 해를 함께 살다 보면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된다. 그 한쪽이 없어진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저 캄캄할 것이다. 


 금슬 좋던 부부 중 어느 한쪽이 먼저 떠나면 그런 사람일수록 먼저 재혼하는 이유도 그렇단다.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못했다면 다시 그런 생활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며, 행복할수록 그런 경험을 다시 하고플 것이다.     


 부부가 평생 건강하게 함께 살다 어느날 고운 모습으로 함께 땅에 묻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인간의 힘으로 그럴 수만은 없다. 홀로 사는 것, 그것은 누구나 언젠가는 부딪힐 일이다. 따라서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때론 혼자 사는 준비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서로가 존중하는 가운데 평소 혼자서 즐기는 일도 좀 해볼 일이다. ‘이별 연습’도 엄연한 노후대책 중 하나인 것이다. 


 평소 사소한 일들로 원수처럼 토닥거리는 부부들도 막상 그 한쪽이 떨어져 나가고 내 몸 한쪽이 마비된다고 생각하면 살아서 그리 심각하게 다툴 일이 없을 것이다. 살아있을 때 서로서로 잘해 줄 일이다. 결국 남는 것은 부부 뿐이다.  


 사별의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은 외로울수록 사람들과 어울리고 환경을 바꿔보려 노력하는 것이 좋겠다. 또한 주위 사람들은 혼자 된 분들을 자주 찾아보고 말벗이라도 해주자.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그대의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이동원 ‘이별노래’)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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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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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3
아마존 천하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1964년 1월 12일 미국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서 태어났다. 제프 출산 당시 어머니는 고교생이었다. 그녀는 제프가 태어난지 얼마 안돼 결혼생활을 끝내고 싱글맘이 됐다. 제프의 생부(生父)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고, 제프에게 ‘베조스’라는 성을 물려준 사람은 양아버지(미겔 베조스)였다.

 

 

그는 1962년 쿠바에서 탈출한 이민자였다. 미겔은 쿠바 난민에게 장학금을 주는 앨버커키대를 다니고 밤엔 은행에서 근무했는데, 제프 어머니도 이 은행을 다니던 중 미겔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은 제프가 네 살 되던 해 결혼식을 올렸다.


 제프는 이후 생부를 만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양부(養父) 미겔이 그의 롤모델이 됐다. 미겔은 특유의 성실함과 명석한 두뇌로 훗날 엑손의 경영진에 올랐으며, 제프가 사업가로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제프는 “미겔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회고한 적이 있다. 


 제프는 어린 시절부터 강한 자아와 총기(聰氣)를 나타냈다. 세 살 때 이미 아기 침대 대신 어른 침대를 써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어머니가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자신이 직접 드라이버를 들고 아기 침대를 분리해 일반 침대로 바꾸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방 출입문에 임시 사이렌을 달아 어린 동생들이 들어오면 알람이 울리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특출한 재능으로 초등학교 영재 프로그램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과학과 모험은 어린 제프의 상상력을 무한 증폭시켰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에게 ‘스스로 만드는’ 전자키트를 사주며 격려했다. 조숙한 제프의 또 다른 영웅은 외할아버지(프레스톤 기스)였다. 미국 핵에너지위원회의 고위공직자였던 그는 과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통해 외손자 제프를 발명의 세계로 이끌었다. 제프는 마이애미 팔메토 고교를 1등으로 졸업하며 당시 지역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우주에 호텔과 놀이공원을 짓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교졸업 후 제프는 유일하게 프린스턴대에만 응시했다. “거기에 아인슈타인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 처럼 이론물리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대학에서 생애 최초의 좌절을 경험한다. 뛰어난 물리학과 학생들 틈에서 자신은 잘해야 중간 수준의 물리학자가 되리라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프린스턴대를 수석 졸업한 그에게 벨, 인텔 등 최고기업들이 입사를 제안했다. 하지만 제프가 택한 곳은 뉴욕 맨해튼의 벤처기업 피텔(Fitel). 첫 직장의 선택기준은 안정이 아니라 미래 가능성이었다. 글로벌 주식거래 네트워크를 추구하는 피텔에서 기술담당 이사를 맡은 제프는 23세의 나이에 세계를 누비며 영국, 일본, 호주 등지의 계정을 관리했다. 


 그후 제프는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뱅커스 트러스트)으로 자리를 옮겼다. IT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것이 임무였다. 26세에 그는 역대 최연소 부사장에 올랐다. 하지만 일상적인 업무에 곧 싫증을 느꼈다. 


 그런 제프를 사로잡은 이가 월스트리트의 헤지펀드 회사를 이끌던 데이빗 쇼였다.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 박사인 데이빗은 제프에게 지적 감화를 주었다. 제프는 1990년 D.E.쇼앤컴퍼니의 부사장으로 입사한다. 제프는 이때 자신의 밑에서 일하던 프린스턴대 출신의 매킨지 터틀을 만나 결혼했다. 아내에게 끌린 이유에 대해 제프는 “창의적이지 못한 이들과 함께 보내기에 인생은 짧다. 배우자도 창의력이 풍부하기를 원했다”고 밝혔다. 


 제프는 그러나 이 회사와도 결별하게 된다. 이유는 온라인 서점에 대한 견해차 때문. 신규 프로젝트를 맡고 있던 제프는 웹의 가능성에 매혹됐고 책이야말로 전자상거래에 가장 적합한 상품이란 결론을 얻었다. 보관과 운반이 쉽고 비용도 싸게 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데이빗 쇼는 그의 제안을 현실성 없다며 거절했다. 


0…1994년 제프는 연봉 100만불짜리 직장을 미련없이 떠났다. 아내와 미국횡단 여행을 하며 차 안에서 사업계획서를 썼다. ‘오프라인 서점 중 가장 큰 서점보다 열 배 이상 큰 초대형 온라인 서점을 만든다’는… 마침내 아마존의 전신인 ‘카다브라’가 탄생한 것은 같은해 7월. 제프는 시애틀에 집을 한 채 구해 사무실로 썼고 여기서 전자상거래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함께 일할 최고의 인재를 구하는데 골몰했다. 


 이듬해 회사설립 등록을 한 제프는 그 이름을 ‘아마존닷컴’이라 붙였다. 세계에서 가장 큰 강인 아마존강은 아마존 다음으로 큰 강보다 10배나 크다. 제프는 차등 경쟁자보다 10배 이상 큰 회사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창업자금 모금은 쉽지 않았다. 창업하겠다며 100만달러를 구하는 20대 젊은이에게 투자자들이 지갑을 열 리 만무했다. 당시(1995년)만 해도 인터넷의 상업성에 대해 부정적 인식도 많았다. 하지만 서류 한 장 보지 않고 10만달러를 선뜻 투자한 사람도 있었다. 창업자의 뛰어난 자질을 높이 산, 바로 제프의 부모였다. 제프는 이때 실패 가능성을 대비해 가족에게 “10만달러를 모두 날릴 지도 모른다”고 미리 경고했다.


0…‘리스크 테이킹(risk-taking)’의 자질은 오늘날의 제프를 있게 한 원동력이다. 높은 연봉의 안정된 직장을 떠나 성공이 불확실한 사업에 도전할 수 있는 강심장은 많지 않다. 위험천만한, 끊임없는 시도에 대해 제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래의 어느 순간, 이번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면, 기회를 살려야 한다.” 


 2016년 기준 매출 1,360억달러, 미국 가정 58%가 이용, 주가 1,000달러 돌파. 글로벌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이 1997년 나스닥 상장을 기점으로 20년 동안 달성한 지표다. 온라인에 기반을 둔 아마존의 급성장세는 오프라인까지 종횡무진 이어지고 있다. 현재 7,500만명의 아마존 프라임 회원은 2021년까지 2억명에 달할 전망이다. 계산원 없는 식료품 매장 ‘아마존고’에 이어 모바일 앱으로 주문한 신선식품을 지정한 시간에 수령 가능한 ‘프레시 픽업’ 매장도 열었다. 


 지난달엔 미국 최대 유기농식품 체인점 홀푸드를 137억 달러에 인수했다. 1980년 설립된 홀푸드는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에서 46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에 성공한 제프의 자산은 846억 달러(약 96조원)까지 치솟으면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896억 달러)에 이어 세계 부호 2위 자리를 차지했다. 


 아마존의 몸집 불리기는 기존 온라인 영역에서도 계속 진행중이다. 두바이 온라인 유통업체 인수, 동영상 서비스 기업 흡수, 로봇 물류 자동화업체, 온라인 의류판매 업체 인수… 아마존은 현재 시가총액 1위인 애플을 제치고 2027년 가장 먼저 1조 달러에 등극할 기업으로 꼽힌다. 


 제프는 언론에도 손을 뻗쳐 2013년 8월 경영난에 허덕이던 미국 3대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를 2억5천만 달러에 인수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제프의 지휘 아래 디지털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나아가 인공지능 등 비즈니스가 가능한 모든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구글이나 페이스북에서 검색한 제품은 물론, 애플 아이폰도 아마존에서 구입한다. 현재 구글과 페이스북, 애플 등과의 경쟁에서 최종 승자는 결국 아마존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지금껏 한 번도 혁신을 멈춘 적이 없는 기업인’.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제프 베조스를 일컬어 표현한 말이다. 94년 세계 최초의 온라인 서점을 선보인 이래 제프는 우리 삶의 양식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있다. 


 제프 베조스를 보면 ‘꿈의 크기는 성공의 크기와 비례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남이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그리고,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해 전력투구해왔기 때문이다.


 절대 강자만이 지배하는 시대, 그런데 솔직히 살이 떨린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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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6
끌탕하며 살지 말기

  

 지난 주, 가족들 성화에 못 이겨 거의 1년 반만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사실 많은 한국남자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어디가 아프지 않은데 굳이 건강검진 따위를 받으라면 귀찮아 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대개는 가족들이 떠밀듯 하면 마지못해 받곤 한다. 그런데 어느새 나이 환갑이 넘고 보니 주변에 몸이 편찮은 분들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보이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못 이기는 체하고 주말 아침 공복(空腹)으로 검진센터에 들러 피를 뽑고 소변검사도 받았다. 

 

 

 


 그런데 보통 별 이상이 없으면 그냥 지나가는데 무슨 이상이 있으면 가정의로부터 면담요청이 온다. 나의 경우 검사 후 나흘이 지난 수요일, 가정의 사무실로부터 “잠깐 면담 좀 하자”는 전화가 왔고, 이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엇이 잘못 됐을까. 혹시 간에 문제가? 아니면 전립선에? 당뇨?. 온갖 불길한 상상이 다 들었다. 나는 사실 검사날 아침 일찍 집의 화장실에 다녀온 직후였기에 검진실에서는 더이상 나올 소변이 없었다. 그래서 검사용 소변을 짜내느라 거의 5분 이상이 걸렸는데, 나는 아무래도 그때 억지로 짜낸듯한 그 소변에 무슨 이상이 있을 것만  같았다.  


 어쨌든, 다음날 가정의를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러나 아내에게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얼마나 걱정을 할까 싶어서였다. 가정의 면담 전날, 잠을 설치며 뒤척이는 밤이 무척이나 길고 캄캄했다. 평소 건강하던 사람이 우연히 검진을 받아보니 몹쓸 병에 걸렸더라는 이야기가 흔치 않던가. 만약 내 몸에 문제가 있다면? 나 스스로야 상관 없지만 아직도 젊고 아름다운 아내와 두 딸은 어찌 되는 건가…  


 다음날 가정의 사무실에 들렀고, 자그마한 1인용 진료실에서 대기하는 5분여 동안이 마치 몇시간은 되는 것처럼 불안하고 초조했다. 이윽고 문을 열고 들어온 의사의 눈치를 살피며 “무슨 심각한 증세라도…?” 라고 묻는데 내가 들어도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이에 가정의가 하는 말이 “아. 네. 다른 것은 이상 없고 소변에 요산(尿酸) 기가 좀 있네요. 그리고 고지혈 증세도 약간…” 하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하는 것이었다. 이 말에 나는 일단 후유~ 했다. 잘은 모르지만 치명적인 병은 아닌 것으로 들렸다. 


 요산(uric acid)은 암모니아성 질소화합물로 대부분 소변으로 배출되는데, 이것이 체내에 쌓이면 (엄지)발가락이 몹시 아픈 ‘통풍(痛風)’을 유발한다. 이는 고기를 좋아하고 비만인 남성들이 잘 걸리는 질환이라 ‘황제병’으로도 불린다. 이날 가정의는 나보고 고등어와 연어 같은 등 푸른 생선과 소의 간이나 내장 등을 주의하라고 일렀다. 그러면서 통풍이 왔을 때를 대비해 응급 처방전을 써주었다. 


 가정의는 또 고지혈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지방이 많은 육류를 너무 많이 먹지 말고 무엇보다 운동을 주기적으로 하라고 권했다. 쉽게 말해 음식을 잘 조절하고 운동을 꾸준히 하라는 주문이었다. 그런데 이 정도의 건강관리는 누구나 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래도 미심쩍어, 혹시 간이나 전립선에는 문제가 없냐고 물었더니 “이상이 없다”는 명확한 답이 돌아왔다. 가정의 면담 10여분 후 진료실을 나서는 나의 발걸음은 더없이 가벼웠다. 저녁에 집에 와서 아내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깜짝 놀라며 “어쩐지 어젯밤에 무언가 걱정이 있어 보이더군요”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늘 느끼는 기분이 있다. 몸에 별 이상이 없는 것만 확인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말이다. 세상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살리라. 남을 위해 봉사도 열심히 하고 평소 하고 싶었던 것도 좀 즐기면서. 그런데 막상 별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조금 전의 철석같던 결심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다시 나태한 습관으로 복귀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다.


0…“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지 말라. 죽음에 도달하는 순간 모두 제로가 된다.// 삶의 끝에서 아무도 당신에게 당신이 얼마나 많은 학위를 가졌으며, 얼마나 큰 집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좋은 고급차를 굴리고 있는지 묻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당신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위의 말은 20세기 최고의 정신의학자이자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그녀의 제자 데이빗 케슬러가 죽음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인터뷰해, 삶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을 정리한 책 <인생수업> (Life Lessons)에 나오는 말이다. 책에 따르면,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삶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내가 받은 영감은 매사를 끌탕하며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우연이란 없으며, 모든 일은 신의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일어난다.”는 것이다. 세상 살면서 우리가 마음먹은대로 되는 경우는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최선을 다하며 순간을 살다보면 결과는 저절로 따라오는 경우가 많다. 영육간의 건강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다. 매사에 끌탕하지 말고 그저 담담하게 살아가면 건강도 자연스럽게 따라줄 것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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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9
“떳떳하십니까?”

 

 영어속담에 ‘Everyone has a skeleton in his closet(사람은 누구나 벽장에 해골 하나는 갖고 있다)’는 말이 있다. 어감이 섬뜩하긴 하지만 누구에게나 말 못할 비밀이 있기 마련이란 뜻이다. ‘Every man has a fool in his sleeve(자신의 소매 안에 바보가 있다)’는 말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약점을 갖고 있다는 뜻으로, 우리말의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정도가 될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빈틈없이 완벽하고 업무적으로 뛰어난 사람도 말 못할 고민이나 외부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아픈 사연, 또는 꼭꼭 감추고 싶은 비밀 하나 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인간 개개인이 아무 흠결 없이 완전하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야말로 모두가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해서 공평하게 살아가는 지상낙원이 될까. 평화롭긴 하겠지만 좀 무미건조하지 않을까. 


 인간은 누구나 조금씩 모자란 면이 있기에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며 살아가는 맛이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허물은 사람을 인간적으로 좀더 친근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평소 엄숙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상관이 회식자리에서 다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때 직원들은 오히려 그에 대해 인간적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문제는 그 허물에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국정(國政)을 다루는 고위 공직자라면 도덕적으로나 양심적으로 일반인들보다 좀더 깨끗해야 국가의 영(令)이 설 터인데 현실은 그렇질 못하다는데 있다. 두달여 전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각료와 청와대 참모진 인선과정에서 드러난 추한 면면들을 보며 일반서민들은 혀를 차고 있다. 


 자녀교육을 명분 삼은 위장전입은 약과이고, 부동산 투기, 탈세, 뇌물, 논문표절, 음주운전… 언뜻 들으면 무슨 시정잡배들을 한군데 모아놓은 것 같다. 새 정부의 공직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난 흉한 민낯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국가를 통치한다면 국민들이 잘 따라줄까. 


 국민들의 축복 속에 닻을 올렸어야 할 새 정부가 출범도 하기 전부터 구성원들의 온갖 치부가 드러나면서 체면을 깎였다. 인간적 허물이라면 봐줄 수도 있지만 도덕적으로 죄의식도 없는 사람들이 국정을 논한다니 국민들이 이해를 할까.                


 고위공직자들 이력을 보면 한국의 지도층에 오르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있는 듯하다. 부동산 투기와 위장전입은 기본이요, 본인이나 아들은 디스크 등에 걸려  병역이 면제되고, 탈세를 통한 치부(致富), 법조계 출신의 전관예우, 학자출신이라면 논문표절 등, 이런 경력이 없으면 고위직에 오를 수 없을까 착각할 지경이다.


 고위층의 도덕기강 해이가 만연되다 보니 이젠 그런 것이 아무 죄의식 없이 사회 전체에 인식되고, 특히 부정과 비리가 일종의 능력처럼 비쳐지고 있다. 병역면제를 받는 것도 능력이요, 투기로 재산을 모으는 것도 능력이며, 이중국적, 전관예우 등도 모두 능력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진정한 개혁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문재인 정부의 초기 인사는 참으로 실망스럽다. 개혁성향으로 분류돼 호평을 받은 인사들조차 특권형 부패 의혹을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 운동 기간에 ‘인사 배제 5대 원칙’으로 논문표절,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병역면탈, 위장전입 을 제시하며 이를 저지른 인물은 공직 인선에서 배제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런 사람들만 모아놓은 꼴이 됐다. 


 개혁인사라는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탕평 인사’ 성격이었던 국무총리 후보자와 첫 여성 외교부장관 후보자 등이 모두 위장전입에 걸렸다. 국방장관 후보자란 사람은 해군참모총장 시절 군 납품비리 수사 중단 지시 의혹을 받는가 하면, 예편 뒤엔 로펌에서 거액의 ‘자문료’를 챙겼고, 교육부장관 후보자는 논문표절, 고용노동부장관은 만취 음주운전 전력을 안고 있어 야권에서는 이들에게 ‘비리 신(新)3종세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정도면 새 정부가 외치는 ‘적폐청산’ 구호가 공허하게만 들린다. 


 이전 박근혜 정부는 출범초기 낙마자가 너무 많아 인수위원회를 두 달 넘게 운영하고도 취임 한 달 후까지 내각회의를 열 수가 없었다. 특히 박근혜는 재임 4년 동안 총리를 3명밖에 기용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많다. 전관예우 특혜, 탈세, 직위 이용 축재 등 전형적인 특권층형 부정부패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이런 사람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며 정의 운운하니 나라가 제대로 작동되겠는가.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평소 능력 있고 훌륭하게 보이는 사람에게도 결함이 없을 수 없다. 완전하게 보이는 사람도 가까이 지내다 보면 약점이 많이 보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국정업무를 수행하는 공직세계에 만연될 경우 조직의 정당한 권위마저 인정을 못받고 위계질서가 무너지게 된다. 


 예로부터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 했다. 우선 나 자신과 주변부터 잘 다스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나 자신도 떳떳하지 못하면서 무슨 천하를 논하는가. 우리는 진정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 떳떳하게 살고 있을까? 적어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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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3
혼술 자적(自適)

 

 

花間一壺酒(화간일호주), 獨酌無相親(독작무상친) 
擧杯邀明月(거배요명월), 對影成三人(대영성삼인) 
月旣不解飮(월기부해음), 影徒隨我身(영도수아신) 

 


(꽃나무 사이에서 한 병의 술을/홀로 따르네 아무도 없이/잔 들고 밝은 달을 맞으니/그림자와 나와 달이 셋이 되었네/달은 술을 마실 줄 모르고/그림자만 나를 따르네…)


 중국 최고의 시인 이백(李白)의 ‘달 아래 홀로 술을 마시며(月下獨酌(월하독작)’ 시를 음미하노라면 과연 시선(詩仙)다운 풍류가 차고 넘친다. 이백은 외로운 낭만주의자였다. 인생의 무상을 관조하며 세상을 초월하고 자유를 찾아 유랑했다. 이백에게 술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그의 생애를 통틀어 술은 문학과 사색의 원천이었다. 


 이백이 평생 술을 즐겼음은 유명하다. 그래서 ‘주선(酒仙)’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백의 시 곳곳에선 짙은 술향기가 배어난다. “고담준론이 사방에 가득하니 하루에 천 배를 기울였네“ “한번 마시면 삼백 배를 마셔야 하나니” “함께 취하여 평생을 즐기다” “취한 뒤엔 천지(天地)도 잃어버려 내 몸이 있는 것조차 알지 못하니”…


 이백은 술만큼 달(月)도 좋아했다. 물 속의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水中捉月-수중착월)는 설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술과 달을 즐기며 분방한 인생의 경지를 추구했다. 그러나 술을 너무 좋아하다 술로 인해 명(命)을 재촉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0…자고로 술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인(惡人) 없다는 말이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계산적이지 않고 마음이 넓다는 뜻이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은 대개 성격도 꼬장꼬장함을 알 수 있다. 세상 살면서 어느 땐 한잔 하고 자세도 좀 풀어지는 경우도 있을 터, 그런 면이 없다면 인간적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문학과 술은 바늘과 실처럼 따라 다닌다. 문학 한다는 사람이 술을 모른다면 인생의 고뇌를 깊이 다루지 못함과 같다 할 것이다. 이래서 술은 적당히 잘만 마시면 인생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과할  때 발생한다. 허긴, 과해서 좋은 것이 어디 있으랴.


 요즘 내가 ‘혼술’(혼자 마시는 술)의 묘미를 알기 시작했다. 이 나이토록 술은 혼자서 마시면 무슨 큰일이나 난 줄 알았다. 알콜중독자나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혼자서 한잔 하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술마시고 운전하는 것을 피하다 보니 그리 된 것이지만, 어쨌든 혼술 맛이 쏠쏠했다. 


 우선 혼술을 하면 마음이 느긋해진다. 누구와 어울려 마시면 대화에도 신경써야 하고 주변의 눈도 있어 편치 않으나 혼자 술을 마시면 TV 의 고향산천을 감상하며 향수에 젖어들 수도 있으니 얼마나 편한지… 생각도 이리저리 자유롭고 여유있게 할 수 있다. 


 또한 혼술은 누가 권해서 드는 것이 아니니 도가 지나치는 일이 없다. 나는 원래 술을 반주(飯酒)로 즐기는 체질이라 과음하는 일이 적다. 일단 속에 밥이 들어가면 술을 억지로 먹여도 써서 먹지를 못한다. 특히 즐거운 일이 있거나 기분 좋을 때 주로 술을  마신다. 기분이 우울하면 술도 입에 쓰며, 그럴 땐 아예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 버린다. 


 저녁에 집에서 혼자 와인잔을 기울이노라면 가끔 아내가 대작(對酌)을 해주니 이 또한 즐거움이다. 다만 아내는 소량이라도 매일 그렇게 마시면 좋을 리 없다며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나의 건강을 생각해 하는 소리라고 새겨 들으면 오히려 고마워진다.  


0…“무리지어 다니면서 성공한 사람은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혼자일 수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일본 메이지대 교수 사이토 다카시는 베스트셀러 ‘혼자 있는 시간의 힘’에서 때론 '나'에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항상 누군가와 연결돼 있거나 누군가와 잘 지내는 것이 꼭 유익한 게 아니란 것이다. 


 내 스스로 남의 평가와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자존(自存)할 수 있을 때 남과도 잘 지낼 수 있다. 바쁜 삶을 살더라도 잠시나마 자신에게 집중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으며, 그 시간들을 통해 자존할 여력을 갖출 수 있다.


 나이 먹을수록 변해가는 것 중 하나가 사람 만나는 일이 귀찮아졌다는 것이다. 나는 성격이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라, 전에는 걸핏하면 모임자리를 만들었다. 이사람 저사람 연락해 식사와 술자리를 만들어 즐겼다. 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 그 모든 것이 시큰둥해졌다. 그런 자리가 별 의미가 없어졌다. 모임을 갖는다고 우정이 쌓이거나 사람을 깊이 사귀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을 만날수록 오히려 악연(惡緣)만 쌓여갔다. 


 아니다 싶은 사람과는 구태여 시간을 낭비하며 인연을 이어갈 필요가 없다. 나는 요즘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갖다 보니 전보다 책도 많이 읽게 되고 나를 돌아보는 기회도 많아졌다. 정신적으로도  한결 여유로워졌다. 


 유유자적(悠悠自適), 그야말로 속세를 떠나 아무런 속박 없이 조용하고 편안하게 사는 삶이다. 번잡한 세상사 물리치고 가끔은 스스로의 세계에 침잠해보는 것도 정신건강상 좋지 않을까 한다. 내가 요즘 혼술자적(自適)의 운치를 느끼기 시작한 이유도 그렇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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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5
제자리 찾는 부동산 시장

 

 광역토론토의 부동산 시장이 이렇게 달라지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분들이 많다. 불과 두달여 전까지만 해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토론토의 집값이 눈에 띄게 꺾이기 시작했다. 매물은 쏟아져 나오는 반면, 거래는 급격히 줄고 있다. 지난 4월 20일 온주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약효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가격은 완만하지만 상승세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이전의 기대치를 아직 그대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거래가 부진하다 보니, 이사갈 집을 이미 사놓은 후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려는 사람은 불안하다. 이런 현상은 연쇄적으로 맞물려 있어 상황이 심각하다. 또한 앞날을 걱정하는 중개인도 늘고 있다. 한두달 수입이 끊기면 초조해질 수밖에 없다.   


 본인이 2015년 3월에 쓴 칼럼이 ‘집값 백만불 시대’였다. 토론토의 웬만한 집은 모두 백만불을 넘기며 펄펄 끓고 있다는 글이었다. 집값 상승세가 급격히 꺾이는 일도 없을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그때만 해도누구나 그런 전망을 내놓았다. 그 근거로, 캐나다에는 연간 25~30만 명의 새 이민자가 들어오고 있어 주택수요는 늘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또한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도시확산을 막고 사람들이 도심에 모여 살도록 유도하는 것이 캐나다의 정책이다보니 토론토는 집이 턱없이 부족하고 값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 와중에, 해도 너무 한다 할 정도로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서민들의 주거환경은 상대적으로 더욱 열악해지면서 정부가 주택시장에 강력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따라 외국인 취득세 15% 중과세, 빈집 과세 등의 조처를 담은 4/20 발표가 나왔고 이는 다음날부터 즉각 시행에 들어갔다. 정부의 이런 전격 조처는 펄펄 끓는 물에 찬물 한방울을 톡 떨어트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정부조처가 시행되자마자 부동산 시장은 거짓말처럼 돌아서기 시작했다. 동네마다 세일 간판이 잇달아 걸리지만 거래는 한산해졌다. 문전성시를 이루던 오픈하우스 현장엔 신기할 정도로 발길이 뜸해졌다. 매물 나오기 무섭게 벌떼처럼 달겨들던 멀티오퍼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2백만불이 넘는 고가주택은 거래가 거의 끊겼다. 


 최근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콘도에 수요가 몰리고 있다. 이러다 보니 이싱 과열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원하는 유닛 구하기가 무척 어려워진 것이다. 특히 중국계 부동산 회사들이 콘도 물량을 장악해 선점함으로써 한인고객은 선호하는 콘도 구하기가 어렵다. 시 외곽 콘도가 분양을 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동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한인중개인들은 손님에게 좋은 유닛을 구해주기 위해 벼라별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다. 이런 치열한 경쟁에서 쳐지면 살아남기가 어렵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정부가 모종의 조처를 취할 것을 이미 예상한 탓인지 올해는 봄마켓이 2, 3월에 일찌감치 막을 내리고, 4/20 폭탄급 조처가 발표되면서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현재로서는 이런 조정국면이 한동안 지속되다 늦여름~초가을로 접어들면서 가을시장으로 서서히 회복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밴쿠버도 정부개입 후 거래가 뚝 끊겼다가 서서히 원상 복귀하는 양상이다.    


 어쨌든, 이제 부동산 시장이 정상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동안은 솔직히 비정상이었다. 집을 내놓기 무섭게 복수오퍼가 쇄도해 서민들로서는 그림의 떡인 수십만불이 웃돈으로 붙여져 돈이 마치 종이조각처럼 남발되는 것이 정상인가. 이런 현실에 저변계층의 허탈감과 상실감은 커져만 갔다. 월급쟁이가 집 한채 마련하려면 평생 죽도록 일해야 하는데, 어느 세월에 돈을 모아 백만불이 넘는 집을 장만하는가. 


0…요즘 부동산 전망에 대한 문의를 많이 받는데, 전망이란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경우도 많다. 그래서 전문가들도 향후 시장에 대한 답을 하기가 매우 난처해 한다. 지금은 일시적 조정기이며, 곧 회복될 거라고 하면 집을 사거나 팔라는 은근한 제안같이 들리고, 반대로 어둡게 얘기하면 매매의욕을 떨어트리기 때문에 꼭 집어서 말하기가 어렵다.  


 집값은 양면성을 갖는다. 집을 가진 사람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오르는 것이 좋지만 없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집 마련의 꿈이 자꾸 멀어지는 것이다. 또한 집은 재산가치로 보느냐, 살아가는 주거공간으로 보느냐에 따라 관점이 달라진다. 최근 한동안은 집을 재산가치로 보는 경향이 컸다. 그래서 무차별 투자행태를 보여왔다. 이제는 주거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주택시장이 안정된다. 


 집값은 심리적 요인이 많이 작용한다. 많은 이들이 지금은 조정기란 생각에 서로 매매를 자제하고 있다. 이러다 보면 시장이 더욱 침체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 이는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정상적인 거래마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현재의 부동산시장은 한마디로 관망세다. 그러나 이런 추세가 너무 오래 가면 좋지 않다. 따라서 지금의 부동산 시장 원칙은 바로 ‘욕심 줄이기’가 아닌가 한다. 즉, 팔 사람은 값을 조금 낮게, 살 사람은 조금 높게 잡는 것이다. 그래야 시장이 작동되기 시작할 것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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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8
가끔은 숲도 보자

 
 

 이민 와서 친형제 이상으로 정을 나누며 지내던 어르신이 엊그제 돌아가셨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무척 건강하셨는데, 인생무상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평소 와인을 즐기시어 나와 마주 앉아 권커니 잣거니 했는데, 고인의 차디찬 얼굴을 쓰다듬어 드리자니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금슬 좋은 부부로 유명하셨는데, 미망인은 앞으로 얼마나 외로우실까. 

 

 

 


 장례식에 다녀올 때마다 하는 다짐이 있다. 살 때는 열심히 살되 현실에 너무 집착하지는 말자… 욕심 버리고 마음 편히 살자… 그런데 그런 다짐은 이내 며칠을 못 가고 다시 눈앞의 현실에 아둥바둥하게 된다.

            
0…“‘작가가 되고 싶어’라고 말하는 사람과 ‘글을 쓰고 싶어’라고 말하는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칵테일파티’에서 주목 받고 싶은 사람이다. 반면, 후자는 책상에서 고독의 시간을 가지며 오랫동안 준비하는 사람이다. 전자는 작가의 지위를 원하고 후자는 과정을 중시한다. 전자는 원하는 것이고, 후자는 실행하는 사람이다. 결국 후자가 뭐든지 이루어낸다.” 


 <새 인문학 사전> <존재의 이유> 등 베스트셀러 작가로 알려진 영국의 철학자이자 유럽을 대표하는 지성인 A.C. 그레일링(Grayling)이 지적한 이 말은 일의 결과나 목표보다 과정을 중시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유명작가가 되겠다는 목표 아래 쓰는 글과,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와 쓰는 글 중 어느 것이 더 진솔하고 따스한 인간미가 배어있을 지는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성공 가능성도 후자가 더 클 것이다. 


 인생에서 결과와 목표만 중시하다 보면 성공 순간에 잠시 성취감에 잠길 뿐, 오랜 시간 스트레스와 초조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반면, 일의 과정을 즐기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여유롭게,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목표만 보고 달리면 더 큰 가치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짧은 기간에 고도성장을 이룩한 것은 목표 지향적 가치가 큰 몫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서 어떻게든지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사회병리현상을 나은 것도 사실이다. 우리세대에게 익숙한 암기위주의 학습방법도 결과만 중시하는 사고방식을 나았다.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보다 결과적 정답만이 우선시 된 것이다.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할 때도 삼라만상의 본질을 관찰하는 수련이 중요하다. 이것이 결여되면 혼(魂)이 없는 기계적 작품이 되고 만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과정을 즐기면서 하는 공부가 참된 공부다.  


0…나는 골프를 잘 치지 못하지만 누가 초청하면 기꺼이 응한다. 필드에 나가기까지의 여정 자체를 즐기기 때문이다. 골프백을 챙기고 클럽을 손질하면서 만사 잊고 기대감에 가슴이 설렌다. 특히 쾌청한 날의 새벽 골프를 즐긴다. 신선한 새벽 공기 속에 드라이브를 하며 즐기는 커피 한잔과 클래식 음악은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골프장 가는 길이 멀어도 좋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또 그것대로, 다 아름다움이 있다. 그 과정을 즐기면 된다. 이렇게 마음의 여유를 만끽하며 치는 날은 거리도 멀리 나가고 점수도 잘 나온다. 목표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골프장의 홀과 홀 사이를 걸을 때도 주변 풍경을 최대한 즐긴다. 점수가 좀 높으면 어떤가. 이런 재미로 필드에 나오는 것이지 그까짓 점수가 무슨 대수인가. 이런 시간을 갖는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가. 파란 하늘과 싱그런 숲을 즐길 여유도 없이 온통 점수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인생여정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가야할 길이 멀다고 짜증낼 것도 없고 길이 막힌다고 불평할 것도 없다. 하이웨이를 씽씽 달리면 주변경치를 즐길 여유가 없다. 호젓한 교외(郊外) 길을 따라 드라이브 하면서 시간을 따진다면 소모적인 고행이다. 차는 그냥 교통흐름에 맡긴 채 감미로운 음악도 듣고 휴게소에 들러 커피도 한잔 하면서 느긋하게 운전하면 얼마나 여유로운가. 


 우리네 이민생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목표를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때론 주위 좀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에 집착하면 아름다운 캐나다의 자연도 나와는 무관한 것이 되고 만다. 물론 먹고 사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다만 지나치게 집착할 것이 아니란 뜻이다.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죽어라 일만 하다보니 그런대로 먹고살만해지긴 했지만 잃어버린 청춘은 어디서 보상받느냐며 한숨 쉬는 사람도 많다. 


0…일상에서 지나치게 결과와 목표만 추구하면 스트레스도 심하고 일도 되레 잘 안 풀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너무 현실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가끔은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보며 한숨 고르는 여유도 가질 일이다. 나무만 보지 말고 가끔은 숲도 보자.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으리라/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으리라/이 봄도 산허리엔 초록빛 물들었네/세상 번뇌 시름 잊고 청산에 살으리라/길고 긴 세월 동안 온갖 세상 변하였어도/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으리라’(김연준 작사•작곡 ‘청산에 살리라’)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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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2
조성훈, 앞날이 더 힘들다-이기석 한인회장은 반성을

 

 작년 가을부터 달아오르기 시작한 온타리오보수당 노스욕 윌로우데일 선거구 후보 경선이 마침내 조성훈(Stan Cho.39) 후보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번 경선에는 당초 이 지역에 많이 사는 이란계 및 이탈리아계와 조 후보를 비롯한 한인 3명 등, 모두 5~6명이 출발했으나 도중에 절반이 포기하고 결국 한인후보 2명이 맞대결을 벌이게 됐다. 

 

 

 


 특히 이번 경선은 캐나다에서 한인동포가 가장 많이 사는 지역에서 한인끼리 맞붙은데다 투표장소 또한 한인교회였던지라, 온전히 한인사회의 이벤트로 치러졌다. 특정 정당 지역구에서 한인끼리 경선을 벌인 것은 캐나다 한인이민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실 이런 대결구도가 썩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다. 경선이 다자(多者)구도라면 선호도 투표 방식을 통해 한인끼리 서로 제휴도 가능하지만 양자대결은 어차피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히 한인들은 두 후보 중 어느 한쪽을 전폭적으로 밀어주기가 곤란한 측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좁은 이민사회에서 두 후보 모두에게 친분이 있는 분들은 어느 편을 지지할지 입장이 곤란해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3년여전 같은 지역에서 벌어진 조성용(Sonny Cho)씨의 연방자유당 경선 때는 전 한인사회가 힘을 모아 그를 밀어주었지만 이번은 여론이 양분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 누군가 한 명만 선택해야 한다면 후보자의 인물 됨됨이와 정치적 역량, 향후 성장 가능성 등을 종합 평가해 냉정하게 선택해야 함이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조성훈 후보는 단연 한수 위였다. 동포들이 보아왔듯 조 후보는 뛰어난 자질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정직하고, 정치적 잠재력이 풍부하다. 특히 대중을 설득시킬 영어연설이 탁월하다. 일의 추진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런 사람이 지역대표로 나서야 내년 본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동포들의 선택은 현명하고 올바른 것이었다.  


 0…사실 경선 캠페인 과정에서 상대후보 진영에 아쉬운 점도 많았다. 페어플레이를 다짐해놓고 SNS에 ‘조 후보측이 표를 돈으로 샀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등 정도(正道)를 벗어난 행태를 보였다. 그러나 조 후보는 이를 다 덮어두고 묵묵히 페어플레이를 펼쳤다. 충분히 명예훼손 감이 되고도 남는데도 굳이 문제 삼지 않았다. 나는 곁에서 그를 지켜보면서 그 의연함에 놀랐다. 상대방이 네거티브전을 펼치는데도 맞대응을 자제하고 제갈길만 걸었다. 


 한인끼리 맞붙은 윌로우데일은 이처럼 조마조마한 국면도 있었으나 조후보 측이 인내를 발휘해 페어플레이로 나가면서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두게 됐다.    

  
 0…한편, 이번 경선은 왜곡된 토론토한인사회의 한 단면이 드러난 것이었다. 현직 한인회장이 본연의 임무는 뒷전으로 미룬채 정치일선에 나선데 대해 동포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한인회 운영이 잘 돌아가는 상황이라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만약 이기석씨가 이번 경선에 승리했다면 한인회장 자리는 어찌할 생각이었는지. 경선에서 이기면 한인회장 자리는 미련없이 다른 이에게 넘겨줄 셈이었는지. 10만 동포사회를 대표하는 한인회장 자리가 그렇게 값싼 자리인지.    


 이런 시점에 동포들의 선택은 아주 냉철했다고 본다. 한인회장은 한인회 일에 충실하라는 주문, 바로 그것이다. 동포사회 인지도 면에선 한인회장이 조 후보에 비해 월등히 높은데 유권자들은 조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왜 그랬을까? 이기석씨는 한인회장 하라고 뽑아준 것이지 그 직위를 이용해 정치에 나서라는 뜻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인회 임직원들이 투표장에 동원돼 팻말을 흔드는 모습이 과연 정상인가. 한인회장은 이 기회에 깊이 반성해야 한다. 


 이 회장은 대다수 한인언론도 조 후보 편이었다고 불평할지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동포사회 대표가 본연의 임무에 소홀하다면 누가 밀어주려 하겠는가.  


 0…또 다른 한편, 조성훈 후보는 승리의 환호도 잠시뿐, 앞으로 훨씬 더 험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 진짜 게임은 이제 시작이다. 내년 본선의 상대는 2003년부터 내리 4선을 기록 중인 정치거물이요, 한인사회에도 친숙한 데이빗 지머 자유당의원(73, 원주민담당장관)이다. 그는 선거때마다 갈수록 득표율이 상승해 2014년에는 4명의 후보 중 과반이 넘는 52.62%의 놀라운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런 거물과 상대하려면 조 후보는 과연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자명하다. 


 물론 선거는 소속 당과 당수의 리더십, 인기도, 카리스마가 판세를 좌우한다. 근래 온주자유당 정부의 실정(失政)으로 내년엔 보수당 집권 가능성이 높다. 이러다 보니 보수당 공천경쟁이 심해 일부 지역구에서는 경선을 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으며 당수가 사설감사까지 벌이게 됐다. 


 그러나 당도 당이지만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다. 조성훈 후보의 장점은 어찌 보면 경선 상대와 대조적인 것이어서 반사이익이 돋보였던 것이다. 상대후보의 흠결이 이쪽의 장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젠 다르다. 강력한 비전을 제시하고 다양한 민족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알찬 공약을 개발해야 한다. 그야말로 이젠 한인사회에서 벗어나 주류사회를 상대해야 한다. 시냇물을 지나 바다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윌로우데일의 인구는 약 11만, 유권자는 7만4천여 명이며, 매 선거 때마다 대략 4만 5천명 안팎이 투표에 참여한다. 한인 최대 밀집지역인 이곳의 한인 수는 1만여 명, 유권자는 5,500여 명으로 7% 정도다. 소수민족의 권익신장은 바로 정치를 통해 이룩된다. 부디 끝까지 조성훈 후보를 도와 캐나다 한인역사상 최초의 2세 정치인을 탄생시키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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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lee
이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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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5
왜 조성훈(Stan Cho)인가?(2)

 

 

 지난해 가을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한 온타리오 보수당(PC) 노스욕 윌로데일 선거구 후보 경선이 마침내 28일(일) 투표로 판가름 나게 됐다. 이번 경선에는 당초 이 지역에 많이 사는 이란계 및 이탈리아계와 조성훈(Stan Cho.39) 후보를 비롯한 한인 3명 등, 모두 5~6명이 출발했으나 도중에 절반이 포기하면서 결국 한인후보 2명이 맞대결을 벌이게 됐다. 


 이에 따라 투표결과가 어떻든 한인이 지역구 후보가 되는 것은 틀림 없게 됐다. 이번 경선은 캐나다에서 한인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에서 한인끼리 맞붙은데다 투표장소 또한  한인교회인지라, 온전히 한인사회의 이벤트가 됐다.     


 특정 정당의 지역구 후보 자리를 놓고 한인끼리 경선을 벌이는 것은 캐나다 한인이민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나 사실 이런 대결구도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경선이 다자(多者)구도라면 선호도 투표 방식을 통해 한인끼리 서로 제휴도 가능하지만 양자대결은 어차피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특히 한인동포들도 양측 후보 중 어느 한쪽을 전적으로 밀어주기가 곤란한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좁은 한인사회에서 두 후보 모두에게 친분과 안면이 있는 분들은 어느 편을 지지할지 입장이 곤란해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3년여전 같은 지역에서 벌어진 조성용(Sonny Cho)씨의 연방자유당 경선 때는 전 한인사회가 힘을 모아 그를 밀어주었지만 지금은 여론이 양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누군가 한 명만 선택해야 한다면 후보자의 인물 됨됨이와 정치적 역량, 향후 성장 가능성 등을 종합해서 평가해보고 냉정하게 선택해야 함이 당연하다 할 것이다. 


 조성훈 후보는 한마디로 정직하고 능력있고 추진력이 뛰어나다. 이런 사람이 지역구 대표로 나서야 내년 온주 총선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내년 총선의 상대는 4선 경력의 자유당 현역의원(데이빗 지머)이다.  


 그동안 한인동포들이 직접 보아왔듯, 조성훈 후보는 다음과 같은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다. 


▶첫째, 정직하다. 그는 결코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다. 거짓말을 쉽게 하는 사람을 지역사회 대표로 뽑아서는 절대로 안된다.  

 
▶둘째, 정치적 능력이 뛰어나다. 특히 대중을 설득시킬 영어연설이 탁월하다. 그가 연설을 하면 청중이 압도된다. 세대를 막론하고 그처럼 연설에 뛰어난 한인을 나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연설실력은 정치인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아무리 식견이 풍부해도 대중을 설득시킬 언변(言辯)이 모자라면 정계에선 소용이 없다.  


▶셋째, 업무 추진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일단 마음을 먹으면 과감하게 밀어부치는 타입이다. 그는 윌로데일 지역사회를 확 바꿔놓을 사람이다.     


 조 후보는 인간적 깊이가 있고 친구간 우정과 의리가 돈독해 주변에 사람이 많다. 그의 이같은 역량을 알아본 보수당 공천심사위는 그가 후보신청서를 낸지 일주일도 안돼 바로 예비후보 승인을 내주었다(Green Light). 후보신청을 해도 중대한 결격사유가 있거나 역량이 모자라다 싶으면 당에서는 승인을 내주지 않거나 차일피일 미루며 스스로 판단을 내리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0…조 후보는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동포2세이다. 그러나 그가 단지 한인이라 해서 무조건 밀어주자는 것이 아니다. 한인에게 민족의식이 없다면 동포사회와 관계도 없다. 그런데 조 후보는 민족의식이 투철하며 진심으로 한인들을 위할 인물이다.


 그는 특히 자라면서 커뮤니티 파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한인들이 주류사회에서 대우를 못 받는 것은 정치적 힘이 약하기 때문이며, 소수민족의 권익은 바로 정치를 통해 이룩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영어가 편하지만, 한국말로 의사소통하는 데도 지장이 없다. 그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한국말을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어르신들에 대한 예의범절도 깎듯한 그야말로 진정으로 동포들 권익을 보호하고 정치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제 목소리를 낼 인물이다.


 나는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조 후보에 대한 지지 호소 글을 써왔다. 그런데 누구를 지지할 경우 그것이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그런 것도 가능하다. 그를 곁에서 지켜볼 때 참 올바른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고 그래서 이런 사람이 바로 지역사회 대표로 나서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 속으로 절감한다.    


 솔직히, 이번 캠페인 과정에서 상대후보 진영에 아쉬운 점도 많았다. 페어플레이를 다짐해놓고 SNS에 허위사실을 유포시키는 등 정도(正道)를 벗어난 행태를 보여줬다. 그러나 조 후보는 이를 다 덮어두고 묵묵히 페어플레이를 펼쳐왔다. 이런 사실을 아시는 동포는 다 아실 것이다.


0…노스욕에 거주하시는 유권자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이번 일요일(28일) 오후 가든교회에서 실시되는 경선투표에 꼭 참여하시어 어느 후보가 과연 한인사회를 위하고, 지역사회를 위해 일할 능력이 있는지 판단하시어 그에게 투표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바로 기호 1번 Cho, Stan 입니다. 투표용지 상단에 있는 Cho, Stan에게 체크 표시를 해주세요. 부디 조 후보를 도와 캐나다 한인역사상 최초의 2세 정치인을 탄생시켜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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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9
사랑도 명예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임을 위한 행진곡’)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따라 부른 것은 지금부터 꼭 30년 전인 1987년 이맘때, 그러니까 이른바 6월 항쟁을 앞두고 전국에 한창 민주화운동 바람이 불 때였다. 당시 ‘넥타이 부대’로 상징되는 민중항쟁을 맞아 직장생활을 하던 나도 종로와 광화문 일대를 누비며 소극적이나마 시위대열에 참여했다. 그때 어느 자리에선가 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처음 듣는데, 서사시 풍의 가사와 함께 선율에 비장미(悲壯美)가 감돌아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특히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라는 대목에선 웬일인지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군에도 다녀왔지만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민주화 열망이 그만큼 컸던 시기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재야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의 시 '묏비나리'를 소설가 황석영이 다듬어 가사로 만들었으며, 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전남대생 김종률이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진압에 희생된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1981년 작곡했다. 윤상원은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마지막 날 전남도청에서 숨졌으며, 박기순은 들불야학 교사로 일하다 희생됐다. 


 이 노래는 1982년 음반(넋풀이- 빛의 결혼식)에 수록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시민사회단체와 노동.학생단체 집회 등에서 널리 불리게 됐다. 그러나 이 노래가 세상에 빛을 보기까지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금은 외국의 운동권에서도 이 노래를 개사해 부를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여기까지 오기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0…‘임을…’은 5.18을 상징하기에 군부정권 시절인 80년대에는 금지곡으로 지정됐고 일부 보수단체는 노랫말 속 '임'이 북한 김일성을, '새 날'은 사회주의 혁명을 지칭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보수단체는 특히 노래의 원곡이 북한이 5.18을 주제로 만든 영화 ‘임을 위한 교향시’의 배경음악이고, 작사자 황석영은 불법으로 월북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복역한 반체제 인사라며 이 노래는 종북세력이나 부르는 것이라고 비난을 가했다. 


 그러다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은 1997년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정부주관 공식행사로 치러졌고, 행사의 마지막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마쳤다. 즉, 이때부터 2008년까지는 별 논란 없이 그저 '운동권 노래' 정도로 간주됐다. 2004년 참여정부 당시 거행된 5.18 기념행사에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가사도 안 보고 이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2009년부터 이명박 정부는 5.18 행사에서 이 노래를 ‘제창’ 대신 ‘합창’으로 바꿔 논란이 일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지금까지도 제창이냐 합창이냐는 문제를 놓고 옥신각신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 이 노래에 대한 퇴출 논란이 거세졌고 그 중심에서 국가보훈처가 혼란을 부채질했다. 보훈처는 이 노래를 대체할 새로운 노래를 만들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정부 행사에서 아예 이 노래를 제외한다고 발표했다가 거센 반대여론에 부딪치는 등 갈팡질팡했다. 


 이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파면당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마침내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이 노래를 제창으로 부를 것을 지시해 올해부터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서 ‘임을…’ 노래의 선율이 흐르게 됐다. 이에 앞서, 독불장군식 행동으로 국회에서 두차례나 해임촉구까지 받은 보훈처장은 새 대통령 취임 직후 가장 먼저 사표가 수리됐다. 노래 하나 갖고 이처럼 곡절을 겪은 예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이 노래는 최근 대통령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기존의 민주화운동 세대는 물론, 노래 자체가 다소 생소했던 20~ 30대에게까지 전파되면서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국민노래가 되었다. 


0…'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민주화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창'이냐 '합창'이냐를 놓고 논쟁을 벌이며 시간을 허비한 것은 참으로 씁쓸한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제창(齊唱)은 애국가처럼 참석자 모두가 (의무적으로)부르는 것이고, 합창(合唱)은 부르고 싶은 사람만 부르면 된다. 행사장에서 '제창'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그 노래가 단순히 배경 음악이 아니라 모든 참석자들이 노래를 부름으로써 그 노래를 통해 행사의 뜻을 되새긴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제창이라 하더라도 강제성은 없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즉, 행사 참석자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고 법적 처벌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창이냐 합창이냐는 논란은 다분히 감정적 측면이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오랜 진통 끝에 마침내 제자리를 찾은 ‘임을 위한 행진곡’. 이는 종북과는 상관이 없으며 출처 또한 종북과 무관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젠 변하는 시대와 함께 우리들의 사고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새 날이 올 때까지…’ 나의 카톡 화면에 적힌 문자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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