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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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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술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 (김현승 ‘아버지의 마음’ 중)

 

 한국은 자고로 엄부자친(嚴父慈親)이 전통적 부모상(像)이었다. 아버지는 엄하고 어머니는 자애로운 게 보통이다. 부성애(父性愛)는 강하다. 아버지에겐 나약한 눈물 따위가 있을 수 없다. 울고 싶어도 참아야 하고 남몰래 숨어서 울어야 한다. 그래서 아버지 술잔에는 눈물이 반이다.   

 

0…아버지가 드러나게 자식사랑을 표하는 것도 한국적 가치가 아니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무서운 존재였다. 오늘날 ‘아빠’들은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놀아주지만 옛날 아버지들은 기뻐도 표정없이 그냥 빙그레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구한말 미국의 동양학자 윌리엄 그리피스는 당시 조선의 실상을 기록한 ‘은자(隱者)의 나라 한국(Corea-The Hermit Nation)’에서 부자(父子)관계를 이렇게 적었다. “아들은 아버지 앞에서 담배를 피워도 안 되고 자세를 흐트려도 안 된다. 밥상에서도 아버지가 먼저 들기를 기다리며 아버지의 잠자리를 보아드린다. 아버지가 늙으셨거나 와병 중이면 옆에서 잠을 자며 밤낮으로 곁을 떠나지 않는다.”


 예전 늙으신 아버지들은 막걸리와 담배 냄새에 찌들어 목에 가래가 그렁거리던 모습이었으나 그럼에도 범접하기 어려운 근엄함이 있었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에서는 아버지의 장죽(長竹) 담뱃대 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0…나는 여섯 살 무렵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지금은 병이라고 할 수도 없는 복막염으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아버지는 사업을 하러 주로 밖으로 도셨기에 살갑게 말을 붙여 볼 기회도 적었다.


 아버지 상여가 나가던 날 나는 깡충깡충 뛰어 놀았고 어른들은 그 모습에 눈시울을 훔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아버지라는 호칭을 쓸 일이 없었기에 지금도 용어 자체가 어색하다.

 

 다만 빛바랜 흑백사진 속의 아버지는 옛날인데도 ‘하이칼라 머리’에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웃으시는 모습이 멋진 쾌남아셨다. 둘째 형님이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아버지는 무엇이 그리 급하시어 젊고 고운 어머니와 다섯 남매를 남겨두고 홀연히 떠나셨는지. 아버지는 대청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한적한 산기슭에 어머니와 합장돼 있다. 선산(先山)의 묘는 수몰(水沒)지역이라서 호수에 물이 차면 조각배를 타고 가야 한다.


 왜 그리 외지고 먼 곳에 가족 묘를 썼는지 원망도 했다. 그나마 지금은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성묘 한번 제대로 못하고 있다. 이런 불효가 없다.


0…아버지가 오래 살아계셔 효도하는 분들을 보면 부럽다. 우리 아버지가 좀더 오래 사셨더라면 나의 운명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가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아버지로부터 권력이나 부(富)를 물려받은 이들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게 된 것도 나의 이런 성장 배경 때문이다. 허무주의 경향에 빠져든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선 ‘아빠 찬스(Chance)’란 말이 유행이란다. 자녀가 아버지의 사회적 명성과 부, 권력, 인맥을 지렛대 삼아 배타적 혜택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나같은 사람은 아빠 찬스는 고사하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 자체가 희미하다. 


 나이 들수록 건강에 신경쓰는 이유도 이런 연유에서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으니 우리 애들만큼은 애비없는 자식이란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다짐 때문이다. 아버지로서 최소한 딸내미들 결혼식장에 손잡고 들어가줄 정도는 살아야 할 것 아닌가.


 그러자면 내 몸을 함부로 놀려서는 안될 것이다. 적어도 평균수명 정도는 살아주는 것이 가장(家長)으로서의 책무이기도 할 것이다.   


0…‘아버지’란 말엔 왠지 외롭고 고달픈 이미지가 스며있다. 한잔 술에 취해 잠든 아버지의 모습은 측은해만 보인다.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얼마나 힘이 드실까.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 직장에서 무시당하고 화나는 일이 있어도 집에 와선 내색 않고 미소만 지으시는 아버지.  


 아버지는 오로지 가정과 자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세상의 온갖 굴욕을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한국의 아버지 상(像)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때론 자식들이 무시하고 대화에 끼여주지 않아도 그냥 허허 웃어넘기는 우리의 아버지.


0…6월 세번째 일요일(올해는 19일)은 캐나다에서 정한 아버지날(Father’s Day)이다. 어머니날은 선물이다 외식이다 하여 떠들썩하지만 아버지날은 대충 넘어간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아버지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챙겨 드리는 것이 어떨까.


 무기력하고 초라해 보이는 이 시대의 아버지들. 요즘처럼 어려운 시대에 그들이 설 자리는 더욱 좁다. 세상의 아버지들에게 용기를 주자. 그들의 기를 살려드리자. 가장(家長)의 빈자리는 없을 때 더 큰 법. 살아계실 때 잘 해드릴 일이다. 


 ‘아버지는 태산 같은 존재/ 나이가 들수록 작은 동산의 둔덕/ 흔들림 없는 아름드리였다가/ 누구보다 연약한 갈대/ 수많은 감정들을 가슴에다 채우고/ 가장이라는 짐을 지고 휘청대는/ 참으로 외로운 사람인 것을!’   (김향숙 ‘아버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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