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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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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검찰과 바리새인- 권력의 충견으로 전락한 그들

 

-무소불위 칼춤 추는 모습 섬찟해  
 

한국의 신임 검사 임용식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바리새인(Pharisee)들의 실체다. 서민들로부터 세금을 뜯어내는 세리(稅吏, tax collector)와 창녀(prostitute), 그리고 바리새인들을 예수는 최고 악인의 동격으로 취급했다. 왜 그랬을까.
 

 고대 유다(Judas)가 멸망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바리새파는 본래 ‘구분되다’라는 뜻으로 이방인과 부정(不正)함에서 분리돼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이방인의 지배를 받는 것이 자신들의 죄 때문임을 회개하며 다른 이들과 구분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0…바리새인들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율법을 이해하고 지키는 것이었다. 이에 그들의 삶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절제된 것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깨끗이 손을 닦고 성경말씀을 읽고 정결한 음식만 먹으며 이방인을 만나지 않고 십일조를 내고 금식을 하며 안식일을 철저히 지켰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목숨까지 바쳤다. 부도덕한 행위에는 목숨 걸고 저항했다. 이같은 이유로 당시 유대인들은 바리새인들에게 큰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오늘날 타락한 기독교를 비난하는 비신자들도 “아, 저게 진짜 신앙인의 모습이구나” 하고 추앙받을만한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이었다.


0…그들은 특히 성경을 아예 달달 외울 정도로 하느님 말씀을 진지하게 공부했고 또 엄청난 성경지식을 갖고 있었다. 아마 지금 이 땅에 있는 어떠한 신학자들보다도 더 많이 성경을 연구했고 이해했던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그런데 왜 예수는 훌륭한 인간의 표상인 바리새인들을 책망했을까. 그냥 책망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탄이 너희의 아비’라며 절대로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백성들의 존경을 받던 바리새인들은 왜 위선자(僞善者, hypocrite)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바리새인들은 주로 회당(Synagogue)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백성들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그들은 하느님의 율법에 관해 가장 잘 안다고 자부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점점 교만해진 마음으로 자신들과 같지 않은 자들을 멸시하기 시작했다.


0…특히 그들은 성경에 기록된 율법뿐만 아니라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통의 지극히 작은 항목까지 모두 지키려고 집착했다. 이러한 지나친 율법주의는 바리새인과 예수 사이에 갈등을 야기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한다고 비난하였고 예수와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한다고 핍박하였다. 예수는 그때마다 겉으로 드러난 행위가 아니라 긍휼과 자비 등 내적인 마음이 더 중요함을 강조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하느님과 율법에 대해 가장 잘 안다는 자만심으로 인해 성경이 증거하는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늘 비판하고 배척했으며 다른 사람들까지 예수를 영접 못하게 했다.


 그래서 예수는 바리새인들에 대해, 겉으로는 율법 준수와 정결함을 추구하지만 그들의 내면은 탐욕과 불법이 가득한, 회칠한 무덤 같은 위선자라고 질책했다.


0…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세리와 같은 죄인이 아님을 감사하며 기도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의로우며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이에 예수는 “겉모습과 행동은 아름답다. 하지만 너희 마음속은 죄로 가득 차 있다”고 일갈한다.


 바리새인들은 결국 예수를 죽였다. 예수를 통해 자신들이 쌓아온 의가 무너지자, 예수와 비교해보니 자신들의 의가 가치 없다는 것이 드러나자 가차없이 살인도 불사했다.


 이는 어쩌면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일 지도 모른다. 내가 착한일을 조금 했다고, 헌금을 조금 많이 했다고, 봉사활동 좀 했다고, 내가 저 사람보다 의롭다고 생각하고 우쭐한 마음을 가지며 정죄(定罪)하려 든다.
 

0…한걸음 더 나아가, 이는 오늘날 권력을 쥐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썩어 빠진 정치꾼들의 바로 그 모습이다. 예수로부터 질책을 받고, 또 예수에게 대항하고 결국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그들은 왜 저렇게 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권력에 중독된 독종들의 표본이다.


 지금 한국 검찰의 행태를 보면 꼭 바리세인들을 떠오르게 한다. 법을 조금 안다고, 스스로 정의의 편에 선다며 마구잡이로 칼날을 휘둘러대는 검찰의 모습은 위선과 허위로 가득찬 바리새인 모습 그대로다.


 ‘법대로’를 외치는 그들이지만 적용 대상은 전혀 다르다. 똑같은 법인데 자신들 편에 선 자들에겐 한없이 너그럽고 반대편 사람들에겐 한없이 무자비하고 잔인하다. 자칭 정의의 사도라면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관대해야 하거늘 그들은 정반대다.         


0…대한민국 검찰은 변신을 거듭해왔다. 권력의 시녀로 불리며 정권 지키기에 앞장섰는가 하면, 반대 정권을 겨냥한 무소불위의 칼을 휘두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력이 자주 부침을 겪는데 반해 검찰은 항상 권력의 핵심에 있었다. 정권(政權)은 바뀌지만 검권(檢權)은 영원하다.


 공공의 적 1호인 검찰. 오래 전부터 개혁의 대상이었지만 이루어진 건 아무것도 없다. 김대중도 노무현도 문재인도 그렇게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공수처가 설치되고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도 만들어졌지만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그들의 독(毒)만 잔뜩 더 오르게 했다.


 법을 좀 안다고 독사처럼 나대는 한국판 바리새인들을 어떻게 멈추게 할 것인가.

 ‘힘이 없는 정의는 무능이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 중-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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