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I 배경 영화 (XI)-'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3)

 

 그들은 신이 창조한 최악의 장소라는 네퓨드 사막(Nefud or Nafud desert)을 횡단한다. 목숨을 건 지옥의 행군이며 로렌스가 아라비아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도전이었다. 그러나 로렌스는 자기 자신을 믿고 베두인들도 불가능하다고 했던 사막을 밤낮으로 여행하여 마지막에 오아시스에 당도한다.

 

 그런데 가심(I. S. 요하르)이 탔던 낙타가 주인 없이 홀로 대열을 따라오는 게 아닌가. 가심은 밤 사이에 피로에 지쳐 낙타에서 떨어져 낙오자가 된 것이다. 로렌스는 알리 족장과 다른 대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혼자 다시 사막으로 돌아가 결국 가심을 구출해 온다.

 

 알리가 "정말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개척하는 것 같다."며 "엘 오렌스!"라고 부르자 로렌스는 그냥 그대로가 좋다며 칭호를 사양한다. [註: 자기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이 장면은 '로드 짐(1965)', '엘 시드(1961)'를 연상시킨다. 여기서 '엘 오렌스(El Aurens)'는 '로렌스'를 아랍식으로 발음한 것이며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뜻으로 바로 이 영화의 제목이자 그의 별명이다.]

 

 어쩌면 그의 마음 한 편에는 아랍인들보다 근대적인 문명을 지닌 대영제국의 지식인이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우월감의 한 구석엔 자신의 태생, 즉 귀족인 토머스 채프먼 경의 친자이면서도 서자(庶子) 출신이었기 때문에 귀족 칭호를 받을 수 없었던 과거의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다. [註: 영국·아일랜드계 준남작(Baronet)이었던 토머스 채프먼 경(Sir Thomas Robert Chapman, 1846~1919)은 첫 부인 사이에 딸만 넷을 두었는데, 15살 연하의 가정부 새라 로렌스(Sarah Lawrence, 1861~1959)와 열애에 빠져 아예 이름까지 '토머스 로버트 로렌스'로 바꾸고 새살림을 차려 여러 곳으로 옮겨다니며 1885~1900년 사이에 아들만 다섯을 낳았다. 그 중 둘째가 1888년 8월16일에 태어난 T. E. 로렌스이다. 그후 1896년에 애들의 교육문제 때문에 옥스퍼드에 정착했지만 서자인 아들들에게는 귀족 칭호와 상속권이 인정되지 않았다. 새라 로렌스는 98세까지 살다 옥스퍼드에서 사망했다.]

 

 이 얘기를 듣던 알리가 "그러면 이름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말하자 그제서야 칭호를 받아들인 로렌스는 과거를 괴로워하며 돌아눕는다. 이때 이불을 덮어주던 알리는 몸종이 빨아 불에 말리고 있는 그의 군복을 불에 던져 태워버린다.

 

 다음 날 알리는 로렌스에게 베니워시 족장의 아랍 의상을 선물한다. 모두들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은 족장의 복장을 입을 자격이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낙타 타기도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하자 직접 시승을 해보는 로렌스.

 

 멀리까지 타고 가서 혼자 왕이 된 듯 허리에 찬 단검을 뽑아들고 폼을 잡아보는데, 어쩌면 영국에서 못 이룬 귀족의 꿈을 아랍에서 비로소 이룬 것에 대한 자부심과 성취감에 더 없는 행복감을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장면은 피터 오툴의 푸른 눈동자와 유난히 파란 빛을 띠는 비수의 칼날이 하얀 의상과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는 명장면 중 하나로 기억된다.

 

 이때 이를 지켜보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는 로렌스. 그 자는 "내 우물을 축내고 있는 사람들과 한 패냐?"고 물으며 자기는 하위탓 족장인 아우다 이부 타이(앤서니 퀸)라고 소개한다. 로렌스는 자기가 아는 아우다는 네퓨드 사막을 건너온 사람들과 물 따위를 가지고 시비 거는 졸장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한껏 치켜세워 주고, 파이살 왕자의 친구라는 로렌스의 말에 아우다는 선뜻 하위탓 족이 거주하는 '와디 럼'의 저녁식사에 초대한다. [註: 하위탓(Howeitat)족은 지금의 사우디 아라비아와 요르단에 살고 있는 베두인 아랍 종족(Bedouin Arabs) 중 하나이다. 그 족장인 아우다 아부 타이(Auda Abu Tayi, 1874~1924)는, 파이살 왕자가 '이슬람의 선지자'였다면 그는 '아랍 항쟁군의 영웅'으로 불린다. 그는 T. E. 로렌스의 '지혜의 일곱 기둥'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격하기 쉬운 성격이지만 관대하고 겸손하고 정직하며 따뜻한 친절과 사랑을 베푸는 사람으로 묘사되었다. 그들의 은밀한 거처인 '와디 럼(Wadi Rum)'은 로렌스와 파이살 왕자가 찾던 바로 그 장소였고, 결과적으로 오스만 터키의 감시로부터 벗어나 아카바(1917년 7월) 및 다마스쿠스(1918년 10월)를 점령할 수 있었다. 그의 무덤은 요르단 수도인 암만(Amman)에 있다. 이 역의 앤서니 퀸도 실제 아우다 아부 타이와 너무나 닮았다.]

 

 그날 밤 만찬을 하는 동안 로렌스는 터키군과 적당한 거래를 하고 있는 아우다를 '터키를 섬기는 하인'으로 묘사하여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그리고 아카바의 터키 진지에 엄청난 금괴가 있다고 설득하여 드디어 아카바 공격에 참여시킨다. 아랍 통일보다 황금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그에게는 명분보다 실리(實利)를 미끼로 동맹을 맺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로렌스의 계획은 알리의 부하가 아우다의 부하 한 명을 죽인 사건 때문에 거의 틀어지게 된다. 부족 간의 싸움 때문에 동맹이 깨지기 직전, 로렌스는 자기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니 아무도 감정 상하지 않을 터이니 스스로 그 살인자를 처벌하겠다고 선포한다.

 

 그런데 그 살인자가 그가 사막에서 천신만고 끝에 구출해줬던 가심임을 알고 놀란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 괴롭지만 그를 사살하는 로렌스. [註: 이때 알리가 차고 있던 권총을 사용했는데, 첫 장면 우물가에서 탈취했던 바로 로렌스의 권총이다. 또한 이 장면은 제갈공명의 '읍참마속(泣斬馬謖)' 고사를 떠올리게 한다.]

 

 아우다는 차라리 그때 죽게 내버려 두는 게 나았다고 하고, 알리는 당신이 구했던 사람이었으니 그의 운명도 당신 것이라며 처형은 정당한 것이었다고 위로한다. 그러나 자신이 구한 사람을 자신의 손으로 죽인 로렌스의 마음이 괴로운 건 어쩔 수 없다. 여기서도 서구와 사막 문화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다음 날 아침, 전투에 나서는 전사들을 환송하는 하위탓족 아낙네들의 독특한 괴성이 와디 럼 협곡에 울려퍼지는 가운데 출전한 아랍연맹군들이 아카바의 터키군 수비대를 공격한다. 로렌스의 예상이 적중하여 아카바를 점령한 후 알리는 로렌스를 정복자로 격찬한다. 1917년 7월의 일이었다.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밀어붙인 신념의 승리였다. 성공은 행하는 자가 얻을 수 있으며, 운명을 탓하거나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리는 또 한 번 깨닫게 된다.

 

 한편 아우다는 아카바 터키 요새에 황금은커녕 쓸모없는 종이에 불과한 지폐뿐이라며 로렌스가 거짓말을 했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소란을 핀다. 그러자 로렌스는 영국 황제가 5천 기니 금화를 아우다 이부 타이에게 주겠다는 서약서를 써주고 달래며 10일 안에 자기가 금이든 대포든 갖고 오겠다고 약속하는데….(다음 호에 계속)

 

▲ 로렌스는 파이살 왕자(알렉 기네스·오른쪽)에게 50명의 정예 군인을 요청하는데 그 리더가 알리 족장(오마 샤리프·가운데)이다.

 

▲ 10대 고아소년인 파라지(미셀 레이)와 다우드(존 디메치)가 로렌스의 몸종이 되겠다고 하자, 그는 알리 족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둘다 고용한다.

 

▲ 로렌스 일행이 낙타를 타고 신이 창조한 최악의 장소라는 네퓨드 사막을 횡단하기 위해 출발을 서두르고 있다.

 

▲ 네퓨드 사막 횡단은 목숨을 건 지옥의 행군이며 로렌스가 아라비아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도전이었다.

 

▲ 로렌스가 낙오자가 된 가심을 구출하러 가려고 하자 알리 족장이 이미 죽은 목숨이라며 한사코 만류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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