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II 배경 영화 (IV)-"콰이 강의 다리"와 '죽음의 철도'(4·끝)

 

(지난 호에 이어)

 하지만 열차를 타고 이 다리를 건너 북서쪽 버마(지금의 미얀마) 방향으로 가는 도중에 그 실망감은 어느새 절망감으로 변해 전쟁의 잔인하고 참혹함을 곱씹어보게 되고, 이윽고 일본인에 대한 분노가 치미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열차길이 바로 악명 높은 '죽음의 철도(Death Railway)'이다. 태국의 수도 방콕(Bangkok, Thailand)과 미얀마의 수도 양곤(Yangon, Myanmar, 양곤은 Rangoon의 현재 이름)을 연결하는 총길이 415㎞의 '태국-버마 철도'(Thailand-Burma Railway)를 두고 일컫는 말이다. 이 철도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1943년 시기에 일본제국이 미얀마를 침략하고 태국에서 물자 수송 및 병력 이동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 다리 건설을 위해 동원된 인력은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계 민간인 18만 명, 연합군 포로 6만 명 등 도합 24만 명이 동원되었다. 이 철도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아시아계 민간인의 1/3인 약 6만 명, 연합군 포로의 약 1/4인 1만6천 명이 죽었다. 죽은 연합군 포로 가운데 영국군 6,318명, 호주군 2,815명, 네덜란드군 2,490명, 미국군 356명 그리고 소수의 캐나다 군인, 인도 군인도 섞여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죽음의 철도'란 별명이 붙었다.

 

 아무튼 이 때 죽은 전쟁포로 묘지가 3군데 있는데,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이 태국 방콕에서 차로 약 2시간 정도 거리이고 '콰이강의 다리' 약 5㎞ 못 미쳐 있는 '칸차나부리 전쟁 묘지(Kanchanaburi War Cemetery)'이다. 여기엔 영국, 호주, 네덜란드 및 캐나다 군인 등 6,982명이 안장되어 있다.

 

 그렇게 많은 포로가 죽었으니 묘지의 규모도 방대하고 조경이 태국식으로 잘 가꾸어져 있다. 필자가 갔을 때는 훈장으로 장식된 군모와 정장을 한 노병들과 미망인들 그리고 정부 고관인 듯한 사람들이 운집하여 엄숙한 분위기의 추모행사가 거행되고 있었다.

 

 다음은 3,617명이 묻혀 있는 미얀마의 '탄뷰자야트(Thanbyuzayat) 묘지'이고 가장 작은 규모가 1,750구가 안치된 '충카이(Chung Kai) 묘지'이다. 충카이 묘지는 콰이 강의 다리 서쪽 편 철로 주변에 각 나라별로 묘소 공간을 띄엄띄엄 할당하여 기념비 등을 세워놓고 추모하고 있으나 한국인 기념비를 찾아 볼 수 없는 게 못내 아쉽다.

 

 아마도 일본이름으로 징용 당했기 때문에 찾기가 쉽지 않아 따로 세울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두 번 죽은 셈이 될 터이다. 그런데 생뚱맞게도 중국인 전사자를 위한 기념비가 서 있는 것을 보고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아마 화교들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긴 하지만….

 

 '죽음의 철도' 건설 중 가장 험난했던 곳은, 타마캄(Tha Makham)과 충카이 사이를 흐르는 콰이 강(Khwae Yai) 위에 세워진 유명한 '콰이 강의 다리', 그리고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지역인 '삼탑협(Three Pagodas Pass)'과 '지옥불 협곡(Hellfire Pass)' 등 세 곳이다. '지옥의 불'이란 이름은 횃불을 들고 밤에도 작업을 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콰이 강의 다리' 역에서 열차를 타고 '죽음의 철도'를 따라 약 55㎞ 북서쪽으로 올라가는데, 왕포(Wang Pho) 역을 지나자 갑자기 열차의 속도가 걸음마 수준 이하로 떨어졌다. 살얼음을 건너는 것처럼 엉금엉금 기어 가는 꼴이 자칫하면 낭떠러지로 곤두박질 쳐서 콰이강 황토물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것만 같은 공포스런 분위기가 순간적으로 엄습했다.

 

 산허리를 깎아 강줄기 따라 휘돌아가며 콘크리트로 바닥을 치고 그 위에 버팀목을 높이 세워 아슬아슬하게 만든 철로는 마치 중국 장가계의 '귀곡잔도(鬼哭棧道, 귀신도 울고 가는 사다리길)'를 연상케 할 만큼 험난한 공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 원인은 과로, 영양실조 및 콜레라, 말라리아, 이질 등 질병 때문이라 하지만 더 근원적인 요인은 워낙이 난공사였던 데다 일본의 야만적인 만행과 간악한 인간성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일본이 저지른 수많은 전쟁 범죄 중 정식재판을 받은 경우가 바로 이 '죽음의 철도' 건설과 관련된 것이 유일하다고 한다. 당시 전쟁포로 3천 명 이상의 희생을 치렀던 송쿠라이(Songkurai) 구간 철도건설 책임자였던 히로시 아베 중위는 B/C급 전범자로 사형이 구형되었지만 나중에 슬그머니 15년 징역형으로 감형됐다고 한다.

 

 왕포 다음 역인 탐크라셰(Tham Krasae)에서 내려 바로 철로 옆에 있는 동굴과 그 속에 안치된 불상을 둘러보고 죽음의 철도와 콰이 강을 한눈에 관망할 수 있는 전망 좋은 찻집에 들러 칼칼한 목을 축이곤 곧장 방콕으로 발길을 돌렸다. 만찬 약속시간 때문이었다.

 

 여기서 북쪽으로 좀 더 올라가면 '지옥불 협곡'이 나오는데 특히 오스트레일리아 군 포로가 많이 죽었기 때문에 그 추모지가 협곡 속에 을씨년스럽게 들어앉아 있어 찾는 이들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칸차나부리 지역에 전쟁 박물관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죽음의 박물관(Museum of Death)'이고 또 하나는 '지스 전쟁박물관(JEATH Museum)'이다. 돌아오는 길에 '지스 전쟁 박물관'에 잠깐 들렀다.

 

 '지스(JEATH)'는 일본, 영국, 호주, 미국, 태국, 홀랜드(네덜란드)의 영어 첫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조어(造語)이다.

 

 전시실 어느 곳에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Forgive But Never Forget)'는 붉은 글씨로 쓴 현판이 보였다. 엄연한 야만적 만행에도 불구하고 자기변명으로 일관하고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의 행태가 생각나면서 갑자기 울화가 치밀었다. 'Never Forgive And Forget'으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었다. 독일은 'Forgive And Forget'이라 할 만큼 지금까지도 그 죄값을 스스로 치르고 있지 않은가!

 

 '콰이 강의 다리'에서 방콕으로 돌아오는 길에 규모가 상당히 큰 악어 및 벵골산 호랑이 농장이 있는데 꼭 들러보기를 권하고 싶다. 왜냐 하면 '죽음의 철도'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른 부화를 확 끄집어 내 악어들에게 냅다 던져 콱 물어죽이고 오면 그나마 시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끝)

 

▲ 콰이 강의 다리 (The Bridge over the River Kwai)


▲ '죽음의 철도' 운행 열차가 막 출발하여 콰이 강의 다리를 건너고 있다.


▲ 타일랜드의 칸차나부리 전쟁 묘지(Kanchanaburi War Cemetery) 입구. 가장 규모가 큰 전쟁묘지이다.


▲ '죽음의 철도' 중 Wang Pho 역 가까운 Tham Krasae 구간을 지나는 광경. 바로 오른쪽 언덕 밑이 콰이 강이다.


▲ '지옥불 협곡'(Hellfire Pass) 구간에 있는 호주군 포로 추모지 - 횃불을 들고 야간작업을 했기 때문에 '지옥의 불'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 '지스(JEATH) 전쟁 박물관' 무기 전시실 - JEATH는 일본, 영국, 호주, 미국, 태국, 홀랜드(네덜란드)의 머릿글자를 따서 지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CA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