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II 배경 영화(IV)-"콰이 강의 다리"와 '죽음의 철도'(3)

 

(지난 호에 이어)

 발파장치를 맡고 있는 조이스가 엄폐하고 있는 바위 뒤에서 흙 한줌씩을 던져 노출된 연결선을 덮느라 안간힘을 다한다. 강 건너에서 망원경으로 관망하던 워든 소령이 '기차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다리만 폭파하라'고 중얼거리지만… 피를 말리는 초조한 순간이다.

 

 사이토에 뒤이어 니콜슨 중령이 클립턴 군의관을 대동하고 나타나는데 클립턴은 이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며 혼자 언덕에서 지켜보겠다고 한다. 10분 뒤 기차가 오기 전에 완성된 다리를 흐뭇한 기분으로 홀로 의기양양 점검하던 니콜슨 중령은 다리 중간지점에 걸려있는 전선을 발견한다.

 

 니콜슨 중령은 뭔가 이상하다며 사이토 소장과 함께 강가로 내려가 본능적으로 그 전선을 따라간다. 망원경을 보던 워든 소령이 "미쳤군! 우리편이 적군을 인도하다니!"하고 말한다. 전선은 강가로 이어져서 모래사장에 묻혀있다.

 

 그때 일본군 열차가 다리로 접근해 온다. 니콜슨 중령은 전선을 따라가다 발파 장치를 발견한다. 강 건너편에 있던 쉬어즈가 "지금 처치해야 돼, 당장!"이라고 이를 악물고 말한다.

 

 기적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린다. 이때 조이스가 달려들어 사이토 소장을 칼로 찌른다. 이를 지켜보던 워든이 "잘 했어!"라고 말한다.

 

 니콜슨 중령이 조이스 중위에게 달려들자 그는 "난 영국 장교요! 다리를 폭파시키러 왔소!"라고 말하는데 쉬어즈 소령이 "죽여라!"고 소리친다. 그러자 잠복해 있던 특공대원들과 일본군 감시병들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진다.

 

 영화는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이를 참지 못한 쉬어즈가 강물로 뛰어들어 헤엄쳐 니콜슨에게 접근하다가 총을 맞고 죽는다. 그 틈에 조이스도 죽고 야이도 죽는다. 워든 소령만 살아남는다.

 

 열차가 검은 연기를 뿜으며 다리에 진입한다. 니콜슨 중령은 발파를 저지하기 위해 급히 발파장치 쪽으로 가다가 유탄에 맞는다. 그제서야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몸이 발파장치를 덮치는 순간, 다리에 장치된 다이너마이트가 폭파되면서 다리 중간이 파괴되어 열차는 순식간에 강으로 곤두박질 친다.

 

 자욱한 초연 속에 펼쳐지는 아수라장. 수많은 피아(彼我)의 전사자들이 강물에 떠내려가거나 강가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다. 다리에 걸었던 현판이 강물에 떠내려간다. 살아남은 영국군 클립턴 소령이 강가에 서서 초연에 휩싸인 처참한 광경을 바라보며 비통한 목소리로 "미친 짓이야! 미친 짓!"이라고 절규한다.

 

 영화는 폭파된 다리와 콰이 강물을 트레킹 백 하면서 끝을 맺는다.

 '콰이 강의 다리'는 일반적으로 대규모 전투 장면으로 대변되는 여느 제2차 세계대전 영화들과 달리, 공병대를 중심으로 한 교량 건설 현장과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전쟁에 휘말린 영·미·일 군인들의 기질과 미묘한 심리 변화를 극적으로 잘 표현한 역작이다.

 

 법과 전통을 지키고 명분을 중시하는 신사도 정신을 가진 영국군 니콜슨 중령, 교양을 갖춘 무사도 정신의 일본군 사이토 대령, 그리고 행동파이자 실용주의적인 미국 해군 장교 쉬어즈 소령 등 3종류의 인간상을 대조시키면서 전쟁이라는 무참한 파괴와 건설이라는 상반된 문제를 통해 격조높은 휴머니즘을 부각시킨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註: 그런데 우습지만 원래는 이등병이었는데 장교를 사칭한 쉬어즈가 이 공로로 과연 소령으로 승진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1957년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색상, 촬영상, 작곡상, 편집상 등 7개 부문을 수상한 '콰이 강의 다리'는 1997년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미학적으로 중대한" 작품으로 인정받아, 미의회 도서관 국립영화등기소에 영구 보존되고 있다.

 

 특히 이 영화에 삽입된 '콰이 강의 행진곡(The River Kwai March)'은 음악감독 말콤 아놀드 (Malcolm Arnold, 1921~2006)의 작곡이지만 전반부에 영국군 포로들이 휘파람으로 부르는 부분은 '보기 대령 행진곡(Colonel Bogey March)'에서 따온 것이다. 여기서 '보기'라는 이름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고 골프를 치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파(par)보다 한 타를 더 쳤을 경우에 붙이는 점수의 이름이다.

 

 1914년 영국 군악대장인 리켓츠(Frederick. Joseph Ricketts, 1881~1945) 중위가 군인이자 골프광인 한 친구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군인의 민간 활동을 못마땅해 할 때라 알포드(Kenneth J. Alford)라는 가명으로 발표했다고 한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중, 이 경쾌한 멜로디에 패러디 가사가 붙여져 "히틀러는 고자라네(Hitler Has Only Got One Ball)'라는 제목으로 영국에서 유행했는데, 린 감독은 바로 이 노래를 영화에 삽입하고자 했다. 하지만 제작자 샘 스피겔이 '너무 비속하다'고 지적하여 결국 가사는 빼고 멜로디만 휘파람으로 대체하게 되었다고 한다. [註: 샘 스피겔(Samuel P. Spiegel, 1901~1985)은 엘리어 카잔 감독의 '워터프론트(1954)', 데이비드 린 감독의 '콰이 강의 다리(1957)' 및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세 번 수상한 유명 독립영화제작자이다.]

 

 데이비드 린(David Lean, 1908~1991) 감독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주옥 같은 영화를 많이 만든 영국 출신 영화감독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닥터 지바고(1965), 라이언의 딸(1970), 인도로 가는 길(1984) 등을 비롯하여,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올리버 트위스트(1948), 위대한 유산(1946) 그리고 잊지 못할 명화 밀회(1945) 등 불후(不朽)의 명작을 만든 감독으로 1991년 4월16일 83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그런데 진작 영화 때문에 유명해진 '콰이 강의 다리'를 직접 가서 보면 먼저 '에게게! 이렇게 작은 다리였나?'하고 실망감을 느끼게 된다. 마치 벨기에의 '오줌싸개' 동상을 보고 실망하듯이…. 또 영화에서는 목제다리였는데 지금 다리는 철제다리로 돼 있다. 원래는 그랬는데 폭격 맞아 다시 건설하면서 아예 철제로 만들었기 때문이란다. 다리 앞 좌우에는 녹슬고 삭아서 구멍까지 뚫린 폭탄을 전시해 놓았고, 다리 한 가운데엔 보행자들을 위해 나무판자를 쭉 깔아놓았다. (다음 호에 계속)
 

▲ 완성된 다리 위를 걸으며 감회에 젖는 니콜슨 중령이 사이토 소장에게 말한다. "내일이 군복무 28년이 되는 날이오. 후회는 절대 없소. 하지만 오늘은…"


▲ 니콜슨 중령(알렉 기네스)은 뭔가 이상하다며 사이토 소장(하야카와 셋슈)과 함께 강가로 내려가 전선을 따라간다.

▲ 니콜슨 중령(알렉 기네스)의 발 밑에 쉬어즈 소령과 사이토 대령이, 오른쪽에 조이스 중위가 죽어있다.


▲ 그제서야 "내가 왜 이러지?"하고 후회하는 니콜슨 중령(알렉 기네스). 그는 적군의 군사시설이라는 의식보다는 '서구의 효율성과 기술의 우위성'을 증명할 교량건설을 통해 희열을 느끼는 인간적 모순에 빠져든 것이다.


▲ 니콜슨 중령이 유탄에 맞아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발파장치를 덮치는 순간, 다이너마이트가 폭파되면서 다리는 파괴되고 열차는 순식간에 강으로 곤두박질친다. 다 죽고 워든 소령만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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