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 배경 영화(II)-‘영광의 깃발’(Glory)(5.끝)

 

(지난 호에 이어)

   [註: 앞에서 언급한 해리엇 터브먼은 로버트 굴드 쇼 대령의 와그너 요새 공격을 도왔으며, 그의 마지막 식사도 그녀가 제공했다고 알려졌다. 터브먼은 당시의 전투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그때 우린 번개를 보았고, 곧이어 총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천둥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은 더 큰 총들이었다; 그리고 빗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은 핏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겨우 수확을 하러 갈 때가 되었을 때, 우리가 거둔 것은 시체뿐이었다.”]

 이에 기수가 되기를 거부했던 트립 일병이 54연대기를 들고 계속 전진한다. 하지만 곧 저격되어 죽는다.

 

 포브스 소령과 롤린스 상사가 돌격하여 와그너 요새 방어선을 뚫는다. 승리가 가까워질 무렵, 포브스, 롤린스, 시얼리스, 샤츠와 또 다른 상사 두 명이 남부군의 집중적인 포격을 맞는데…. [註: 토머스 시얼리스 상병은 이때 사망했다. 27세였다. 한편 프레드릭 더글러스의 장남 루이스도 와그너 요새 공격에 참여했는데, 쇼 대령 사망 후 곧바로 부상을 당했으나 다른 병사들과 함께 후퇴하여 살아남았다.]

 

 다음 날 아침, 해변은 북부군인들의 시체로 뒤덮였다. 하지만 요새 위에는 남부연합기가 펄럭이고 있다. 요새 함락이 실패했음을 알리는 장면이다. 남부군에 의해 전사자들은 대량 집단 매장으로 처리된다. 쇼 대령과 트립 일병의 시신이 나란히 묻힌다. [註: 남부군 장군 존슨 해구드(Johnson Hagood, 1829~1898)는 전쟁이 끝난 후 관례대로 다른 북군 장교들의 시신은 돌려보냈으나 쇼 대령의 시신은 흑인병사들 시신과 함께 묻었다. 해구드 장군은 포로로 붙잡힌 북군 의사에게 "그(쇼 대령)가 백인군의 수장이었다면… 시신을 돌려보냈을 텐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은 어찌 보면 모욕적인 언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쇼의 아버지는 "아들이 그의 군대와 함께 묻힌 것은 군인으로서 자랑일 뿐만 아니라 노예 해방의 십자군으로서의 소임을 다한 장한 일"이라고 말했다. 쇼의 부친 프란시스가 54연대 외과의사였던 링컨 스톤(Lincoln R. Stone, 1832~1930)에게 쓴 편지가 이를 증명한다. "우리는 용감하고 헌신적인 병사들에 둘러싸여 누워있는 아들의 시신을 찾지 말아야 합니다. 마치 보디가드처럼 함께 있는 그 곳이야말로 더 성스럽고 더 안락한 곳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 북부 연방군은 집단 매장지에 묻힌 유해를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보포트 국립묘지에 재안장했으며 묘비명은 '무명의 묘(Unknown)'로 표시했다. 쇼 대령이 쓰던 군도(軍刀)는 첫 집단매장지에서 없어졌으나 1865년에 찾은 후 가족에게 인도됐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잊혀졌다. 2017년 6월에 쇼의 누이동생 수잔나의 후손들이 우연히 다락방에서 발견하여 매사추세츠 역사학회에 기증했다.]

 

   마지막 자막이 올라간다 ― 메사추세츠 54연대는 와그너 요새 전투에서 반수 이상이 희생했다. 나중에 온 백인부대들도 많은 희생을 내고 철수했다. 요새 함락은 실패였다. 그러나 그들의 용맹성은 널리 알려져 의회는 흑인 부대의 결성을 정식으로 인가했으며 이후 흑인 자원병을 꾸준히 모집하는 계기가 되어 그 수가 18만여 명까지 이르게 되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이들 흑인이 (궁극적인 승리를 위한) 전세를 바꾸었다."고 말했다.

 

 엔딩 크레디트에 "로버트 굴드 쇼와 매사추세츠 제54연대 기념동상"이 나온다. [註: 이 동상은 미국 조각가 아우구스투스 세인트 고던스에 의해 1897년 5월 보스턴 중심가에 있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인 '보스턴 코먼(Boston Common)' 내에 매사추세츠 주의사당과 마주보는 곳에 세워졌다.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영웅담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시민들의 성금에 의해 만들어진 첫 번째 동상이란 점에 의의(意義)가 있다. 조각은 1863년 5월 28일 쇼 대령과 제54연대가 전투를 치르기 위해 남부로 떠나기 전에 보스턴 비콘 거리를 행진하는 장면을 부조(浮彫)했다.]

 

 끝으로 두 사람만 더 언급한다. 1863년 7월 18일 로버트 굴드 쇼 대령이 죽은 후 54연대 깃발을 끝까지 사수하여 반납한 사람은 윌리엄 카니(William Harvey Carney, 1840~1908) 상사였다. 그 공로로 37년이 지난 1900년 5월 23일 매사추세츠 주 뉴베드포드에 살고있던 카니는 최초로 '명예훈장'을 수여받았다. 모건 프리먼이 연기한 존 롤린스 상사는 카니 상사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가공인물이다.

 

 버지니아 주 노예 출신인 카니는 와그너 요새 전투에서 퇴각하여 수많은 부상 때문에 다른 흑인병사에게 깃발을 건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네들, 난 내 의무를 다했을 뿐이야. 이 낡은 깃발은 결코 땅에 떨어진 적이 없다네!" 그가 했던 이 말을 제목으로 딴 노래 "Boys the Old Flag Never Touched the Ground"가 카니의 시상식에서 불려졌다.

 

   캐리 엘위스가 연기한 캐보트 포브스 소령은 에드워드 핼로웰(Edward Needles Hallowell, 1836~1871) 중령에 바탕한 가공 인물이다. 실제 인물인 핼로웰 중령은 와그너 요새 공격에서 살아남았고, 1865년에 54연대가 해산될 때까지 연대와 함께 했다.

 

핼로웰은 쇼 대령이 죽자 54연대를 계속 지휘하여 여러 전투를 겪으며 결국 2차 전투 때 실패했던 와그너 요새를 함락시키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공격했던 남부군의 포로들을 54연대가 감시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쇼 대령의 원한을 갚았고 54연대의 위상을 우뚝 세운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의 전개상 그를 깊이있게 다루지 못한 게 아쉽다.

 

 아무튼 핼로웰 중령은 1865년 12월에 보스턴에서 치러진 전승기념행사에 54연대를 이끌고 참석한 후 퇴역하였다. 다음해 1월 13일 앤드류 존슨 대통령은 '공훈을 인정하여' 1865년 6월 27일자로 소급하여 명예 준장으로 승급시켰다. 그러나 전쟁에서 입은 많은 부상이 원인이 되어 필라델피아 고향에서 1871년 35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한편 2차 와그너 요새 전투에서 전사한 노예폐지론자 로버트 굴드 쇼의 용감한 순교에 대한 명예훈장 추서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당시에는 인종 차별 문제 때문에 수여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포드햄 대학의 군사과학부가 이 노력을 적극 추진 중이다. 그리고 로버트 쇼는 하버드대를 졸업하지 못했지만 그의 이름은 학내 기념당 회랑에 새겨져 있다. (끝)

 

▲ 매사추세츠 제54보병연대의 와그너 요새 전투에서 보여준 용맹성은 널리 알려져 의회는 부대의 결성을 정식 인가했고 약 20만 명의 지원자를 모집하는 계기가 되어 전세를 바꾸었다.
 


▲ 현대전과는 완전히 다른 전투 방식이지만 잔인하고 참혹한 아비규환의 전쟁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면. 
 


▲ 왼쪽부터 토머스 시얼리스 상병(안드레 브라우어), 롤린스 주임상사(모건 프리먼), 주피터 샤츠 일병(지미 케네디), 포브스 소령(캐리 엘위스), 연대기를 든 트립 일병(덴절 워싱턴). 방어선을 뚫고 승리가 가까워질 무렵 포격을 맞고 모두 전사한다.
 


▲ '로버트 굴드 쇼 기념동상'. 1897년 5월 미국 조각가 아우구스투스 세인트 고던스에 의해 보스턴 중심가에 있는 공원 '보스턴 코먼' 내에 매사추세츠 주의사당과 마주보는 곳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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