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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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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찾아서

Editor’s Note

-취업 걱정하는 젊은이들  
-자기계발 기회 갈수록 멀어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대학생들 

 


 예전 어릴적 우리집 사랑채엔 한 대학생 형이 세를 들어 자취(自炊)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허구한날 학교에도 안가고 마냥 빈둥대며 놀고만 있는 것 같았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형이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모습은 거의 본 기억이 없다. 가끔 예쁘장한 여학생이 놀러와 노닥거리다 가곤 했다. 
 그런 형을 보고 어머니는 “저 청년은 먹고 대학생”이라 하셨다. 늘상 먹고 노는게 일이라는 의미셨다. ‘먹고 대학생’이란 말은 아직도 나의 머리에 각인돼있다.

 

0…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선 일단 대학만 들어가면 실컷 노는 게 일이었다. 고교 때의 입시지옥 고생을 한풀이라도 하듯 공부와는 담을 쌓고 놀 궁리만 했다. 
 나도 예외가 아니어서 심심하면 여학생들과  ‘미팅’을 하고 하루 종일 당구장에서 죽치기도 했다. 통기타와 생맥주, 청바지로 대변되는, 그런대로 낭만이 있던 시기였다. 
 전공학과 공부에 쫓기는 일은 별로 없었다. 대충 해도 학점은 나왔고 웬만하면 졸업도 다 시켜줬다. 그렇게 ‘놀고 먹어도’ 학교를 졸업하면 웬만하면 취직자리도 있어 그런대로 사회 한구석에 자리를 잡아갔다. 
 특히 한국에서는 대기업과 공기업 등에서 매년 직원 공개채용 제도가 있어 전공학과와 관계없이 대체로 누구에게나 시험의 기회가 주어졌다. 

 

0…한편으론 전공 공부에 쫓기지 않으니 문학, 철학, 역사 등 다방면의 교양서적을 읽을 기회도 많았다. 가방만 들고 왔다갔다 하는 것 같아도 나름 시대를 고뇌하고 책도 많이 읽으니 인간적으로 폭이 넓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 필자의 학창시절은 군사정권이라는 시대배경으로 인해 거의 매일 ‘군사독재 퇴진’ 데모가 벌어지고 걸핏하면 학교문이 닫혔다. 
 그런 와중에 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혀 (고시)공부 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별종 ‘취급을 했다. 그런 ‘놈’들은 시대의 고민을 외면하고 저만 잘살겠다고 애쓰는 이기주의자요, 배신자로 낙인찍었다. 
 그래서 고시에 합격한 친구들에 대해서도 별로 인간취급을 하지 않았다. 막걸리 퍼마시고 시대를 한탄하며 분기탱천(憤氣?天)하는 모습이 더욱 떳떳한 모습이었다. 

 

0…지금 생각하면 쑥스런 웃음이 나지만 그런 성장통을 거친 사람은 그래도 인간적인 면모가 풍부한 것이 사실이라고 스스로 위안 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나갔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대학을 졸업해도 일할 곳이 없으니 모두들 죽어라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런 사정은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다. 학과공부에 찌들어 있는 대학생들을 보면 불쌍해 보일 지경이다. 
 입학은 쉽게 하지만 죽어라 공부하지 않으면 중도 탈락하기 십상이니 차안에서나 어디서나 그저 공부만 하고 있다. 그러니 교양서적 읽을 기회는 별로 없는 듯하다. 

 

0…장.단점이 있긴 하지만 인생의 황금시기에 학과공부에만 골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특히 언젠가부터 인문학의 위기를 걱정하지만 문제는 갈수록 더 심각해지는것 같다. 문학, 사학, 철학을 일컫는 ‘문사철’ 출신은 졸업 후 해먹을 일이 별로 없으니 모두들 기피하고 있다. 
 주변 친지의 자녀들이 이런 분야를 공부한다면 걱정부터 앞서는 게 사실이다. 
0…교민들 자녀 중에도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으로 성공한 사례는 많지만 문학, 사학, 철학 등을 전공해 성공했다는 얘기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러니 순수 인문계통 공부를 한다면 ‘그거 해서 밥 먹고 살겠나’ 하는 걱정이 들 수밖에 없다.
 대학졸업 후 비교적 진로가 확실한 분야는 의대, 약대, 상경계 및 이공계, 법대, 회계분야 정도이고 그 외엔 별로 눈에 띄질 않는다. 그럼 나머지 수많은 인문학 전공자들은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0…세계적으로 인문학과 기초학문 분야가 쇠퇴하고 경영학과 등 현실적으로 취업이 잘되는 과목에만 학생들이 몰리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대학에서 인문학 위기가 운위된 지는 이미 오래다. 취직 관련 전공이나 학과는 경쟁률이 치열한 반면, 일부 인문학과는 ‘시장성’을 지닌 다른 학과로 속속 간판을 갈아 달기도 한다.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대부분  복수전공(경영학 등)을 택하고 있다. 
 극심한 취직난 속에 전공분야와는 무관한 단순직에 종사하는 대졸자도 많다. 대학졸업장이 ‘빵’을 보장해주지 않는 냉엄한 현실에서 무수한 청춘이 좌절당하고 있다.

 

0…인문학 기피 현상은 취직자리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이같은 현상은 분명 문제가 있다. 
 기계적으로 경영학을 공부하고 법을 전공한 사람이 인간의 다양한 세계를 어찌 이해하고 올바른 기업활동을 하거나 정당한 판결을 내릴 수 있겠는가. 
 영혼 없는 인간들이 모두 눈에 불을 켠 채 돈만 추구한다면 이 세상은 어찌 되겠는가. 
 0…세상은 갈수록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없이 경제성장과 개발, 재테크 등 극단적 물질주의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빵만으론 살 수 없다. 물질문명 속에 황폐화되고 피로해진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은 인간 내면의 영혼과 가치이며, 그것을 살찌울 문화적 환경이다. 
 인문학적 토대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철학과 사상이 없는 사회, 영혼없는 시민들을 양산해내는 사회는 결국 자멸적 사회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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