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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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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이 오면

Editor’s Note

-지고지순한 순백의 계절

 

-아픈 상처 딛고 화사한 꽃으로 

 

                                                      고창 선운사 동백꽃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네…)

 

 난해하기로 유명한 T.S. 엘리어트의 ‘The Waste Land’(황무지). 위의 첫 구절은 ‘The Burial of the Dead’(죽은 자의 매장)로 4월이 오면 많은 이들이 즐겨 인용한다. 
0…희망과 꿈으로 부풀어야 할 사월이 왜 잔인한 계절로 인식되었을까. 
각자 속으로 느낄 나름이겠지만, 추운 겨울 끝에 봄이 오면 무언가 좋은 일만 있을 것처럼 기대가 넘쳤지만 막상 현실은 그렇지만도 않기에 그런 것 아닐까. 
특히 한국에서 4월은 별로 좋은 기억이 없었다. 4.19학생혁명(1960)을 비롯해 제주 4.3 비극(1948)을 거쳐 4.16 세월호 참사(2014)까지, 봄을 찬양만 하기엔 처연한 장면들이 너무 많았다. 
이래서 한국 청년들 사이에서 4월은 특히 잔인한 달로 여겨졌다. 

 

0…추억컨대, 매년 이맘때 캠퍼스 언덕에 흐드러지게 피던 하얀 목련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시인 묵객(墨客)들이 가장 많이 소재로 삼은 계절은 봄, 월별로는 4월, 꽃으로는 목련이 아닐까 한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박목월 시인의 이 노래는 언제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4월이 오면 어김없이 생각난다.

 

0…봄의 전령사 목련(木蓮)은 이른 봄 하얗게 피는 꽃이 마치 나무에 피는 연(蓮)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눈보라와 찬바람을 견디며 봄을 기다린 목련은 단아한 유백색(乳白色)의 꽃을 피운다. 하얗고 커다란 꽃잎은 화려함을 내세우지 않기에 고결한 기품이 더 돋보인다.
0…목련은 여러 이름을 갖고 있다. 
옥같이 깨끗한 나무라 해서 옥수(玉樹), 꼭 오므리고 있는 꽃망울 모습이 붓을 닮았다 해서 목필(木筆), 봄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다 해서 영춘화(迎春花), 보라색의 자목련은 봄이 끝나갈 무렵에 핀다 하여 망춘화(亡春花)라 한다. 
 대부분의 꽃들이 태양을 바라보며 남쪽을 향해 피는 것과 달리 목련은 북쪽을 향하고 있어 북향화(北向花)라고도 한다. 
꽃봉오리 아랫부분에 남쪽의 따뜻한 햇볕이 먼저 닿으면서 세포분열이 반대편보다 빠르고 튼튼하게 자란 탓에 꽃봉오리가 북쪽을 향하게 된다고 한다. 

 

0…‘선운사 고랑으로 동백꽃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서정주 ‘선운사(禪雲寺) 동구(洞口)’-
 이민 떠나오기 전, 고국의 자연산천을 머릿속에 담아가겠다며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오나 하는 감상(感傷)에 젖어 가는 곳마다 예외없이 술에 젖어 어줍잖은 싯구절을 읊조리곤 했다. 
 취한 눈으로 바라보는 봄날 섬진강의 복사꽃과 매화, 산수유는 처연하리만큼 아름다웠다. 

 

0…특히 고즈넉한 산사(山寺)에 피어나는 빨간 동백꽃은 나의 마음을 읽는 듯 핏빛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과 함께 동백은 대표적인 봄꽃 중 하나다. 
 겨울이 지나는 자리에 피어나는 붉은 빛의 동백은 강렬한 이미지를 전해준다. 그래서 시인과 묵객들은 봄이 오면 동백꽃이 피어나길 손꼽아 기다린다. 
 동백꽃은 붉은 ‘색’이라 하지 않는다. 붉은 ‘빛’이라 표현한다. 그만큼 처연하고 강렬하다. 개화 시기에 따라 춘백(春栢)과 동백(冬柏)으로 나뉘는데, 한국의 대부분의 동백꽃은 2월 중순에서 3월초 개화하는 ‘동백’인데 비해 고창 선운사의 동백은 4월 중순에 피는 ‘춘백’이다. 

 

0…동백나무는 좀처럼 불에 타지 않는 강한 성질을 지녔다. 그래서 산사에서는 동백나무를 법당 뒤에 즐겨 심는다. 혹시 모를 산불이 전각(殿閣)에 옮겨 붙지 못하도록 심은 방재림의 일종인 셈이다. 
 초봄이면 붉은 꽃을 피워 사찰을 ‘장엄(莊嚴)’(불교용어로 ‘꾸미고 장식한다’는 뜻)하는 역할도 한다. 

 

0…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듯, 봄은 오는 듯 마는 듯, 존재하는 듯 마는 듯하다 가버리기에 더욱 아쉽다. 순간처럼 왔다 속절없이 가고 마는 짧은 생명이 인간사 모습과 닮았다.
 어쩌면 삶이란 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인지도 모른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최영미 ‘선운사에서’
0…고국에서 총선거가 치러졌다. 결과가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다. 
애써 잊으려 해도 그럴 수 없는 고국. 이제는 사월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목련과 동백의 계절로만 기억되면 좋겠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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