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음식보다 가격에 더 눈길이
-남을 위해선 왼쪽에 더 신경을
서민들이 외식을 하러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할 때 선뜻 메뉴판의 왼쪽(음식 종류)만 보고 고르는 경우가 있을까. 대개는 왼편과 오른편(가격)을 번갈아 본 뒤 주문을 하게 될 것이다.
음식값이 비싸면 선뜻 주문하기가 어려운 것이 서민들의 마음이다.
특히 요즘같이 음식값이 비싸고 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을 땐 자연히 값을 먼저 본 뒤 저렴한 음식을 찾게 될 터이다.
0…부끄러운 고백 좀 하면, 한국에서 기자생활을 할 땐 아무리 그러지 않으려 해도 출입처 인사들로부터 대접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기자단이 단체로 회식을 하는데 혼자서 빠지기도 무엇하고 해서 참석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땐 내 돈을 내지 않으니 별다른 부담 없이 먹고싶은 음식을 주문하고 반주(飯酒)도 한잔 곁들이게 된다.
0…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면 막상 식당에 가도 음식값을 모르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다 이따금 가족들과 함께 외식을 하게 되면 자연히 음식값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선뜻 비싼 음식을 시키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땐 대개 가족들에겐 좋은 음식을 시키라 하고 나는 슬그머니 메뉴의 오른편을 본 뒤 값이 적당한 음식을 시키게 된다.
0…언젠가 한국 언론에 소개된 어느 90객 사업가의 자린고비 스토리를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당시 91세였던 이 분은 사재(私財) 3천억 원으로 자신의 아호를 딴 장학재단을 만들고, 20여년간 무려 1조 7천억 원을 쏟아부었다. 개인이 세운 장학재단으로선 아시아 최대 규모였다.
재단에선 매년 국외·국내 장학생 수백명을 선발해 지원해왔다. 이에 장학생 수는 지난 23년간 1만2천여 명에 이르고 박사학위 수여자도 750명에 달한다.
이 분이 하시던 말씀. "쑥스러운 얘기지만 나는 평생 한번도 식당에 가서 메뉴판 왼쪽을 보고 시켜보지 못했어요. 주머니에 돈이 있어도 가격이 적힌 오른쪽에 먼저 눈이 가더라고. 이게 다 어려운 나라에 태어난 업보요.”
0…시골에서 태어난 이 분은 화학공장을 차려 큰 돈을 벌었다. 하지만 부자가 된 뒤에도 그는 '점심은 짜장면, 특식은 삼계탕'을 고수했다.
직원들은 "식당에 가면 사장님이 ‘맛있는 거 맘껏 시켜. 나는 짜장면!’ 하기 때문에 우리도 감히 짜장면 이상은 못 시킨다"고 했다.
그러나 장학금은 통크게 지급했다. 우수 대학생을 선발해 국내 대학은 연 2천만 원, 해외 대학원 석,박사 과정은 연 4만~6만달러씩 지원했다.
그 분의 말. “코 묻은 돈 모아 어렵게 만들어 장학금 주는데, 개중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돈으로 아는 학생도 있지요. 하지만 그런 일로 한번도 배신감 느낀 적 없어요. 앞으로 계속 베풀 겁니다.”
0…어렵게 자수성가한 사람 중에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
재산을 힘들게 모았기에 어려운 이웃을 봐도 외면하는 ‘수전노’ 타입과,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명분이 뚜렷한 좋은 일에는 과감히 베푸는 ‘자린고비’ 타입이 그것이다.
흔히 ‘자린고비’라면 금전에 지독한 사람을 연상하지만 실은 좋은 말이다. 이 말은 조선 인조 때 충북 음성에서 검소한 생활로 유명했던 조륵이란 양반으로부터 유래했다.
0…이 분은 평생 부지런히 일하고 절약해 구두쇠라는 말을 들으며 만석군의 재산을 모았다.
얼마나 검소했는지, 신발이 닳을까봐 신을 들고 다니고 아들이 조기 반찬이 먹고 싶다고 하자 조기를 사다 천장에 매달아 놓고 밥 한숟가락 먹고 한번씩 쳐다보라 했다.
하루는 아들이 밥 한숟가락에 조기를 두번 쳐다보았다고 야단을 쳤다고 할 정도였다.
0…그러나 그는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선생이 회갑을 맞았을 때 인근지역에 심한 가뭄으로 서민들이 고통을 받게 됐다. 그때 선생은 기근민들에게 그동안 모은 재산을 아낌없이 풀어 큰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선생의 도움을 받은 기근민들이 고마운 뜻으로 공을 기리고자 ‘자인고비(慈仁考碑)’라는 송덕비를 세웠다.
여기서 ‘고(考)’자는 나를 낳아준 사람도 부모이지만 내가 죽게 되었을 때 도와준 것 또한 부모라 하여, 조륵 선생이 어려운 이웃을 도와 살게 해주었기에 사랑스럽고 어질기가 부모 같다는 뜻으로 명명한 것이다.
0…어렵게 돈을 모은 사람 중에는 평소 지독할 정도로 검약스런 생활을 하지만 좋은 일에는 과감히 거액을 기부하는 미담사례가 많다. 그것은 가난한 이들의 사정을 헤아릴 줄 알기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콩나물 할머니’의 감동적인 장학금 기부 소식이 심심찮게 들리는 것도 그런 인간적인 순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네 이민사회에도 힘들고 억척스럽게 모은 재산을 동포사회를 위해 또는 장학금으로 희사하는 분이 많다.
어렵게 모은 재산이 남을 위해 값지게 쓰여질 때 쓰라린 옛 사연은 더욱 빛을 발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관인엄기(寬人嚴己)가 될 것이다. 즉 남에겐 관대하고 자신에겐 엄격하라는 뜻이다.
지금은 이것이 뒤바뀌어, 남에겐 한없이 엄격하고 자신에겐 지나치게 관대한 세상이 되어가니 안타깝다.
0…식당에서 자신의 음식을 주문할 땐 메뉴판의 오른쪽만 볼지라도 남을 위해서는 왼쪽을 보는 사람이 돼야겠다.
타인에겐 고량진미(膏粱珍味)를 시켜주고 나는 기꺼이 단사표음(簞食瓢飮)에 만족하는 사람이 많길 바래본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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