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VIII)
두 모녀를 통해 전쟁의 참상과 양면성 묘사,
연기자 소피아 로렌의 진면목 보여준 작품
(지난 호에 이어)
다음날 새벽 일찍, 잠에 취한 딸을 깨워 다시 여정에 오르는 모녀. 시골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촌로(村老)를 만나 (걷기 힘들어 하는 딸을 태우고 갈) 당나귀를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고 묻는데, 그때 로마를 공습하려는 연합군의 전투기 편대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이들을 기총소사(機銃掃射)하여 그만 노인이 즉사한다.
우여곡절 끝에 고향인 산골마을 치오치아라에 도착하는 모녀. 마침 야외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던 마을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난 모녀를 친척처럼 따뜻하게 맞이한다. 아코디언 연주를 하는 아킬레에게 누군가 '파체타 네라'라는 곡을 요청하자 체시라는 '비베레'라는 곡을 신청한다. [註: '파체타 네라(Faccetta Nera)'는 '어여쁜 검은 얼굴(의 여인)'이란 뜻으로 이탈리아 사회공화국의 비공식 국가였던 인기 행진곡이다. '비베레(Vivere)!'는 '살아라(Live)!'란 뜻으로 체사레 빅시오(1896~1978)가 작곡한 1937년 동명의 이탈리아 영화의 주제곡으로, 이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1930~1940년대를 풍미하던 유명 테너 가수 티토 스키파(Tito Schipa, 1888~1965)가 불러 크게 히트한 낭만적인 곡이다.]
순박한 마을사람들이 영국이든 독일이든 누가 이기든 상관없고 전쟁이나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거기에 참석한 젊고 지적인 엘리트 청년 미켈레(장 폴 벨몬도)는 "만일 독일이 이기면 자살하겠다"며 "파시스트 배지를 달고 있는 여러분들이 원해서 전쟁을 일으킨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남들은 죽든 말든 여기서 제 배만 불리면 된다는 뜻이라면 우리는 모두 돼지들입니다"라고 일갈(一喝) 한다.
이때 누군가 미켈레는 이상주의자라며 정치 얘기로 분위기 깨지 말고 노래나 듣자고 제안하는데….
며칠 후 미켈레는 모녀와 함께 등산을 하면서 체시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진짜 무지한 사람들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며 "순수한 농부들은 전쟁 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며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덧붙여 "지금까지 도시인들이 농부들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어요. 그러나 농부들은 절대 안 변해요"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체시라는 "나는 농부들과 다르게 산 덕분에 조금이라도 돈을 모았다"며 "나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대꾸한다. [註: 옛날이나 지금이나 산업화에 따른 rural exodus, urban exodus 문제는 정치•경제•사회 및 종교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끝없는 논쟁거리이다.]
이때 두 명의 파시스트가 나타난다. 그 중 한 명은 어제 마을에서 본 얼굴이다. 그들은 "무솔리니를 도둑처럼 감옥에 가뒀다"며 "20년 동안 건설했던 제국이 하루 만에 무너졌다"고 분개하다가 "너희 같은 반역자들은 진작에 제거했어야 했었는데"라며 총을 빼드는 게 아닌가.
미켈레가 나서서 "그게 사실이라면 난 웃으며 죽을 수 있다"며 "어서 쏴라!"고 말하는데, 다른 한 명이 "우리 손으로 죽이기보다는 독일군에게 맡기는 게 낫다"며 말리자 둘은 황급히 도망친다.
마을에서 나물을 다듬던 여자들 중 한 명이 "무솔리니를 남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화두를 끄집어낸다. 누군가가 "난 무서워서 사랑도 못 할 것 같다"고 하자 체시라가 "불을 끄면 되지" 하고 말해 모두 박장대소를 하는데….
이때 미켈레가 영국군 두 명을 데리고 들어온다. 그들은 작전을 위해 잠수함으로 상륙했다가 패잔병이 되었다고 한다. 만일 독일군에게 발각되면 모두 총살감이라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질 못하는데 체시라와 로세타 모녀가 그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대접한다.
그들을 배웅한 뒤 미켈레는 와인에 좀 취한 체시라에게 아까 포도주를 마실 때 '조반니를 위해!'라며 건배했는데 그가 누구이며 혹시 사랑하는 사람이냐고 묻는다. 사실 그 포도주는 조반니가 선물로 준 비싼 와인이었다.
대답을 회피하고 "싫은 남자와 평생을, 그것도 매일 밤 함께 자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라고 말하는 체시라.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았고, 그래서 이제라도 새로운 사랑을 갈구하는 듯한 애매한 대답이다. 로세타가 오자 딸을 업고 집으로 돌아가는 체시라.
마을사람들을 거처에 모아놓고 미켈레가 성경을 읽어주는데 들락거리는 사람들 때문에 말이 자꾸 끊긴다. 또 아킬레가 편지를 전해주자 조반니에게서 온 편지를 읽어본 체시라가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조반니가 붙잡았다"며 소리를 지르며 편지에 키스를 하는 등 도무지 책을 읽어줄 분위기가 아니다.
이에 화가 나서 밖으로 나간 미켈레를 체시라가 뒤쫓아간다. 그는 대뜸 그녀에게 정직하지 못했다며 그 이유는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이때 비가 쏟아져 혼자 뛰쳐가는 체시라.
잠자리에서 딸 로세타가 "미켈레는 엄마를 사랑해요. 엄마는 너무 예쁘잖아요"라고 말하자 "그는 25살이야. 여자는 연하의 남자와는 안 사귀는 거야"라고 에둘러 대답하는 체시라. "하지만 미켈레는 여기서 제일 착해요" "요즈음은 착한 게 별로 도움이 안돼… 그는 너무 반체제적이야. 착하기는 하지만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이지. 남편감으로는 괜찮아. 나쁜 습관도 없고… 네가 좀 더 나이가 들면 너와 약혼시키고 싶어!"
죽은 아버지를 닮은 미켈레를 잘 따르며 사춘기적 사랑을 느끼던 로세타는 "무슨 그런 말씀을…"하고 수줍어 하는데 "언젠가는 생각해야 할 일이지." 이에 한바탕 웃는 모녀의 사랑과 행복은 밤처럼 깊어만 간다.
이튿날 온 마을 사람들이 들과 산을 헤매며 먹을 것들을 찾는다. 우리의 보릿고개를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이때 미켈레가 아버지 몰래 집에서 갖고 온 커다란 빵조각을 얼른 로세타에게 건넨다. 그러나 이를 목격한 남자애가 빵을 달라며 보채자 로세타는 그를 업고 언덕 위로 올라가 나눠 먹는다.
한편 체시라는 양치기인 농부를 찾아가 거의 집 한 채 값을 주고 치즈를 사는데, 착실한 기독교도인 척하며 실속은 다 차리는 노인의 행태가 역겨울 정도로 얄밉다. 하지만 전시 체제에서 살기 위한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을 어찌 탓할 수가 있겠는가….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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