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베의 연인’ (La Ragazza di Bube)(3)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VII)
감옥에 간 애인을 기다리는 시골처녀의 애절한 순정 
 

 

(지난 호에 이어)


   이튿날 이른 아침, 친구 리돈니(쟘피에로 베케렐리)가 부베의 집으로 찾아온다. 그는 마라에게 자기는 헌병의 프락치가 아니라며 치에콜라 준위 살해 사건 때문에 부베에게 지명수배가 내려졌다고 말한다. 
   그는 부베에게 파르티잔의 아지트였던 제지공장으로 피신하라며, 어머님과 누님에게는 경찰이 오면 절대 모른다고 말하라고 당부한다. 
   리돈니는 승용차로 부베와 마라를 폐허가 된 제지공장에 내려주고 다시 오겠다며 떠난다. 
   공장 가까운 곳에 있는 술집에서 당시에 유행하던 재즈곡을 크게 틀어 이곳까지 들린다. 마라는 ‘언제까지나 숨어 지내야 하느냐’고 묻지만 ‘어떻게 될 지 동지를 한 번 믿어보자’고 대답하는 부베. 준위와 그 아들까지 살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하지만 이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마라.
   하지만 “당신이 있어서 의지가 된다”고 말하는 부베. “멤모는 내 편은 아니야. 잘난 척 하면서 설교나 하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당신 아버지는 파시스트한테 쫓기고 오빠 산테는 살해당했어! 파시스트 자식들 꼭 뿌리뽑아 버리고 말겠어. 그 준위는 죽어도 마땅해, 자업자득이야. 그치만 아들을 죽인 건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았기 때문이었어. 제 정신이 아니었어.” 때 늦은 후회다! 

 

 

   마라의 내레이션: 부베의 강해 보이는 태도는 불안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나는 생각했다. 그를 위로하고 지켜주고 싶다고…. 
   아침에 일어난 마라는 부베에게 ‘자기가 좋으면 굿모닝 키스를 해 달라’고 말한다. “버스가 없으니까 날 데리고 온 거냐?”고 묻고 “내가 귀찮으면 솔직하게 말해줘요”라고 매달리는 마라. 그런 게 아니라며 부베는 키스와 애무를 하지만 더 이상을 용납하지 않는 마라.
   밤에 마라에게 담배를 사달라고 부탁하는 부베. 가게에서 담배를 사고 소다수를 사려고 하자 한켠에 파시스트 헌병들이 있는 것을 보고 그냥 밖으로 뛰쳐나오는 마라. 
   공장에 당도하니 부베의 사촌동생인 아르나루도(우고 키티)가 찾아왔다. 그는 부베의 집에서 리돈니가 그만 헌병에게 체포되었다고 말한다. 부베가 총을 보여달라고 조르는 마라에게 총을 건네주자 그녀는 위험한 짓은 하지 말라며 냅다 연못에 던져버린다.
 

 

 

 아르나루도는 멀리 외국으로 도망가라고 종용하고, 내일 아침 일찍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하고 떠난다.    
   떠나기 전날 밤. 부베는 “약혼하기 전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 서로를 위한 길”이라며 안아달라는 마라의 청을 거절하고, “당신을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랑하니까 안고 싶어 미치겠다”고 말한다. 사랑과 전쟁 사이에서 인간적 고뇌가 엿보인다. 
   “언제까지나 함께 하고 싶어요. 당신을 절대로 혼자 있게 하지는 않겠어요. 당신과 함께 행복해지고 싶어요”라며 힘이 다할 때까지 안아달라고 애원하는 마라. 주제곡이 흐르는 가운데 안타깝고 눈물 나는 이별의 순간이다. 그날 밤 마라는 부베에게 처음으로 몸을 허락한다.
 

   또 다시 부베는 기약없이 떠나고 마을에는 해방 1주기를 기리는 축제가 열린다. 어린 리도리를 데리고 온 어머니가 “헌병에게 쫓기기나 하는 부베는 제대로 된 남자가 아니니까 잊어버리라”고 마라에게 충고한다. 시샘 많은 친구 릴리아나는 ‘마라는 마음이 아프시다’며 히히덕 거리고… [註: 영화 속 해방 1주기 플래카드 글씨로 미뤄볼 때 이 마을은 이탈리아 중북부 투스카니에 있는 몬테구이디(Monteguidi)인 것 같다.]
   부베의 행방을 찾던 헌병이 마라를 취조한다. 헌병대장은 잡히면 러시아로 보내 종신형에 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러시아’ ‘종신형’이라는 말에 겁이 난 마라는 아버지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지만 ‘당이 상황을 바꿔줄 것’이라며 ‘모두 당에 맡기고 아무 걱정도 하지 말라’는 대답뿐.

 

 

   마라는 남의 동정을 피하고 싶어서 고향을 떠나 스티레리아(Stireria)에 있는 친구 이네스(모니크 비타)의 도움으로 다림질 하는 가게에 취직하고, 그녀의 여동생 집에서 같이 살게 된다. 이네스는 “결혼할 때까지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게 좋은 거야. 찰싹 달라붙어 있으면 피곤해져. 멀리 떨어져 있으면 마음 편하지. 나는 즐기면서 지내. 일도 힘든데. 내가 너라면 맘놓고 지금을 즐길 거야. 지조를 지킨다고 해도 그가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잖아”라고 말하는데….
   거리 좌판에서 따끈따끈한 군것질거리를 사서 둘이 나눠먹는다. 벽에는 영화 ‘애수(Il Ponte di Waterloo)’의 포스터가 붙어있다. [註: 이탈리아 해방일(Liberation Day)은 1945년 4월25일이다. 1주기이면 배경은 1946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1940년 영화인 ‘애수(Waterloo Bridge)’가 이탈리아에서 개봉된 것은 1946년 4월 이후였다고 추정 가능하다. 아무튼 이는 비극적 스토리를 주인공 마라와 대비시키는 장치이다.]
   이네스가 비극적인 영화 내용을 설명하자 더 이상 얘기하지 말라는 마라. 극장 앞에 도착하니 이네스의 애인인 마리오와 그의 친구 스테파노(마크 미셸)가 기다리고 있다. 이네스가 춤추러 가기 위해 네 사람을 만들었으나 마라는 오히려 영화를 보고 싶어해 스테파노와 함께 영화관에 간다. 만원이라 입석으로 보는데 스테파노가 선수를 쳐서 한 자리를 잡아 마라를 앉힌다.
   영화가 끝나니 저녁 7시. 식사를 거절하고 집으로 가겠다는 마라를 바래다주는 스테파노. 그는 옛 약혼자의 사진을 보여주며 바람을 피고 행실이 나빠 헤어졌다고 말한다. “약혼하면 여자가 남자의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며 “그러나 지금도 가끔 서신은 교환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음 날 이네스가 외출하고 혼자 있던 마라는 옆 방 남자의 추근거림을 피해 홀로 거리를 걷다가 스테파노를 만난다. 그는 자기가 운영하는 인쇄소로 데려가 구경을 시켜준다. 라이노 타이프(자동식자주조기)까지 구비한 훌륭한 인쇄소이다. 마라의 이름과 성을 묻고 즉시 ‘마라 카스테루치’를 식자하여 주조해주는 스테파노.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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