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블랑카(Casablanca)(5)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VI)

등장인물의 캐릭터, 인상적인 대사, 주제음악 등이 어우러져

코미디, 로맨스, 서스펜스가 완전 균형을 이룬 전설적인 명화

 

 

   릭 블레인 역의 험프리 보가트(Humphrey Bogart, 1899~1957)는 겉으로는 말수가 적고 냉소적인 터프 가이로 보이지만 르노 서장의 표현대로 "냉소적인 껍질 속에 타고난 감상주의자"의 면모를 훌륭히 표출한 연기로 아카데미 최우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다. 그러나 그는 9년 후 캐서린 헵번과 공연한 컬러 작품인 존 휴스턴 감독의 '아프리카의 여왕(The African Queen·1951)'으로 드디어 오스카상을 수상하게 된다.

   보가트는 존 휴스턴 감독의 '말타의 매(The Maltese Falcon·1941)'에서 우가티 역의 헝가리 출신 배우 피터 로레와 페라레 역의 영국배우 시드니 그린스트리트와 공연했다. 그리고 역시 존 휴스턴 감독의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The Treasure of the Sierra Madre·1948)', 오드리 헵번과 공연한 빌리 와일더 감독의 '사브리나(1954)', 프레데릭 마치와 공연한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필사의 도망자(The Desperate Hours·1955)' 등 3세기에 걸쳐 75편의 주로 느와르 스릴러 영화에 출연한 미국 명배우로, 로맨틱 드라마 출연은 '카사블랑카'가 처음이었다.

 

 

   험프리 보가트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원작에 기초한 하워드 호크스 감독의 '소유와 무소유(To Have and Have Not·1944)'를 촬영할 때 공연한 로렌 버콜(Lauren Bacall, 1924~2014)과 사랑에 빠져 다음해 1945년에 재혼한다. 그녀 나이 20세, 그의 나이 45세 때였다. 그 후 보가트가 식도암으로 57세로 죽기까지 함께 했으며 슬하에 남매를 두었다. 

   르노 서장 역의 클로드 레인즈는 영국 런던 출신 배우로 마이클 커티즈 감독의 '로빈 후드의 모험(The Adventures of Robin Hood·1938)'에 출연했으며, 베티 데이비스, 라즐로 역의 오스트리아 배우 폴 핸레이드와 'Now, Voyager(1942)'에서 공연했다. 특히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오명(Notorious·1946)'에서 나치 악당 역으로 잉그리드 버그만과 공연했는데, 그의 키가 178㎝의 잉그리드 버그만에 비해 너무 작아 촬영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카사블랑카'에서 험프리 보가트도 5㎝ 정도 작아 버그만과 함께 있는 장면은 블록 위에 서거나 쿠션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찍었다는 후문이다.

 

 

   카지노 딜러 에밀 역의 마르셀 달리오(Marcel Dalio, 1899~1983)는 프랑스 배우로 1930년대에 장 르누아르 감독의 '시적 리얼리즘'의 대표작인 '위대한 환상(La Grande Illusion·1937)'과 '게임의 규칙(The Rules of the Game·1939)'에 출연하였으며, '소유와 무소유'에서 호텔소유자로 레지스탕스를 돕는 비중 높은 역을 맡았고 이때 도어맨 압둘 역의 댄 시무어(Dan Seymour, 1915~1993)도 공연했다.

   이본느 역의 마델리느 르보(Madeleine LeBeau, 1923~2016)와 1939년 결혼하여 '카사블랑카' 제작 당시인 1942년 이혼했다. 르보는 '카사블랑카'에 출연한 배우 중 유일하게 생존하는 프랑스 배우였으나 2016년 93세로 타계했다.

 

 

   피아니스트 샘 역의 둘리 윌슨(Arthur 'Dooley' Wilson, 1886~1953)은 원래 북쟁이(drummer)인데 피아노 연주는 연기에 불과했고 실제는 엘리어트 카펜터라는 스튜디오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것이라고 한다. 노래도 촬영이 끝난 다음 윌슨 목소리를 더빙했다고 전해진다.

   음악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의 음악감독으로 유명한 맥스 스타이너(Max Steiner, 1888~1971)가 맡았다. 그는 "영화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데 300여 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했으며 24차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 3번 수상한 경력을 갖고 있다. '바람과…'로 후보에 올랐지만 "오즈의 마법사'의 허버트 스토다트에게 돌아갔다. 우리에겐 '킹콩(1933)'과 '피서지에서 생긴 일(A Summer Place·1959)' 등으로 잘 알려져 있는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이다.

   '카사블랑카'에 삽입된 "As Time Goes By"는 허만 허펠트(Herman Hupfeld, 1894~1951)가 1931년 'Everybody's Welcome'이란 브로드웨이 쇼를 위해 작곡한 노래였기 때문에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그래서 맥스 스타이너가 새로 만든 곡으로 대체하기 위해 재촬영을 하려 했지만 잉그리드 버그만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마리아 역을 위해 이미 머리를 숏커트한 상태여서 촬영이 불가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대신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와 독일군의 노래의 대결 구도로 분위기를 바꾸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출연진 대부분이 유럽 출신일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또는 피난민으로서 실제 절망적이고 눈물겨운 체험을 했던 배우들이라 나치 역을 맡은 배우들은 물론 이 '카사블랑카'의 '국가(國歌) 대결' 장면에서 감정에 북받쳐 많이들 울었다고 한다. 또 이 영화를 하버드대에서 처음 상영했을 때 이 장면에서 '라 마르세예즈'를 모두가 따라서 불렀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1998년에 마이클 월쉬(Michael Walsh)가 위의 노래와 같은 제목으로 쓴 소설 'As Time Goes By'는 110만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그 성공의 요인은 책의 엔딩이 영화의 마지막 귀결의 정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은 제작된 지 반 세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카사블랑카'의 열혈 팬이 아직도 많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마이클 커티즈(Michael Curtiz, 1886~1962) 감독은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으로 유럽에서 50여 편, 미국에서 100여 편을 감독했는데 1930~1940년대 워너브라더스 영화사의 전성기에 활약하였다.     

   가장 잘 알려진 영화로는 '소돔과 고모라(1922)', '노아의 방주(1928)'를 비롯하여, 에롤 플린 주연의 '로빈 후드의 모험(1938)', 제임스 개그니와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더러운 얼굴의 천사(1938), 제임스 개그니 주연의 '양키 두들 댄디(1942)' 등이 있다. 특히 빙 크로스비와 로즈마리 클루니 주연의 '화이트 크리스마스(1954)'로 우리 기억에 깊이 각인된 명감독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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