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VI)
등장인물의 캐릭터, 인상적인 대사, 주제음악 등이 어우러져
코미디, 로맨스, 서스펜스가 완전 균형을 이룬 전설적인 명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과 여인의 운명' 시리즈 중 다섯 번째로 ‘카사블랑카(Casablanca)’를 꼽아보았다. 본보에도 10년 전에 연재된 바 있고, 역대 최고의 헐리우드 영화라 아마 안 보신 분이 거의 없으리라 생각한다. 또 유행가 가사에도 나오는 '카사블랑카(하얀 집이란 뜻)'라는 점에서 적어도 제목만이라도 다 알고 계시리라 믿는다.
이 영화는 잉그리드 버그만을 세계적 배우로 발돋움시켰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및 각색상을 수상하였다. 1942년 워너브라더즈사 배급. 흑백 로맨틱 드라마. 감독 마이클 커티즈. 출연 험프리 보가트, 잉그리드 버그만, 폴 헨레이드, 클로드 레인즈 등, 러닝타임 102분.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0~1944년 기간 동안 프랑스 필리프 페탱 원수가 이끄는 비시(Vichy) 정권 통제 하에 있던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최대의 도시 카사블랑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1942년 상영 몇 주 전인 11월8일에 미·영 연합군의 북아프리카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 즉 '횃불 작전(Operation Torch)'이 진행되어, 미국은 다음날인 9일 모로코, 10일 알제리를 점령하고, 영국도 10일에 튀니지를 점령하게 되자 천재일우(千載一遇)의 절묘한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11월26일에 개봉하여 큰 인기몰이를 했다고 한다.
행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렇게 뉴욕시에서 처음 개봉한 후 그 다음해인 1943년 1월23일에 전국 개봉을 했을 때, 마침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 이오시프 스탈린 소비에트 연방 당서기장 등이 참석한 정상회담이 실제 카사블랑카에서 열렸던 것이다. '카사블랑카'로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이보다 더 절묘한 마케팅 호재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진작 촬영은 캘리포니아 버뱅크 소재 워너브라더즈 스튜디오에서 전부 이루어졌고, 다만 공항 장면은 LA의 밴 나이스 공항(Van Nuys Airport)에서 촬영되었다. 이 영화는 머리 버네트와 조앤 앨리슨이 쓴 소설 ‘모두가 릭의 카페로 온다(Everybody Comes to Rick's)’를 원작으로 각색하였는데, 줄거리와 대사가 소설의 내용과 달라져서 배역진들은 마지막까지 결말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1940년에 쓴 '모두가 릭의 카페로 온다'는 당시 미출판된 상태였는 데도 워너브라더즈사의 제작자 할 B. 월리스는 인기를 끌만한 줄거리로 평가하여 당시로서는 사상 유례 없는 2만 달러(현재가치로 300~400만불)를 주고 작가로부터 이 작품을 샀다고 한다. 그리고 제목을 1938년 히트영화인 '알제(Algiers)'를 모방하여 '카사블랑카'로 이름 붙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알제'는 그 전 해인 1937년 프랑스의 거장 줄리앙 뒤비비에 감독의 '망향(Pepe le Moko)'을 미국판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당시 어느 누구도 이 영화로 노다지를 캘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만 정작 영화가 히트하여 상영 첫해에 370만 달러를 벌어들이자 2만불의 대가는 일종의 사기(?)로 밖에 볼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원작자가 로열티 소송을 걸어 결국 워너브라더즈사는 1997년에 두 작가에게 각각 10만불을 추가 지급함으로써 일단락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하도 유명한 전설적인 영화이다 보니 이렇게 그 뒤에 숨은 숱한 일화들이 많기 때문에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좀 깊이 있게 서술하고자 한다.
이제 영화 속으로 들어가보자. 먼저 아프리카 지도를 배경으로 오프닝 크레디트가 나온 다음, 몽타주 시퀀스를 통해 내레이션으로 당시의 상황이 설명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럽인들의 가장 큰 희망은 나치가 점령한 조국을 떠나 자유의 땅 미국으로 건너가는 것이었다. 당시 탈출구는 중립국인 포르투갈의 리스본이었으나 바로 가긴 힘들었기 때문에 돌아가는 피난민이 줄을 이었다."
이때 장면은 파리에서 마르세유로, 지중해를 건너 알제리 오랑으로, 거기서 열차, 자동차로 또는 걸어서 아프리카를 서쪽으로 가로질러 모로코의 카사블랑카로 가는 루트를 보여준다. [註: 이 시퀀스는 돈 시겔(Don Siegel, 1912~1991)이 창안한 것인데 그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더티 해리(1971)' 1편 및 '알카트라즈 탈출(1979)', 존 웨인 마지막 영화인 '최후의 총잡이(The Shootist·1976)' 등의 감독으로 더 유명하다. 알제리 오랑(Oran)은 알베르 카뮈의 명작 '페스트'의 무대로 유명한 곳이다.]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카사블랑카에서 돈이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은 운좋게 비자를 구하여 리스본으로 가서 미국으로 갈 수 있었으나, 대부분의 피난민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그곳에서 마냥 기다려야 했다. 끝없이…, 끝없이…."
장면은 카사블랑카의 난민들로 북적거리는 이색적인 거리를 보여주다가 프랑스 경찰의 방송에서 독일 서류전달병 2명이 오랑발(發) 기차에서 살해되었으며 용의자가 카사블랑카로 향하고 있으니 검문 검색을 강화하여 문서를 찾으라는 지령이 내린다. 카사블랑카의 난민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프랑스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든다.
이때 불법체류자로 들통나 도망가던 한 난민이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 필리페 페탱 장군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담장 앞에서 사살된다. 그리고 연행된 숱한 사람들이 경찰서로 끌려간다. 정문 아치에 새겨져 있는 프랑스 국가 이념인 '자유·평등·박애'가 무색하다. [註: 필리페 페탱(Henri Philippe Petain, 1856~1951)은 프랑스의 군 장성(將星)으로 제1차 세계대전 때의 무훈으로 한때 프랑스의 국부(國父)로 칭송 받았으며, 비시(Vichy) 정부의 수반이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협력함으로써 프랑스 국민들의 '공공의 적'으로 지목되어, 고령을 감안 총살형 대신 종신형을 선고 받았던 인물이다.]
이때 군용기 한 대가 날아오자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고 미국으로 갈 꿈에 들떠있는데 사실은 독일 나치의 스트라사 소령(콘라드 파이트)이 타고 온 비행기였다. 그는 카사블랑카를 지배하는 프랑스 비시 정부의 경찰서장 루이 르노(클로드 레인즈)의 영접을 받고 독일병 살해범에 대해 묻는다. 르노 서장은 이미 범인을 알고 있으며 오늘밤 '릭의 카페'에서 그를 보게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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