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V)
'하나님의 구원조차도 차단이 된 최후의 시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겪는 기구한 인생유전
(지난 호에 이어)
다음날 밤, 기다리고 있던 트럭을 타러 가는데 운전수가 바로 그 지휘관이다. 돈으로 매수 당한 것이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박사는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탈출하여 미국으로 갈 계획이라고 말한다.
1940년 11월20일 부다페스트. 4일 만에 세체니 다리에서 내린 일행은 걸어서 박사의 여동생 로사와 매제 이삭 나기(해롤드 골드블래트)의 집에 당도한다. 아런 스트룰(마르셀 달리오)과 얀켈 모리츠 등 일행을 소개하는 박사.
저녁을 식탁에서보다는 굳이 부엌에서 혼자 먹겠다는 요한에게 하녀 줄리스카가 루마니아인, 헝가리인이 다를 게 뭐 있냐며 겸손이 지나치다는 듯이 쏘아붙인다.
다음 날 아드라모비치 박사가 요한을 불러 유대인 자선단체에 알아봤는데 '모리츠는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으로 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순금팔찌를 주며 팔아서 돈을 챙기라며 호주머니에 넣어준다.
박사는 취리히 행 열차를 탄다. "스위스는 여기서 먼가요?"하고 묻는 요한에게 "쫓기는 사람에겐 먼 곳이란 없다"며 "자네가 그리울 거야. 자네는 자유인이야. 행운을 비네"라고 말하고 떠난다.
그러나 박사를 전송하고 기차역을 나오다가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헝가리 경찰에 체포되는 요한. 갖고 있던 금팔지가 러시아제라며 루마니아 비밀경찰이 보낸 첩자로 몰린 요한은 다시 '쟝 모리츠'로 개명이 되어 헝가리인 지원자로 독일로 강제 송출된다.
기차 속에서 기차를 타니 좋다고 말하는 요한에게 팔려가는 게 그렇게도 좋으냐고 옆사람이 묻는다. '여행을 즐기는 것뿐'이라며 '그래도 걷는 것보단 낫죠'하고 뭐가 어찌 돌아가는지 영문을 모르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불쌍한 요한….
독일 오렘부르크 수용소에서 또 다시 힘든 노동으로 2년을 보낸 1942년 12월 어느 날, 정치범 죄수들 중에 있는 동향인 작가 트라얀을 본 요한이 자기는 폰타나의 '요한 모리츠'라며 소리친다. 그러나 힐끔 쳐다만 볼 뿐 그는 행렬을 따라 급히 지나쳐 사라진다.
작업장에서 일하는 요한에게 감시병이 "더럽고 천한 마자르족 헝가리인, 노란 몽골놈!"하며 경멸한다. 이때 뮐러 대령(마리우스 고링)이 모리츠를 목격하고 머리와 얼굴을 만지고, 그리고 입을 벌려보라며 간단히 조사한 후 그는 헝가리인이 아니라며 대뜸 회의실로 데려가는 게 아닌가.
인류사회학 권위자인 뮐러 대령은 수하생 장교들을 집합시켜 놓고 요한의 옷을 벗기고 자로 재 가면서 전형적인 아리안족의 얼굴과 골격을 갖춘 순수한 혈통이라고 자신 있게 단정하고는, 그에게 베르펠 SS 복장을 입혀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선전하는 광고모델로 만든다. 요한은 일약 유명스타가 되어 포로수용소를 지키는 독일군 경비가 된다. 기막힌 인생 유전이다!
또 이렇게 1년 반이 지난 1944년 4월20일, 러시아가 루마니아를 침공한다. 이제 유격대원이 된 마르코 골든버그 변호사가 자기를 유대인 수용소로 보냈던 폰타나의 도브레스코 상사를 체포한다.
한편 마차를 몰고 수잔나 집으로 찾아온 코루가 신부가 요한의 독일 선전 포스터를 보여준다. 그래도 남편이 살아있음에 기뻐하면서 아들 페드레와 안톤에게도 보여주는 수잔나. 그러나 신부는 가족이 위험하다며 빨리 폰타나를 떠나라고 충고한다.
한편 포로 수송임무를 맡은 요한이 독일 감시병을 죽이고 포로들과 함께 미군 24사단 3여단으로 도망친다. 그러나 반독일 연맹국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오렘부르크 수용소로 다시 후송되는 요한. 오렘부르크 수용소가 이제는 독일군 포로수용소로 바뀌어 미군이 주관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트라얀을 또 발견한 요한은 그를 자기 막사로 데리고 가는데…. 19개월 후인 1946년 9월. 동향인 농부 '요한 모리츠'를 위해 수용소 사령관에게 일주일에 한 통씩 64번째 석방탄원서를 대신 써온 트라얀 코루가. 그는 영화 초반부에 그의 어머니와 '25시'에 관한 대화를 나눈 작가로 원작자 게오르규 자신을 상징하는 가공인물로 등장한다.
트라얀에게 폰타나에서 온 편지가 배달된다. 적십자사 덕분이었는데, 신부인 아버지는 감옥에 있고 교회는 문을 닫았으며 어머니는 돌아가셨다고 요한에게 말한다. 그리고 수잔나는 살아있고 아들과 함께 폰타나를 떠났다고 전해주는 트라얀.
늦은 밤,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던 트라얀이 마침 잠이 깬 요한에게 끼고 있던 안경을 건네며 잘 보관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우리 모두를 쓴다고 한 책이 있잖아요?!"하며 요한이 의아해 한다. "어머니가 제목을 선물로 주셨어. '25시'야. 요한, '25시'는 마지막 시간이야!"라며 혼자 산책을 하겠다고 밖으로 나가는 트라얀.
자살을 각오한 듯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철조망으로 가던 트라얀은 이윽고 경비원의 총격을 받고 쓰러진다. 총소리를 들은 요한이 웃통을 벗고 맨발로 뛰어간다. 그가 남긴 오렘부르크 수용소 사령관 그린필드 대령 앞으로 쓴 쪽지가 전해진다. "이것이 벌써 65번째 석방탄원서"라고 썼는데 사령관은 이 탄원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났지만 이제 요한은 전범 나치의 협조자가 되어 재판에 회부된다. 이른바 '뉘른베르크 재판'이다. [註: 독일 뉘른베르크(Nuremberg)에서 열린 나치 독일의 전범들과 유대인 학살 관여자들에 대하여 열린 연합국 측의 국제 군사 재판(Nuremberg Trials)으로 1945년 11월에 시작되어 1946년 10월까지 403회에 걸쳐 진행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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