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II)
멜로드라마와 첩보 스릴러 장르의 절묘한 만남
캐리 그랜트·잉그리드 버그만 전성기 불후의 명작
(지난 호에 이어)
이 사실과 지난 만찬 때의 와인병 에피소드 사이에 연관이 있다고 판단한 데블린은 직접 조사를 하기 위해 앨리시아에게 큰 파티를 열도록 주문하고 자기도 초대해 달라고 부탁하는데….
한편 앨리시아는 비밀리에 세바스천의 열쇠고리에서 포도주 창고 열쇠를 훔친다. 그때 세바스천이 와서 격렬히 포옹하는 바람에 오른손에 쥐고 있던 열쇠를 왼손으로 옮겼다가 이윽고 카페트 바닥에 떨어뜨려 발로 보이지 않게 책상다리 옆으로 밀쳐 놓음으로서 간신히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는 앨리시아!
장면은 리우 데 자네이루 해변가에 있는 세바스천의 맨션. 성대한 파티가 열린다. 이때 카메라가 이층 발코니에서 천천히 이동하면서 로비홀을 높이 넓게 보여주다가 점차 아래로 내려오면서 줌 인(zoom-in)하여, 숨긴 열쇠를 불안해하며 꼼지락거리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오므린 손을 클로스업 해 보여주는 장면이 압권이다.
데블린이 나타나 앨리시아의 손등에 키스하는 순간 그 열쇠를 눈치 채지 않게 그의 손에 교묘하게 전달하는 앨리시아. 이들의 행동을 질투심에 불타서 은밀하게 감시하는 세바스천의 눈을 피해 둘이서 칵테일을 마시러 가는 사이에, 샴페인을 원샷으로 들이키고 사라지는 사나이가 등장한다. 바로 카메오 역의 히치콕 감독이다. 이때가 영화 시작 후 60분이 지났을 때다.
데블린은 앨리시아가 망을 보는 사이 와인 창고 안을 조사한다. 그때 데블린이 실수하여 와인병이 바닥에 떨어졌는데 그 병엔 술이 아닌 이상한 검은 모래가루(나중에 우라늄석으로 판명된다)가 들어있다. 샘플을 채취한 후 그 자리에 다른 와인병을 채워놓고 깨끗이 정리하고 문을 잠그고 나온 데블린과 앨리시아.
그때 세바스천이 모자란 샴페인을 가지러 창고로 접근해 오자 관심을 돌리기 위해 둘은 키스를 한다. 위기를 넘긴 데블린은 그 집을 무사히 빠져 나온다.
한편 와인 저장고 문을 열려고 열쇠고리를 끄집어냈으나 열쇠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린 세바스천…. 그러나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보니 없어진 열쇠가 고리에 도로 끼워져 있다.
홀린 듯 앨리시아가 침대에 자고 있는 동안 그가 포도주 창고에 내려가 보니 선반 위에 있는 포도주가 모두 1934년산(産)인데 한 병만 1940년산 레이블이 붙어있는 게 아닌가.
수상히 여겨 선반 밑바닥 안쪽을 손으로 훑어보니 1934년 레이블이 붙은 깨진 유리병 파편과 검은 모래가 흩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세바스천!
세바스천은 데블린과의 관계를 의심해보다가 드디어 앨리시아가 미국의 첩보원임을 눈치채게 된다. 이제 진퇴양난에 처하게 된 세바스천! 그의 동료 나치들에게 자기의 실수를 실토하면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앨리시아도 위태롭게 될 터이니, 일단 이 상황을 어머니 안나와 먼저 상의하고 도움을 청하는데….
그녀는 앨리시아에게 독이 든 커피를 마시게 해 서서히 죽이는 방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녀를 방에 가두어 두고 나치 관계자들에게는 이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앨리시아가 정보국장을 찾아갔을 때 그 검은 가루는 우라늄석으로 밝혀진다. 그러자 그녀에게 우라늄석 채굴 출처를 밝히라는 새로운 임무가 맡겨지는데….
현기증을 앓고 있던 앨리시아는 어느 날 세바스천의 친구이며 나치 음모자인 앤더슨 박사(레이놀드 슌젤)가 찾아왔을 때 우라늄석 채굴 장소 뿐만 아니라 그녀의 병의 원인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앤더슨 박사가 실수로 앨리시아가 마시던 커피잔을 집어 들자 세바스천과 안나가 새파랗게 질려 둘이 거의 동시에 못 마시게 말렸기 때문이었다.
충격을 받은 앨리시아가 그녀의 방으로 돌아가려다 층계 밑에서 어지러워 쓰러진다. 그녀는 방으로 옮겨졌으나 전화도 치워버렸고 너무나 허약하여 밖으로 나갈 기운도 없었다. 더욱이 그녀 방엔 안나가 뜨개질을 하며 지키고 있다.
한편 데블린은 5일 동안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엘리시아가 궁금해 세바스천의 집을 방문한다. 집사로부터 그녀가 약 일주일 정도 몸져 누워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 데블린. 그때 세바스천은 나치 관계자들과 회의를 하고 있는데 참석자 모두가 하나같이 자신의 정보가 유출된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세바스천을 마냥 기다리고 있던 데블린은 살며시 앨리시아의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 본다.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로부터 세바스천과 그의 어머니 안나가 독약으로 죽이려 했다는 얘기를 듣고 데블린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고 말한다.
약기운 때문에 몸을 추스릴 수 없는 앨리시아는 "내가 깨어 있게 다시 (사랑한다고) 말해 줘요."라고 속삭이는데….
이윽고 데블린이 엘리시아를 부축해서 그녀의 방에서 나오다 세바스천과 그의 어머니 안나와 맞닥뜨린다. 남편이 아닌 제3자인 데블린이 나타나 앨리시아를 병원으로 데려가려고 하자 아래층에서 나치 관계자 3명이 아차 하면 응사할 태세를 갖추고 이들을 지켜본다.
역시 총을 숨기고 층계를 내려오던 데블린이 모자(母子)가 독약을 먹여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폭로하자 나치 동료들의 의심을 받게 된 세바스천과 안나는 당황한다.
세바스천은 지난번 잘못된 일로 나치에게 죽임을 당한 과학자를 생각하면서 두려움에 떤다. 집밖까지 따라나온 세바스천은 데블린에게 같이 데려가 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데블린과 앨리시아는 그를 나치 친구들에게 남겨놓은 채 총총히 차를 몰고 떠나버린다.
카메라가 절망감에 젖어 넋이 빠진 듯 힘없이 집으로 되돌아가는 세바스천의 뒷모습을 보여주다가 마침내 안으로 들어가 현관문이 닫히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오명'에서 세바스천의 와인 창고에 나치에 의해 숨겨놓은 우라늄은 당시 그것이 원자탄 개발에 사용된다는 사실을 일반인들은 잘 모를 때였다. 히치콕 감독은 1945년 중반에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의 192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밀리컨(Robert Andrews Millikan, 1868~1953) 교수를 찾아가 우라늄에 대해 문의한 일로 인해 수개월 동안 미연방수사국(FBI)에 의해 추적 당한 일이 있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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