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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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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읽는 풍운아 윤치호의 <우순소리>(6)

 

10. 꾀꼬리

  

꾀꼬리가 어느 날 수리에게 잡히자 애걸하며 말했다.

“여보, 댁 같이 크신 양반이 나같이 작은 새를 먹어봣자 한 입거리도 안 될뿐더러 내 생애가 소리뿐이니 좀 들어보시오.”

수리가 대답하기를,

“소리마저 먹으면야 더 맛이 있겠지. 내 손 안에 들어온 작은 새가 내 손 밖에 있는 저 큰 새보다 낫느니라” 하더라.

압제 정치 밑에서는 말을 잘해도 소용이 없다. 

  

  

엮은이의 글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지 말라. 내 손에 들어온 작은 새가, 잡히지 않고 공중에 나는 큰 새보다 더 값지다,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이 가장 값진 것이며, 가장 작은 것이 더 소중함을 깨우쳐주는 교훈이다. 

칼빈의 말처럼,‘자신에게서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어서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기 위해 성소로 달려가는 사람’의 내적 행복감을 말해준다. 

 

  윤치호 일기 

 

 “노래하는 새가 되어 천국노래로 외로운 사람을 위로 해 주고 싶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뜻은 모르지만 그리스도가 좋다고 하셨으니 나도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사치스런 생활을 거부할 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생활에 필요한 것 조차도 나누고자 합니다.

천당에 가려는 것은 내가 언제라도 푹신한 안장에 올라 앉아서 집으로 가려는 것과 같이 느낍니다. 

내가 믿음이 있으면 얼간이 같은 새도 노래를 불렀습니다. 가장 천한 텍사스 산 조랑말도 그 보다 더 나은 동물이 된 듯합니다.”- 1892년10월26일 에모리대학, 내스의 설교를 듣고.)

 

“농지를 사들여서 그 땅이 되살 수 없는 자들의 손에 넘어가는 걸 막는 사람은, 그 땅을 팔아서 독립운동 자금을 대주는 사람보다 더 현명한 애국자다.”-1920년6월5일

 

 

11. 배와 수족(手足)

  

 

하루는 손과 발과 입과 다리가 모여 회의를 했다.

“우리는 음식을 받아들이기에 밤낮으로 분주한데 배는 아무 일도 안 하고 먹고만 있으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는가. 오늘부터 우리가 손은 밥 한 술도 입에 넣지 말고, 입은 음식 한 고물도 씹지 말고, 발과 다리는 아무 데도 가지 말자.”고, 약속을 했다. 

배는 이에 대해 아무 말도 않고 저들이 하는 대로 지켜보았더니, 며칠 안 되어 배가 고파지자 손과 발은 기운이 빠지고, 입은 말할 힘조차 없고, 다리는 꼼짝할 수 없게 되었다. 

배가 그제서야 말하기를, “음식을 제공하는 것은 너희들의 일이오, 소화시키는 것은 내 일이니, 너희가 없어도 내가 못 살고, 내가 없어도 너희가 못 사는구나. 그러니 우리가 각기 맡은 일을 잘하여 서로 도와주어야지, 각기 제 몸만 생각하면 모두 끝장 나느니라.”하더라.

 

 

엮은이의 글   

국가나 단체의 한 구성원이 지도자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봉사 의무마저 철회한다면, 이것은 나라에 대한 혹은 그가 속한 조직에 대한 부정적인 반역이다. 서로 협동하므로서만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는 교훈이다.

윤치호는 독립협회 회장 직을 맡았을 때 회원들이 단결하지 않고 지지부진하게 행동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고, 나라를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며 동상이몽하는 모습을 한탄했으며, 수족이 따로 노는 듯한 독립협회도 결국 무산되었다. 

 

 윤치호 일기 

    

   

“독립협회는 마치 하나의 광대극을 보는 것 같다. 독립협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집단 같다. 독립협회 안에 이완용과 그 패거리들이 서로 이익을 챙기려고 이리저리 날뛰고 있다.  그들은 대원군파, 러시아파, 일본파, 왕당파 들이다. 각기 다른 이 악당들은 여기 저기에서, 그리고 나 같은 방관자도 자기편으로 끌어 드리려고 찾아 다니고 있다.”-1897년7월25일 독립협회 모임에 참석한 최초의 기록.

 “윤치호는, 독립협회의 실질적인 지도자인 서재필에게 독립협회를 유용한 단체로 개조할 것을 제의한다. 독립협회를 강의실, 도서관, 오락실 그리고 박물관을 갖춘 일종의 학회(General Knowledge Association)로 개조하려는 것이다. 즉 독립협회를 官人들이 모여 한담이나 하는 사교 클럽에서 민중을 계도하는 계몽단체로 전환시키고자 한 것이다.”-1897년8월29일. 독립신문1898년 7월20일 기사 

“서재필은 윤치호의 구상에 전적으로 동의(1897.8.5.)- 독립협회 모임의 개조를 강력 제의하여 일단 토론회로 개조하기로 결정을 본다. 윤치호는 권재형, 박세환과 함께 會則 基礎 3인 위원에 선임-회칙 제정- 8월15일에 독립협회 토론회 조직- 8 월 29일에는 “조선의 급선무는 국민의 교육으로 작정함”을 제목으로 독립협회 제1회 토론회가 개최된다.”-1897년8월5일, 8월29일.  

 “사회의 당면문제를 인식시키고, 회원들에게 대중연설 훈련의 기회를 주고, 민중을 독립협회 모임에 참여케 하여 독립협회가 민중계몽단체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897년 가을까지 서울의 모든 학교에 토론회를 도입시킬 계획이다.”-윤치호 일기 1897년8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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