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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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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읽는 풍운아 윤치호의 <우순소리>(2)

(지난 호에 이어)

“샤진 사가시오 우리가 잇지못할 기념물, 발매소 신한국”
이 사진은, 1909년10월26일에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토마스 애국의사의 사진엽서이다.
안중근 의사가 혈서로 대한독립(大韓獨立)이라고 쓴 태극기 네 구퉁이에, 안중근이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 동맹에서 손가락을 자르고 혈서를 쓴 직후의 사진과 여순감옥 내의 사진 등 4장을 부쳐놓았다.
<우순소리2 외양치례>는, 나라를 빼앗긴 이 암흑시대에, 안중근 의사같이 의로운 투사가 있는가 하면, 나라를 잃고도 자신의 권세와 사치에만 눈이 먼 궁내 대신들이 있음을 한탄하며 빗댄 글이다.  
      

 

윤치호 일기 

“조선조 역사상 가장 중대한 과오를 저지른 죄인과 반역자들은 1896년부터 1904년까지 조선을 통치했거나 실정을 편 자들이다. 지금 젊은 세대 뒤에 오는 다음 세대는 민족의 구원계획을 세울 정도로 충분히 학습해야 할 것이다.”- 1905년6월20일
“호놀루루 감리교회와 영국성공회에서 교민들에게 강연했다. 강연요지는 다음과 같다.
1) 근검, 청결, 성실을 가르치시오.
2) 新朝新聞은 분쟁을 조장하지 말고 교민들의 실생활에 유익한 정보를 보도하시오.
3) 역적이란 말로 모함하지 마시오.
4) 교파문제로 싸우지 마시오.
5) 목적 없이 돈을 걷지 마시오.
6) 일본인을 비롯하여 동양인들끼리 우호를 증진하시오.”-윤치호일기1905년9월18일


3. 고양이와 원숭이
  

  
고양이와 원숭이가 한 집에 정답게 살고 있는데, 이들의 장난이 비할 데 없이 심하다. 원숭이는 보는 것마다 훔치고, 고양이는 쥐 잡기에 마음이 없고 찬장만 들락거렸다. 
하루는 화로에 밤 굽는 것을 보고, 원숭이가 고양이를 불러 말하기를, “형님, 저 군밤을 꺼내면 우리 둘이 맛있게 잘 먹겠지요? 한데, 내 손은 형님 손처럼 재빠르질 못하니 형님이 꺼내시려오?”
그 말을 듣고 고양이가 화로의 잿더미를 헤치면서 밤을 하나씩 꺼내놓자, 밤을 꺼내놓는 즉시 원숭이가 벗겨 먹어버린다. 이때 주인이 들어오자 고양이는 발만 불에 데이고 밤은 맛도 못 본 채 도망 쳐버렸다.
외국인의 심부름이나 하면서 매국賣國하는 사람들은 생각 좀 해보시오!

  

 


엮은이의 글 
 

정당하지 못한 뒷거래로, 개인의 이익만 챙기고 나라까지 팔아먹는 하수인에게 속아 넘어가는 어리석은 정치인을 빗댄 교훈이다. 
남에게 혹은 다른 나라에 바보같이 이용만 당하는 사람을 ‘고양이 앞발’ 이라고 부르는 서양의 격언이 있다.  
따라서1905년, 외교권을 뺏기고, 일본에 좋은 일만 초래한 을사조약에 서명한 대신들을 빗댄 교훈이다.
 
윤치호 일기 
“유교는 왕을 국가에 군림하는 폭군으로 만들고, 아버지를 가정에 군림하는 폭군으로 만들고, 시어머니를 며느리에게 군림하는 폭군으로 만들고, 남편을 아내에게 군림하는 폭군으로 만들고, 남성을 여성에게 군림하는 폭군으로 만들고, 주인을 하인에게 군림하는 폭군으로 만들어 가정과 국가에서 모든 자유와 기쁨의 정신을 말살했다. 유교는 폭정의 체계라고 불릴 만하다.”- 1904년 5월 27일.
 “조선인들은 너무 오랫동안 붓의 노예로 지내왔기 때문에 붓으로 강철과 물리력에 충분히 맞서 싸울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욕조와 칼이 일본 문명의 원천이라면, 붓과 한문은 조선의 정신과 희망의 무덤이다.” - 1905년11월 27일.
“최근 새 조약을 강제로 청한 데 대하여 벼슬자리를 잃을까 걱정하는 무리들이 끝끝내 거절하지 않고 머리를 굽실거리며 따랐기 때문에 조정과 재야에 울분이 끓고 상소들을 올려 누누이 호소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로 일치된 충성심과 애국심은 어두운 거리에 빛나는 해나 별과 같고, 홍수에 버티는 돌기둥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지난날의 조약을 도로 회수해 없애버릴 방도가 있다면 누가 죽기를 맹세하고 다투어 나아가지 않겠습니까마는, 지금의 내정과 지금의 외교를 보면 어찌 상심해서 통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지금이라도 든든히 가다듬고 실심으로 개혁하지 않는다면 종묘사직과 백성들은 필경 오늘날의 위태로운 정도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조선왕조실록 고종실록, 대한 광무 9년 양력 12월 1일자 5번째 기사.
1905년에 체결 된 을사늑약 조인에 결사반대하고, 12월 1일에 한성부 저잣거리에서 조약의 무효를 주장하고, 을사 보호 조약에 서명한 대신들을 처벌할 것을 고종황제에게 상소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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