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레사 동굴 앞에서 ‘이냐시오 성인의 적극적인 명상’을 생각하며-
스페인, 만레사의 거친 바위 동굴 속. 성모님이 성자와 더불어 성부님께 간구하는 신비한 환상을 보고 참회와 시험 받는 고통을 통해 영적으로 거듭나는 이냐시오 성인의 모습이 작은 제단 위 돌벽에 조각되어 있다. 이 동굴은 이냐시오의 ‘영성수련’Spiritual Exercise의 산실이기도 하다.
문 닫기 전 겨우 십오 분의 시간을 남겨놓고 들어갔기 때문에, 더 깊은 묵상의 기도를 할 새가 없이 이냐시오의 초기 마음처럼 허둥대고 망설이다가 짧게 주의 기도만 드리고 나왔다. 그 대신 동굴 밖의 벽화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며 기념카드를 살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만레사의 까르도네르 강물이 흘러 내리는 강둑 위에 기대서서 한숨 돌리며 멀리 몽세라 산의 연푸른 산봉우리들을 바라 보았다. 검은 성모님과 아름다운 소년합창단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 몽세라에서 다시 전차를 타고 이곳 종점까지 15킬로미터, 그리고 이냐시오 성인의 동굴 위에 세운 교회를 찾아 10분정도 걸어 왔으니까 그리 먼 곳은 아니다.
그러나 이냐시오가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떠나기 전에 몽세라의 성모님 발치에서 참회의 밤샘 기도를 올린 후에 이 만레사까지 험한 산길을 걸어오긴 쉽지 않았으리라.
십자가가 서 있는 이 근방 어딘가에 앉아 그는 까르도네르 강물을 내려다 보며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 깜짝할 사이에 그가 일생을 두고 배우고 실천하게 될 영성에의 깊은 이해가 마음 속에 섬광처럼 비추어왔다고 한다. “그의 이해심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그에게 다른 사람의 마음이 주어진 듯 밝아진 빛의 사건”이었다. 이어서 그는 동굴로 돌아와 계속해 뱀의 환시로 시달리면서도 ‘영성수련’의 틀을 이곳에서 완성한다.
후에 영성수련의 수호성인이 된 로욜라의 이냐시오(1491-1556)는, 스페인 바스크 귀족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행복한 젊은 시절을 기사도로 성장한다. 전쟁 중에 다리를 다쳐 로욜라성에 돌아와 쉬면서 ‘그리스도의 생애’와 ‘성인들의 생애’를 읽으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는데 이 시기에 그에게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지금까지 누린 영예와 영웅심의 허무감에 빠져, 프란치스코 성인과 도미니코 성인,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본 받으려는 자각심에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결심한다.
이 시기는 그가 만든 영성수련 Spiritual Exercise에서 ‘영성식별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522년 2월, 그는 예루살렘을 순례하기 전에 몽세라의 검은 성모님 앞에 그의 단검과 군복을 벗어서 바치고 참회의 기도로 밤을 지새운다. 몽세라 산길을 오르는 중에 종교논쟁을 벌이던 회교도를 찔러 죽이고 싶었던 그가 단검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군사가 될 것을 서약한다. 그의 모든 것을 ‘내려놓음’의 시기이다.
그는 만레사의 동굴에서 까르도네르 강을 내려다 보며 ‘영적일기’와 그의 영혼이 주님과 일치하는 경험을 ‘영성수련’에 쓴다. 1529년에 사제서품을 받은 이냐시오는 동료들과 ‘예수회’ 수도회를 만들고, 종신 총장에 선출되어 ‘영성수련’을 주로 가르치고 설교한다. 영성운동의 선구자로 활동했던 그는 선종 후 1622년에 시성의 반열에 오른다.
나는 그의 영성수련의 기도 방법 중에 ‘적극적인 명상’ Active Contemplation, 즉 상상을 통해 기도하는 방법에 마음이 끌린다. 20세기 스위스의 심층심리학자이며 정신분석 의사인 구스타브 융이 이 원리를 기초로 ‘적극적인 상상’Active Imagination 이라는 새로운 학설에 적극 활용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의 제자 커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적극적 명상이란, 무의식으로부터 자연적으로 생기는 심상mental image에 대해 철저히 의식을 집중하고 내적인 상에 주의를 기울여, 의식에 유효한 정신에너지 libido가 무의식으로 이행하여 무의식의 리비도가 증가하고 이를 자극하여 일련의 연관된 상이 내안inner eyes에 나타난다. 이때 의식적 자아가 이 무의식적 상에 적극적으로 참여 함으로서 상호간의 대면이 이루어지고 이 양자를 통합하는 개성화 과정에 이르는 체험을 하게 된다.”고.
이런 현상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일어날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캐나다에 와서부터 해마다 부활절 아침기도에 촛불을 켜고 성경읽기-기도-묵상-적극적 명상을 통해 성취감을 맛본다. 꼰솔라따 수도원의 스테파노가 보내주는 ‘사순절묵상집’ 으로 재의 수요일부터 예수부활 아침까지 그날의 말씀들을 묵상했다. 지금은 텍사스대학의 큰아들 민동하 장로가 완벽한 LENT 묵상집을 사순절 메시지로 매일 보내주어, 사방에 퍼져 사는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기도한다.
융의 적극적인 명상은 강한 대면이 아닌 경우 ‘어둠’을 겪게 되지만, 이냐시오의 명상은 참회의 단계-조명의 단계(깨달음과 환상의 신비체험)-일치의 단계에 이르며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적극적인 헌신을 한다.
이 두 가지를 가능한대로 도입하여, 영성이 불타는 계절인 부활절 특히 수난절의 기도에 적극 참여시켜본다.
오감(五感)으로 마신다는 우리나라 전통차의 물 끓이는 소리 귀로 듣고, 눈으로 다구를 보며, 입으로 차 맛을, 손으로 찻잔의 감촉을 그리고 코로 향기를 맡듯이, 부활절 새벽 뿐만 아니라 어느 때라도 그리스도의 삶에 동참해서 ‘그의 사건을 보고, 듣고, 느끼고, 깨어 기도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에 알리는’ 사명을 다 하고, 영원히 하느님과 함께 살며 그 안에 기쁨과 자유를 누리는 삶을 위해 기도한다.’
이냐시오의 다음 기도를 생각하면서.
주님, 저를 택하시어 받아주소서.
저의 모든 자유로움, 모든 추억, 모든 지식 그리고 나의 모든 의지를,
내가 가진 모든 것과 부름 받은 나 자신을.
당신은 내게 모든 것을 주신 분,
주님, 당신께 그 모든 것을 돌려드리나이다.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오니, 당신의 뜻대로 써 주소서.
오직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은총만을 내리소서.
이 몸은 그것으로 만족하나이다. (이냐시오의 기도/윤경남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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