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엔 이화문인회 원고를 안 쓰려고 했으나, 원고를 보내기로 마음을 고친 것은 올해 원고의 주제가 ”어머니”라서다.
나를 낳아 길러 주신 육친의 어머니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어머니, 사랑의 원형이며 은총의 샘이신 예수님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 서다.
장로교 신자인 내가 성모님을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은 몇 해 전에 이스라엘 성지와 튀르키예, 에페소에 있는 성모님의 집을 찾고 나서부터다. 내 친어머니를 모르고 살아온 듯한 허망함이 늦게 알게 된 성모님을 더욱 의지하게 된 것 같다.
예수님의 어머니인 성모마리아의 성상 Image표현이 검은 피부의 성모상과 하얀 피부의 성모상으로 전승되어 왔음을 요즘 와서야 알았다. 장로교 신자인 나의 늦깎이 사랑의 대상인 성모님의 유래가 단순치 않음을, 스페인 카탈로냐 한복판에 우뚝 서있는 몽세라 산에서 검은성모님을 보고서야 안 것이다.
우리 부부는 바르셀로나에 들린 다음 그곳에서 동북쪽 30km 거리에 있는 몽세라에 갔다. 몽세라 역에서 전차를 내리면 수도원까지 끌어주는 케이블카를 만난다. 케이블카를 타기 전에 우리는 숨을 돌릴 겸 드높은 몽세라산을 올려다 보았다. 그 순간 “오, 하느님!” 하는 탄성이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마주잡았다. 신기하게 그 산봉우리도 나처럼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시인은 1235m 높이에 온갖 모양을 다하고 솟아있는 이 산봉우리들은 천사들이 내려와 톱질해 놓은 듯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 산을 “기도하는 산 Praying Mountain”이라 부르고 싶었다. 바위산 절벽에 세운 수도원에서 더 높은 곳에 이름마저 붙어있는 봉우리들—미이라 같지만 내게는 그리운 할머니 얼굴, 코끼리, 고양이, 성 살바도르 봉우리 등이 모두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몽세라에서 많은 전설을 안고 주후 718년에 발견된 검은성모상 원형은 산 위의 동굴경당에 보존하고, 12~13세기 사이에 흑단목으로 화려하게 조각한 검은성모의 모형은 지금 이 성당에 있다.
(위에서부터)파리 노트르담성당의 하얀 성모님/몽세라의 검은 성모님 /이스라엘 성모기념성전의 푸른 성모님
검은성모는 구약성서의 아가서에 솔로몬이 연인으로 노래한 술람미 여인의 모습이다. 성서학자인 마이클 두레이시는, 검은성모님이 발견된 기독교초기에 많은 사람들이 아가서Song of Songs를 즐겨 불렀다고 말한다. 이 시에 나오는 아름다운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의 영적인 신부이며 그 여인이 “I am black but beautiful”이라고 노래한 것에 연유해서 검은성모님이 탄생한 것이라고.
그러나 또 다른 학자는 black의 아람어는 sorrowful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연민하는 마리아를 통해 세상의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몽세라 성당에서는 매일 오후 1시에 미사가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소년합창단의 청아한 노랫소리가 몽세라에 울려 퍼진다. 그래선지 평일에 천여 명의 신자와 관광객이 매일 함께 미사를 드린다.
검은 흑단의 성모님은 제단 위 높은 곳에 작은 우주를 손에 쥐고 있는 아들 예수님을 안고 계셨고, 예수님의 십자고상은 제단 중앙에 높이 걸려 있다. 미사 후엔 사람들이 제단 뒤로 줄을 지어 성모님을 만져보며 지나가게 했다. 덕분에 나는 기도하면서 검은성모님의 모습을 가까이서 찍을 수 있는 은총을 입었다.
우리는 일정상 오며 가며 파리에 들렀다. 세에느 강가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에 처음 들어섰을 때는 이 성당의 특이한 구조와 로즈 윈도우에 매료되어 찬양대석 입구 우편에 서 있는 하얀성모님 상의 존재를 잘 몰랐다. 그러나 몽세라의 검은성모님 덕분에 이곳이 톨레도 대성당의 하얀성모님과 더불어 그분의 본산임을 알고, 여행의 마지막 길에 다시 들렸다.
Notre-Dame de Paris 대성당은 13세기에 “우리의 귀부인, 성모마리아” 에게 봉헌한 교회이다. 프랑스 혁명 때 파괴되었다가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많은 사연이 가슴속에 스며드는 듯한 세에느강 옆에 서 있는 현란한 교회의 모습에선 유우고의 “노트르 담의 꼽추”를 실감할 수가 없었다. 그 처절한 종각도 보수 중이어서 밖에선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콰지모도가 매달려 울려 보내던 종 소리는 저녁 미사시간을 알려주었다.
서녘의 해가 붉게 물드는 로즈윈도우의 여명 속에, 하얀성모님은 핑크빛으로 부드럽게 물들어 있었고, 발치엔 흰백합화가 하얀성모님의 일곱 가지 슬픔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사람의 자식을 낳은 어머니 중에 가장 아름다운 어머니”라 불러 주는 이의 도움은 꼭 들어주는 어머니의 원형임을 말해주며.
신비스런 안개 속을 헤치고 다닌 듯 한달 만에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맞은 편 벽에 걸린 푸른성모님 사진이 나를 새삼 놀라게 했다. 그것은 몇 해 전 이스라엘, 나자렛의 성모영보성전에서 내 카메라에 담아온, 푸른옷에 흰백합화 마저 푸르게 빛나는 ‘축복 받은 동산’의 성모님이었다.
검은성모상과 하얀성모상에 가려 잠시 잊었던 푸른성모상의 마리아께 미안한 인사와 여행담을 해드렸다.
사람들이 검은성모님과 하얀성모님께 신실한 마음 보다는 물리적인 의지를 더 지나치게 앞세우는 듯해서 송구스러웠다는 이야기도.
영보성전에서의 성모님의 노래야 말로 ‘노래중의 노래’ Song of Songs가 아닐까요? 이 노래 하나 만으로도 나는 예수님의 어머님을 사랑하는 이유가 충분한걸요. 하면서 다시 일어나 앉아, 몽세라의 검은성모님의 원형인, 푸른성모님이 그곳에서 부르던 순명과 소명의 아름다운 노래를 뜨거운 마음으로 다시 불러 보았다.
“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이제 아기를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 (루가복음서 1:28,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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