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에 미국을 방문 중인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다가 그곳에 있는 동안 한국교회를 나가면서 성경공부반에 참여한 얘기를 들었다. 한국보다 앞서야 할 미국에서의 성경공부는 10년 전쯤의 교재로 틀에 박힌 이론과 목회스타일이더란 것이었다.
이곳 토론토의 종교계 칼럼에도, 북미에서 만든 성경공부 교재를 한국에서 재편성한 것을 역수입해 가르치고 있는 한심한 현상에 대해 쓴 것을 보았다.
크고 작은 이민교회들의 어려움을 보면서,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던 얼마 후 나는 남편 민석홍 장로와 함께 스페인을 두루 여행할 기회가 생겼다. 원래는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있는 스페인 북서부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순례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바르셀로나를 들른 다음 그곳에서 30km 거리에 있는 몽세라Montserrat의 베네딕트 수도원을 먼저 찾아갔다.
몽세라역에서 전차를 내리면 수도원까지 끌어주는 케이블카를 만나게 된다. 케이블카를 타기 전에 우리는 숨을 돌릴 겸 드높은 몽세라산을 올려다 보았다. 그 순간 “오, 하느님!” 하는 탄성이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마주잡았다. 신기하게 그 산봉우리도 나처럼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어떤 시인은 1천 미터가 넘는 이 산꼭대기에 여러 가지 자태로 솟아 있는 이 산봉우리들은 천사가 내려와 톱질해 놓은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 산을 “기도하는 산” Praying Mountain이라 부르고 싶었다. 바위산 절벽에 세운 수도원에서 더 높은 곳에 이름마저 붙어 있는 봉우리들-- 엄마봉우리, 코끼리, 고양이, 성 살바도르 봉우리들이 모두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몽세라에서 많은 전설을 안고 주후 718년에 발견된 ‘검은 성모상’ 원형은 산 위의 동굴경당 Holy Grotto에, 그후 12~13세기 사이에 흑단목으로 화려하게 조각한 검은 성모님의 모형은 지금 이곳 성당에 카탈로니아 지방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검은성모님은 구약성서의 아가서에서 솔로몬이 연인으로 노래한 슐람여인의 모습이다. 성서학자인 Michael Duracy는, 검은성모님이 등장하던 기독교 초기에 많은 사람들이 아가서Song of Songs를 즐겨 불렀다고 말한다. 이 시에 나오는 아름다운 슐람여인은 솔로몬의 영적인 신부이며, 그 여인이 “I am black but beautiful”이라고 노래한 것이 검은성모님의 유래라고 한다.
예수님의 어머니, 사랑의 원형이며 순명과 소명을 받아들인 지혜의 어머니를 늦게 나마 뜨겁게 만난 것은, 몇 해 전에 성지 이스라엘의 성모영보성전과 터키, 에베소에서 성모님의 집을 찾았을 때부터이다.
천주교에서는 성모님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경향이 있어 걱정스럽지만, 우리가 속해 있는 장로교에서는 너무 제쳐 놓는 분위기여서 절름발이 신앙생활을 해온 듯한 느낌이었다.
몽세라 성당엔 매일 오후 1시에 미사가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소년합창단의 청아한 산울림 같은 노랫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선지 평일에 천여 명의 신자와 관광객이 매일 함께 미사를 올린다.
신비스럽게 빛나는 검은 흑단의 성모님은 제단 위 높은 곳에 작은 우주를 손에 쥐고 있는 아들 예수님을 안고 계셨고, 예수님의 십자고상은 제단 중앙에 있었다. 미사 후엔 사람들이 제단 뒤로 줄을 지어 성모님을 만져보며 지나가게 했다. 덕분에 나도 성모님의 아름다운 영보송을 외우며 검은성모님의 프로필을 가까이서 사진에 담을 수 있는 은총을 입었다.
“기도하는 산” 속에 하룻밤이라도 머물며 내 영혼에 그 산이 전해주는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우리는 Manresa에 들를 시간이 없어질세라 급히 산을 내려왔다.
돌아보고 또 올려다보며 마음에 짚이는 것은, 기도 만이 우리들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살 길이란 것이었다. 몽세라의 산봉우리들처럼 하늘을 우러러 간절히 기도하는 교회는 양떼들이 속세에서 천방지축 헤매지도 않을 것이며, 오직 고난의 그리스도를 따르는 영성이 깃든 교회로 이끌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당시 기독교회의 부패는 처참한 암흑기를 겪었으며 동시에 많은 영성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 영성운동의 기치를 들었던 사람 중 하나인 로욜라의 이냐시우스는 이 몽세라 수도원에서 지내다가, 떠나기 전날 밤 1522년 3월25일에 성모님상 앞에서 참회의 지샘을 했다. 그리고 그가 차고 있던 검을 성모님 앞에 바치고, 앞으로는 국가의 군대가 아닌 십자가의 군사가 될 것을 서약했다. 그는 Manresa로 돌아가 성모님으로부터 은사를 받는 환시를 본 다음, 예수회를 창설했다. 그가 만든 ‘영성수련’ Spiritual Exercise는 기도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신앙훈련의 기틀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 이냐시우스 수도원이 있는 곳엔 이 영성수련 프로그램이 들어 있다. 토론토의 성 이냐시우스 수도원에서도 4주간의 이 훈련을 받는 목사님들이 늘어나고 있다.
점점 하느님의 뜻과는 거리가 멀어져 가는 많은 개신교회들이 앞으로 닥칠 마귀의 암흑기에 대비하려면 이러한 ‘영성수련’을 쌓아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더 나아가 내 영혼이 하느님과 합일하는 관상 기도의 경지를 맛보게 될 때, 양떼를 인도하는 섭리와 방법은 절로 해결되리라. 하느님이 원하시는 예배와 하느님 사랑, 그리고 이웃사랑을 펴나가는 새로운 길이 열릴 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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