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루가노 펜대회 참관기
(지난 호에 이어)
철학자일 뿐만 아니라 시인이며 음악가였던 니체가 ‘광기의 파도’속에서도 ‘아름다운 곤돌라의 뱃노래’를 그의 에필로그로 불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를 다시 한번 평가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대만 대표 마리아가, 내가 밀라노 성당의 촛불 앞에서 기도한 이야기를 듣고, 내게 ‘Lucia!’라고 불러주었는데, 누군가 버스 안에서 허밍으로 부르는 ‘Santa Lucia!’ 노래 가락에 니체의 집에서 얻은 그의 뱃노래를 실어서 불러보았다. 그동안 버스는 우리를 산 모릿츠 호텔에 내려주었고.
“어느날 갈색의 밤
나는 다리 곁에 서 있었네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 오는 노래
황금빛 물방울
넘실거리는 바다 위로 솟아올랐네
곤돌라, 등잔불, 음악--
취한 채 어슴프레 황혼속으로 헤엄쳐 사라져 갔네…
나의 영혼, 하나의 현악 연주
은은히 감동하여
은밀히 곤돌라의 뱃노래를 불렀네
현란한 행복에 겨운 내 노래
그 누가 들었으리?” Santa Lucia!
대회 때 들은 많은 강연 중에 James Joyce의 변경문학을 가장 관심 깊게 들었는데, 그 연사 중의 한 분인 은발의 Wittlin 영국대표 부부가 나와 같은 버스에 탄 것을 보고 나는 감격할 정도로 기뻤다. Wittlin씨는 나만 보면 Korean fan(태극선)은 어떻게 했느냐고 묻기에, 드릴까요? 했더니, 그게 아니고 부채가 예뻐서 그랬던 것이라며 웃었다. 사실은 헝가리 대표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터라, 사진을 찍은 다음 감추어두었으므로, 달라고 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는 내년에 한국에 꼭 오겠다고 했으므로 그때 더 좋은 부채를 선물 하리라.
그는 버스 안에서 망명작가였던 James Joyce의 작품에 흐르는 <Stream of Consciousness>와 변경문제를 안고 있던 그의 작품에 대한 구스타브 융의 분석을 다시 설명해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에, 내가 좋아하는 심리학자인 융이 경계선 문제를 지적했다는 것에 더욱 마음이 끌렸다.
Wittlin은 J.J.의 작품 중에 잘 알려진 <Dubliners>를 들어서 강연 했었다. 이 작품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온갖 부패와 침체된 모습을 한 인물의 성장과정을 통해 폭로한 작품이라는 이유로, 런던출판사와 출판계약 후 11년 만에야 빛을 본 소설이다. 다분히 윤리적, 정치적 경계선의 문제로 희생될뻔한 작품이다.
현대 작가들도 도덕적 정치적 사회현실을 고발하려고 할 때, 보이지 않는 경계선 정도가 아니라 심지어는 감옥이라는 구체적인 울타리 속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하루의 긴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산모릿츠의 여러 호텔로 나뉘어 짐을 풀었다. 스키장으로 세계적인 이름이 높은 산 모릿츠! 엔가디네 계곡 속에 그리고 산 모릿츠 호숫가에 자리잡고 앉아 모든 손님을 편안하게 해주며, 모든 요청을 즉시 들어준다는 팻말이 적힌 슈바이쳐호프 호텔에 들어섰으나 그들이 나의 요청을 들어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음날 새벽, 나는 카메라를 들고 호숫가를 다시 걸어보았다. 실속 없이 지껄이는 인간들을 비웃는 듯이, 내 머리 위를 날며 속삭이는 산새들의 맑은 메아리만이 이제 겨우 가라앉은 호수의 차가운 수면을 조금씩 흔들어 놓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짐을 챙겨 들고 버스에 올랐다. 천 미터 고지의 Telegio골짜기와 험한 아프리카 골짜기를 굽이도는 사이로 보이는 Castello 교회는 마치 성탄절 카드에 나오는 그림처럼 푸른빛을 내며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Teleglio에서 차를 내려 고대교회와 Besta궁(지금은 Villa)에 들어가 15세기의 벽화가 가득차 있는 마당을 둘러보았다. 웅장한 이 베스다궁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역시 자연의 세계였다.
버스 창 밖으로 베스타궁을 지키는 깔끔하게 생긴 노부인과 우리의 인도자가 다정한 이별의 키스를 나누는 것을 우리는 미소 지으며 바라보고, 버스는 이제 마지막 코스인 Charlotta Villa를 향해 달렸다.
코모 호수 서편 해안 높은 언덕 위에 자리잡은Charlotta 별장은 그 위치부터 완벽하다. 앞엔 <코모의 진주>라는 아름다운 Bellagio 마을이 펼쳐 있고, 멀리 옛 알프스 자리, 롬바르도 꼭대기에 백운석 대리석이 절로 생성되는 Grignas산이 한 눈에 보인다. 별장 둘레는 돌로 쌓아 올리는 대신 두터운 숲-호두와 올리브 열매가 열리는-으로 울타리를 만들었다.
이 별장은, 원래 Via Regia라는 좁고 긴 오솔길 밖에 없던 Ca-de-Nabbia 여관으로 사냥꾼과 낙시꾼의 휴식처였고, 1843년에 알베르또의 러시아 왕비가 낫소의 마리안느 공주에게, 공주는 그의 딸 샬롯데가 색스 마이닝건의 왕자와 결혼할 때 별장을 다시 지어 선물로 넘겨준 이래로 샬롯데 별장이 된 것이다.
Sommarivas시대에 가장 성시를 이룬 이곳의 멋진 연회에 초대받고, 감사하는 뜻으로 들고 온 미술품들이 지금의 박물관을 보존해준 것이다.
정원에 있는 Cherci 시대 모양을 낸 분수에서 집안으로 들어오는 지그재그 형의 난간 달린 높은 층계는 특이한 인상을 준다. 검푸른 숲 속의 나무들은 미이라 모양의 콜크나무, 상록수, 바나나, 쟈스민티 나무, 레몬 등이 주렁주렁 열려 있는데 과수만도 오백 여종이란다. 무엇보다 숲 사이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철쭉꽃들이 마치 우리나라 지리산의 철쭉제에 온 듯 반가운데, 이 철쭉도 150년 종이라니 놀랍다.
1927년엔 결국 식물학자들과 예술가들의 연구대상이 되어 <Via Charlotta 재단>이 생기고, 이 재단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마음을 살찌게 하고, 식물학자들의 마음까지 살찌게 해 주었다.” 예술과 퐁요가 함께 숨쉬는 게 한 눈에 보였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먼저 벽화같이 큰 캔바스에 Francesco Hayez의 유화가 보인다. 이 <자일에서 풀려난 승리자 Pisani>를 그린 Hayez는 영국인으로 원래 코레타 아카데미 교수였는데, 이탈리아 화풍에 반해서 자신의 화풍을 바꾸고 아예 이탈리아에 영주하면서 그림을 그린 화가로 현대까지 유명하다. 포옹하고 있는 <Romeo & Julyet>, <책을 읽고 있는 누드의 여인>등 그의 다른 그림도 로맨틱한 이 별장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끈 것은 <Eros & Psyche>라는 제목이 붙은 흰 대리석 조각이다. 작품의 예술성보다도 제목이 주는 해석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 제목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Eros & Psyche>에서 펼쳐 보인 미학의 개념, 그리고 융의 <숲의 영혼론>을 생각나게 했다.
환상적인 스위스의 산들과 예술의 나라 이탈리아를 감명깊게 돌아보며, 내년에 우리나라에서 열릴 세계 P.E.N.대회 때 우리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궁리하며 루카노로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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