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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드디어 친구 민희가 왔다. 서울에서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서 왔다. 우리는 거의 40년이 넘는 오래된 친구 사이다. 내가 늘 한국 들어가면 가장 많이 만나고, 맛있는 거 사주고 하는 친구이다 그런데 그 긴 해외 생활 20년 동안 한 번도 반대로 나를 방문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온 것이다.
그녀는 나의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한 달 정도 우등반 학생들만 뽑아서 학교에서 합숙했었다. 민희는 이과였고, 나는 문과였다. 그때 처음 본 그녀의 인상은 귀밑 1센티미터 찰랑거리는 단발머리에 조금 마른 체형에 예민해 보였다. 우린 그저 그렇게 스치는 인연인 줄 알았다. 서울로 대학을 오면서 지원한 학교 기숙사는 떨어지고 어찌해야 하는지 걱정하면서 학교 앞 교문을 내려 오고 있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낯익은 얼굴이 걸어오고 있었다. 민희였다. 그녀도 기숙사가 안 되어서 실망한 채로 걸어오고 있었다. 우린 서로 반가운 인사를 하면서 상황이 비슷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대학 1학년을 학교 앞 하숙집에서 같이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세월이 흘러 남편보다도 더 오랜 친구가 되었다.
어느날 우린 청량리에 있는 야학을 같이 갔다. 그 시절엔 대학생들이 야학에 가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날 나는 마침 야학에서 곧바로 북한산 야영을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그 말을 미처 하지 못하고 산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산에서 돌아온 하숙집에서 민희는 싸늘한 냉기를 품은 채 나에게 화를 냈다. 어찌했든 내가 말 못 하고 가버린 것은 내 잘못이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였다. 이일로 우리의 우정이 더 끈끈해진 계기가 되었던 것같다. 우리의 젊은 날, 청운의 꿈을 품고서 온 대학 4년의 청춘 시절 내내 내 옆에는 친구 민희가 있었다. 청춘 시절의 연애사도 속속들이 나누면서 우리의 시절을 함께 보냈다.
나는 사학과였고 그녀는 약대를 다녔다. 80년에 5.18로 무고한 시민을 총칼로 죽이고 권력을 잡은 서슬퍼런 신군부 시절이었다. 나는 아무런 행동도 안했는데 그저 광주출신이라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었다. 그래서 지도교수의 견제와 서대문 경찰서 여경이었던 친구 언니의 경고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그시절 암울하고 답답한 세상으로 벗어나고파 산으로 갔다. 주말엔 북한산에서 암벽등반을 하고 여름엔 지리산, 치악산 오대산등 우리 산하를 두루두루 훓고 다녔다. 겨울 설악산 10박 11일의 장기 산행에선 빙벽 클라이밍과 릿지등반을 하였다. 그 시절 자연만이 내 삶의 도피처이었고 구원이었다. 나는 그 때부터 내내 등산으로 답사 여행으로 여기 저기를 많이 다녔다. 역마살은 나에게 이름표였고, 그녀는 졸업후 제약회사에 들어가서 착실한 직장인으로 늘 한곳에 머물면서 살았다. 둘째 딸이지만 의대 다니는 남동생과 미대 다니는 동생들을 데리고 살았다. 그사이 나는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결혼하였다. 그녀도 2년 뒤 결혼하였다. 우리의 청춘 시절도 그렇게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 삶에 가족이 생기고 자식들이 태어나면서 우리의 화두는 아이들에게로 옮겨갔다. 이후로 나는 남편 따라 미국으로, 한국으로, 캐나다로, 그러다가 영국으로, 다시 캐나다로 왔다 갔다 많이도 했다.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가는 사이, 그녀는 서울 잠실 한곳에서 거의 30년 가까이 살고 있다. 우린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나에게 영원한 소울 메이트이다. 인디언 격언 중에 “친구는 내 슬픔을 대신 자기 등에 짊어지고 가는 자”라고 한다. 그 말은 민희와 나에게 딱 맞는 말이다. 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검사가 끝나고 지쳐있는 나를 태우고 자기 집으로 가서 쉬게 하고 그 사이 죽을 쒀 주었다 그리고 병원에 있을 때는 반찬을 해다 주면서 나를 보살폈다. 그녀는 언니처럼 나를 챙기고 보살폈다. 글쎄 전생의 우리는 뭔가 깊은 인연이 있었나 보다.
이번에 나에게 오기 전 캐나다 동부 패키지 투어를 한 그녀를 공항 근처 호텔로 픽업하러갔다. 드디어 내가 사는 이 곳에서 친구를 만나니 감개무량하였다. 늘 내가 서울 들어가던 모습이 바뀌었으니까. 나는 그녀를 얼싸안았다. 이런 날도 있구나. 마음이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늘 받기만 해서 미안했는데, 온 첫날 몇 가지 음식과 케이크에 6개의 큰 초에 불을 붙이고 지금까지 60년 동안 잘 살아왔다고 서로 축하하였다. 세월이 흘러 맥주 한잔에도 취하니, 기분 탓인가. 그녀는 까다로운 남편과 아들들을 인내로, 푸근한 엄마의 마음으로 잘 품고 살고 있다. 친구는 참 얌전하고 속이 깊고 따듯한 사람이다. 꿈같이 시간은 흘러간다
4박 5일의 짧은 시간동안, 우리는 또 한번 잊지 못할 추억을 토론토에서 만들었다. 다음날 벌써 가는 날이어서 공항에 배웅을 나갔다. 게이트로 들어가는 친구를 불러세우고 사진을 한 장 찍는다. 민희에게 손 하트를 날리며, 말했다.”민희야, 사랑한다.” 우리 둘 다 다음 세 번째 인생의 장을 잘 열고 건강하게 앞으로 30년 잘 지내자”. 공자가 쓴 논어 첫 편에 나오는 글이다.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遠方來)하니 불역락호(不亦樂乎)아!” 대학원 시절 한문 공부 하면서 수십번 봤던 구절이다. 내 인생에도 그런 날이 왔다. “멀리서 벗이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앞으로 우린 얼마나 더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친구야!! 우리 건강하게 남은 시간 잘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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