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허정희/문협회원

 

 

한여름이라 도시락을 김밥 대신 초밥으로 바꾸었다. 여름의 열기가 도시락을 뚫고 들어와 도시락 속에 담긴 음식을 변하게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열기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아 식초를 많이 넣어 초밥을 준비했다. 아침부터 들뜬 93세 시아버님의 시내 여행 날이다. 도시락을 준비하면서 나의 어린 시절 소풍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스테인리스 도시락이 시장에 나왔다. 그때만 해도 양은으로 만든 도시락이 대부분이었고, 양은 도시락은 조금만 부딪혀도 울퉁불퉁해지고, 뚜껑이 꼭 닫히지 않아 가방 속에 수많은 자국을 남겼다. 자국은 냄새와 함께 기억 속에 남았고, 가방을 열 때마다 나를 얼룩 추억 속으로 데리고 갔다. 
아버지는 9남매를 두셨음에도 스테인리스 도시락을 하나만 사 오셨다. 그것은 당연히 큰언니 것이었다. 4남 5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난 나는 위로는 오빠 둘, 언니가 있었고, 밑으로는 여동생 셋, 남동생 둘이었다. 아버지 머리카락까지 닮은 언니는 나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언니를 따라 하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새 옷과 새 가방은 언니 것이었다. 둘째 딸인 나는 언니의 쓰던 가방과 옷을 물려받았고, 내가 쓴 것은 여동생에게까지 가기도 전에 닳아버려 동생에게는 늘 새 것을 사주었다. 그럴 때마다 둘째인 것이 속상했고, 한 살 어린 여동생이 얄미웠다. 자라면서 언니의 새것에 대해 부러움과 궁금함은 하늘의 뭉게구름처럼 쌓여갔다. 군인 출신인 아버지는 서열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아버지의 목소리는 집안 누구도 거스를 수 없도록 크게 들렸다. 
9남매 중 넷째인 나의 관심은 늘 밖으로 향했고, 동네길 골목에서 온종일 지냈다. 아침에 나가 해 질 녘에 돌아와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우리들의 아침 시간은 전쟁 같았고, 각자 알아서 챙기지 않으면 자신만 손해였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도시락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도시락을 가방에 넣을 때마다 언니의 스테인리스 도시락에 점심을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하는 부러움에 내 양은 도시락이 점점 쭈그려져 갔다. 
6학년 소풍이었다. 전날 밤부터 설레는 마음을 참느라 어둠을 끌어안고 뒹굴다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고, 소풍 가방을 열었다 닫기를 수십 번도 더 했다. 아침을 먹으며 나의 눈길은 자꾸 김밥으로 향했고, 쌓아 올린 김밥이 부푼 내 마음보다 크게 쌓여갔다. 6학년 소풍은 먼 곳으로 떠났고, 햇볕이 내리쬐는 지루한 길은 부풀었던 설렘을 녹여버렸다. 기다리던 점심시간이었다. 가방 속에 담긴 도시락을 잡는 순간 묵직함을 느꼈고, 꺼내 보니 그토록 바라던 스테인리스 도시락에 김밥이 줄을 지어 쌓여 있었다. 김밥보다 더 예쁜 스테인리스 도시락이 햇볕에 반사되어 찡하고 번뜩이며 눈을 가렸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밥이 담긴 도시락이 반짝반짝 빛났다. 김밥 속 동그란 밥 알갱이가 웃고 있는 엄마 얼굴을 닮아있었다. 
이민 와서 아이들의 소풍 날이면 김밥을 싸주었고, 흰쌀밥을 주걱으로 휘저어 섞을 때마다 엄마 얼굴이 생각나 다칠까 봐 살살 뒤집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장기 자랑 시간이 되었고, 친구들의 노래에 들뜬 내 마음이 숲속을 채웠고, 흥분된 도시락이 춤을 추었다. 친구들의 환호성에 나는 하늘 끝까지 날아올랐다.

 

집으로 돌아와 소풍 가방에 손을 넣으니 빈 가방이었다. 순간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고, 혼날지 두려워 저녁이 오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기도는 기도일 뿐 나는 아버지가 계신 안방으로 가야 했고, 꾹 닫힌 아버지의 입술은 숨 막힐 것 같은 정적으로 방 안 가득 채웠다. 정적 사이로 밀려오는 서러움이 눈물로 터져 나와, 잃어버린 스테인리스 도시락에 떨어졌다. 울음은 서열에 대한 반항이었고, 남은 형제들을 대신해서 아버지 앞에서 더 크게 소리를 내어 울었다.
울음소리는 잃어버린 도시락보다 더 단단했고, 한참 동안 그 방에 앉아 있었다. 그날 밤 울고 있는 나에게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시아버님이 시내 여행에서 돌아왔다. 점심시간에 준비해 간 음식을 테이블에 올려놓았지만, 생소한 초밥에 눈길도 주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섭섭함을 느낀 시아버님은 식사도 거른 채 도시락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 서로 나눌 수 없는 이질감이 더운 여름의 열기와 뒤섞여 주름진 얼굴 위로 흘러내렸다. 식탁 위에 돌아앉은 초밥을 보면서 열기에도 변하지 말라고 듬뿍 뿌린 식초가 원망스러웠다. 변해야 어울릴 수 있고, 어울릴 수 있어야 적응이 되는 것을. 
다시는 여행 가지 않겠다는 시아버님을 달래며, 어릴 적 친정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날 밤 친정아버지는 왜 아무 말 없이 그 방에 앉아 있었는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었던 그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신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무언의 침묵이 사랑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나무의 중심을 잡기 위해 포기한 것들, 그리고 혼자서 버티어 낸 외로움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어 온다. 소리를 내 말하지 않아도 전해오는 친정아버지의 진한 사랑을 더듬는다. 복받쳐 오르는 그리움을 참지 못해 큰 소리로 울어본다. 먼 길로 소풍 떠난 그들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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