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순(한카문화예술원 대표)
生死路隱(생사로진) 삶과 죽음의 길은 따로 있어
去此彼方(거차피방) 여기서 저기로 가는 것이로다
가을에는 문득 월명사의 <제망매가>의 싯구가 떠 오릅니다. 이별을 생각하기에 더욱 적절한 11월의 초입에서, 낙하하는 낙엽을 보며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하듯, 김대억 목사님의 비보를 듣게 참으로 허망하였습니다.
이민자로서 목사님께서 남기신 발자취는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무형의 자산이 되었습니다. 목회 중에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으셔서 맥마스트 대학원에서 신학박사 수료까지 하셨습니다. 법정통역관으로서 목도한 교민사회의 어두운 이야기들, 목회자로서의 성서 속의 여인들 등을 집필하시고, 문학인으로서, 종교인으로서 시민사회 운동가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여러 권의 옥저를 남기셨습니다.
목사님과의 인연은 90년대 저의 이민 초기, 백지문학회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문학회 회장이었던 저는 <캐나다 교민 자녀들의 교육 이야기> 교민들의 원고를 모아야 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저의 원고 청탁 전화에 두말없이 기꺼이 기고해 주셔서 이민생활에서 자녀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지요. 문인으로서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독도사랑협의회>를 함께 결성해, 독도가 우리 땅임을 문학으로 알리는데 앞장서 주셨습니다.
목사님의 유창한 영어 실력은 오랜 세월 법정통역관으로 활동하시며, 한인 사회의 그늘진 구석구석을 보듬고 소외된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한인 사회가 안고 있던 수많은 이야기와 아픔을 목사님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기꺼이 당신의 손길을 내 밀어 주셨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우리들의 후세들에게 들려줄 우리들의 역사,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애국지사들의 이야기를 <애국지사기념사업회>를 통해 출판해 오셨습니다. 이 발걸음은 우리 한인 사회가 조국과의 연결을 끊지 않고 지키는 소중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수 많은 봉사를 하셨던 목사님께서는 당연히 한인 사회에서 존경 받으셔야 하고 한인사회에 어른으로서 가만히 계셔도 될 위치이셨지만 ‘애국지사기념사업회’ 고충을 털어 놓으실 땐, 마음 한 켠이 늘 숙연해지며 송구스러웠습니다. 지난해 애국지사기념사업회 이사님들과 함께 대통령 훈장 추서를 위해 노력했으나, 안타깝게도 목사님의 이름은 찾을 수 없어 많이 속상했습니다. 대신 훈장보다 더 훈훈한 저희들 마음을 담은 노란 국화를 영전에 놓겠습니다. 목사님의 한인 사회와 조국을 향한 사랑의 흔적의 발자취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국화향기처럼 은은하게 퍼질 것입니다.
목사님,
이제 버거운 일들 모두 손에 놓으시고 돌아보시지 마시고 길 떠나십시오. 혹여 천상에서 애국지사들과 만나 유쾌한 농도 나누시구요. 그동안 이 땅에서 수고 많으셨고 정말 감사합니다.
뜻밖의 슬픔에 잠겨 계실 유족분들께도 위로의 말씀 드립니다.
부디 영면하시고 편안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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