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른이 되었을 때 출간된 시집이 있다, 그 제목도 인상적인 <서른, 잔치는 끝났다>이다.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강렬한 시가 수록되 있었다. 청춘이 끝나고 삶의 무게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전환기에 그 강렬한 시어는 나를 압도했다. 그리고 이듬해에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가 발표되었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점점 더 멀어져 간다’는 노랫말이 서른 즈음의 내 가슴을 저리게 했다. 잔치가 끝났다는 최영미 시인의 시 구절처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가 정말 많이 살았다고 생각했던 서른이 지나고 나서, 이제 다시 꼬박 30년이 더 지났다.
평균 수명이 길어져 환갑을 특별한 생일이라 하는 것이 어색한 요즘이다. 늙어가는 것을 거부하는 느낌으로 나는 환갑을 특별하지 않은 나이로 대하고 싶어 한다. 그 특별해지고 싶지 않은 생일날, 나는 서른 살에 읽었던 시를 다시 꺼내 읽었다. 그리고 살아오면서 지은 나의 잘못과 어리석음을 하나하나 꺼내 널어 보았다. 널린 채 그대로인 빨래처럼 나를 바라보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엉긴 걸 모두 풀고 헹궈서 마침내 텅 빈 나를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마침 2주 넘게 출장이 이어져 주말에만 집에 오고 많은 시간 혼자 지내며 생각을 이어갈 수 있었다. 고독한 시간이지만, 지나온 나의 육십 년을 반추하는 기회였다. 기억을 돌아보니 살아오는 동안 즐겁고 달콤한 추억도 있었고 후회할 일도 많았다. 인생의 여러 나날을 낭비한 걸 떠올리면서 특히, 무심한 마음으로 서운하게 대한 내 가족과 친구들에게 마음 깊이 사과하고 싶어졌다. 내가 의도했든 아니든 그 상처가 나로 인해 비롯하였음을 인식하는 것이 나의 모자람에 대한 반성이라 생각된다. 지나온 나의 불찰은 덮어둘 것도 아니고 가위눌릴 일도 아니리라. 그로부터 배우고, 배운 바를 나의 나머지 삶에 반영해야겠다.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하면 역사도 무의미한 것처럼, 개인사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돌이키지 못할 과거를 후회하고 낙담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이를 반복하지 않는 것일 거다.
자존감을 지키면서도 상대를 받아들이고 배려하는 지혜가 무엇일까 자문하다 보니, 생각은 '다른 사람이 해주었으면 하는 행위를 하라'라는 황금률(Golden Rule)에 이르렀다. 예수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 했고, 공자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라"고 하니, 이는 내가 거부할 수 없는 가르침이요, 윤리기준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신약성경 고린도전서에서는 믿음, 소망, 사랑을 이야기하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한다. 하지만 내가 신의를 지켜주지 못한 가족과 친구를 생각하며, 나는 가장 우선하는 덕목으로 믿음을 꼽아본다. 모든 이에게 인자한 큰 사람은 사랑의 포용력으로 믿음과 소망을 펼칠 수 있겠지만, 보통사람인 나는 믿음에서 출발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것만이라도 지켜야 할 것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지만 모든 인연을 무게 있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렇게 하려 해서도 안될 것이다. 그러나 일단 믿음으로 맺은 관계는 의리로 지켜야 할 것이다. 범위가 좁더라도 그것이 사랑으로 피어나고 소망으로 이어질 때까지 단단하게 친구와 가족을 지켜야겠다. 지향하고 나아가는 길목에서 나의 기대와 우려, 후회와 불안을 남김없이 다 씻어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래도 남는 미련이 있거든 헤지도록 두들겨 씻어 맑고 깨끗한 빨래처럼 나를 펼쳐놓고,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나의 존재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싶다.
기다려주지 않기에 시간은 잔인한 것이라 한다. 태어나서 60년이 지났고, 이제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새해를 맞이할지는 모를 일이다. 얼마를 더 살든 나는 이제, 내가 절망하는가 참회하는가를 바라보는 나의 관찰자가 되고자 한다.
육십을 막 지나는 '나'를 이제 나는 '너'라 부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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