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협회원)
오랜 세월 근시로 살아오다 최근 양쪽 백내장 수술을 받고 난 뒤 원시가 되었다. 맨눈으로 먼 거리를 볼 수 있어 편해지긴 했으나 근시에 익숙해진 삶이 하루 아침에 달라지니 불편한 점이 더 많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책 읽기, 글쓰기, 스마트폰 사용에 제동이 걸렸다. 안경을 벗고 편하게 하던 일이었는데 돋보기를 쓰지 않고는 할 수 없게 되어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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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왼쪽 눈 수술을 마치고 오른쪽 눈 수술을 기다리는 3개월 사이, 양쪽 눈을 번갈아 감고 뜨면서 바라본 사물마다 색상이 달라 보였다. 오른쪽 눈은 기존에 익숙한 색상 그대로였던 반면, 수술 받은 왼쪽 눈에 비친 사물은 형광색이 더 강렬했다. 밤이 되면 이런 현상은 크게 두드러졌다. 거실 벽에 걸린 실내등의 왼쪽과 오른쪽 색상마저 확연히 달라 보였다. 둘 다 같은 전구를 썼음에도 한쪽은 노란빛, 다른 쪽은 하얀 빛으로 내 눈에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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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양쪽 눈 수술을 마치고서도 감지되었다. 새로 맞춘 안경을 흰색 커피 탁자에 올려뒀는데, 렌즈가 투명하지 않고 연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처음에는 안경점에서 일부러 색깔을 넣은 거라 여겼으나 남편의 눈에는 완전히 투명하게 보인다고 하였다. 아들네와 캠핑장에 갔을 때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호수 주변 산책을 마치고 물휴지로 이마에 흐른 땀을 닦다가 땀 자국이 유난히 누렇게 묻어 나와 의아했다. 아들에게 보여주었더니 자기 눈에는 누런 색깔이 보이지 않는다고 갸우뚱했다. 내 눈에 생긴 색상의 변화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색상의 세계로 진입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두 눈을 새 수정체로 교체했으니 다르리라고 짐작은 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색깔까지 보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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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그림 그리는 화가라면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익숙했던 색과 작별하고 새로운 색과 조우해야 하는 일은 화가에게 매우 민감한 요소일 터이다. 유명한 인상파 화가인 반 고흐가 백내장 수술을 하고 난 뒤 그림을 그렸다면, 그가 표현한 색상은 얼마나 달라졌을지 궁금하다. 내가 좋아하는 ‘삼나무가 있는 길’의 꿈틀거리는 초록색과 ‘별이 빛나는 밤’의 현란한 푸른색은 오늘날 내 눈에 익숙한 색과 분명 같지 않으리라.
그랬다면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듯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마구 난도질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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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인터넷상에 두가지 색으로 배열된 가로줄 무늬 드레스 하나를 올려두고 우리 눈에 어떤 색으로 보이는지 알아보는 설문조사가 있었다. 이는 예상외로 논란이 되어 큰 파장을 일으켰다. 드레스 색상이 파란색-검은색인지 흰색-금색인지 조사하는 질문에 70% 이상이 흰색-금색이라고 대답했다. 놀랍게도 실제 드레스 색상은 파란색-검은색이었다. 우리 가족 중에도 나와 아들은 흰색-금색파, 남편과 며느리는 파란색-검은색파로 반반씩 갈렸었다. 전문가들은 햇빛에 익숙하도록 진화한 우리 뇌, 망막의 기관, 방의 밝기와 모니터에서 들어오는 빛의 각도, 시간이 지나며 쌓인 빛 경험 등이 색상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고 했다. 따라서 색을 인지하는 기능이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정확하게 색상을 맞춘 사람이 20% 남짓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나에겐 다소 충격적이었다.
정답을 공개하지 않았다면 내가 속한 다수의 그룹은 흰색-금색이 맞는다고 확신하며 소수파를 가련하게 바라봤을 수도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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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익숙한 사고를 바꾼다는 것은 생각만큼 순조롭지 않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때론 진리가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수가 맞는다고 주장할 때 ‘참’이 아니라고 부정할 용기를 가진 사람은 별로 없다. 눈에 보이는 현상에도 오류가 있어 불확실한데 하물며 보이지 않는 사안에 대해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 증명하려 하는 일은 미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번 굳어진 이념과 신념은 한 개인에게 고정관념처럼 바뀌기 힘든지도 모른다. 고정관념으로 내 생애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것 또한 셀 수 없이 많으리라. 불변하는 진리를 붙들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인지 인간의 보편적인 마음인지 알 수 없으나, 내 짧은 삶 속에서 많은 것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걸 느낀다. 내가 움켜쥐고 있던 것이 때로는 실체가 아니고 허상이라는 걸 깨닫는 일은 내가 달라지는 지점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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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는 기존의 생활방식과 다르게 사물을 바라보고 색상을 보게 된다. 다르게 본다는 것. 기존의 나의 시선과도 다르고 누군가와도 다르게 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은 잠시 나를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시간 속에 빠져들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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