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이민자

홍성철(문협회원)

 

막내 아이가 열 살 때 이렇게 물었다. "나 한국 사람이에요, 캐나다 사람이에요?" 캠프에서 캐네디언 아이들이 다 함께 부르는 노래를 자기는 전혀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다고 한국 노래를 따로 아는 것도 아니니,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이 들었나 보다. 나는 어떻게 답해줘야 할지 몰라 곤혹스러웠다. 그냥, 한국에서 온 캐나다 사람이라고 대답하니, 시원한 말이 아니라는 아이의 표정이 역력했다. 서랍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찍힌 여권을 찾아, 어릴 적 자기 사진과 캐나다 이민국 스탬프를 한참 들여다보던 막내 모습이 마음에 남는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이르자, 자기가 어느 나라 사람인가 혼란스러운 것에 대한 불만이 더 커져갔다. 그 사이에 가족 모두 캐나다 시민권을 취득했고, 아이들은 점점 한국적인 것을 멀리했다. 자기 상황에 대한 일종의 반감으로 한국식 유행을 따르지 않고, 한국 친구와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다. 가정에서의 대화가 부모는 한국말, 아이들은 영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도 모르는 캐나다의 세세한 관습을 알려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국말만 사용하라고 요구하기도 어려웠다. 다행히도 이는 대학에 가면서 완화되었다. 대학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국 학생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고, 수업과 과제를 수행하면서 많은 시간을 그 한국 학우들과 보내며, 정체성에 대한 반감이 많이 풀어졌다. 아이들이 겪는 마음의 방황을 보며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몰라 오랫동안 안타까웠다. 지나온 과정은 그야말로 질풍노도였다.

 

연변의 조선족 어느 분이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우리는 짜장면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중국 음식이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한국 거라고 합니다."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하는 심정을 토로한 것이리라. 대여섯 살에 한국을 떠나 캐나다로 이민 온 두 아이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소외감을 느껴 보았다. 뿌리를 옮긴 나무가 추운 겨울을 넘기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서른이 넘어 자기 앞가림을 해나가는 모습을 보니 두 아이가 지금은 한국 출신 캐나다인 임을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캐나다로 데려와 줘서 고맙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국 학생들이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에 머물고 입시, 취업 경쟁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춘기의 불안감과 방황은 단지 국적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내가 겪었던 사춘기도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싸우던 광폭한 시기였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틴에이저가 겪는 많은 혼란스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데 더해 한국과 캐나다 사이의 소속감 문제가 얹혔을 것이다.

 

한국인인가, 캐나다인인가라는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는 자기가 자기다움을 스스로 세우는데 달린 것 같다. 한 인격체로서 자기다움을 찾고 자존감을 형성해 나가면 국적은 단지 서류상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다. 이민 1.5세, 2세가 겪는 국적 정체성에 대한 문제는 결국 자존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주변인으로만 머문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지만, 사람이 누구의 편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민 세대 간의 갈등이나 정체성 혼란에 대한 고민이 쉬운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문제의 전부가 아니라 하나이다. 어차피 살아가는 것은 완성이라기보다는 연습 같은 하루하루가 아닌가. 나도 성인이 되고 나이가 더 들어도 새로 마주하는 현실을 더듬더듬 알아가며 살아가는 것 같다. 우리말 '아름답다'에서 '아름'은 '나'를 가리킨다고 한다. 나의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소망한다.

 

나무를 옮겨 심으면 잔뿌리가 잘려서 겨울에 동해(冬害)를 입기 쉽다고 한다. 이민을 통해 삶의 터전을 옮기고 새로운 세계를 체감하자면, 잔뿌리뿐 아니라 굵은 가닥도 숭덩 잘린 느낌이 든다.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나는 다만 어려움을 헤쳐 나오는 경험이 아이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기를 빌었다. 겨울을 넘긴 단풍나무에서 고로쇠처럼 수액을 받아 천천히 끓이면 설탕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은은하고 품격 있는 단맛이 나온다. 메이플시럽은 겨울을 견딘 나무가 주는 선물이다.

옮겨 심은 나무가 눈보라에도 우뚝 서서, 자기가 내린 뿌리로 이 땅을 움켜쥐는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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