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7년에 황제로 즉위한 아우구스투스 이후 약 200여 년 동안 로마 제국은 기나긴 평화를 구가하며 태평성대를 이루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팍스 로마나 시대”인 것이지요.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운다고 3세기에는 군인들이 서로 황제로 칭하며 각지에서 반기를 들어 “로마 판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여 불안정한 정국이 한참 이어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민중들에게 흥미거리를 제공하며 여론을 다른 데로 돌리는 방법으로 기독교인들을 혹독하게 탄압하며 4명의 황제로 나누어 통치하던 중 여차여차하여 밀라노와 로마에 한 명씩, 황제가 두명으로 줄어 들었을 때였습니다.
대략 309년까지 지속되었던 "대 박해시대"를 지낸 후, 313년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와 밀라노에 있는 황제 리키니우스는 “밀라노 칙령”으로 완전히 기독교 박해를 끝낸 후, 콘스탄티누스 1세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중심으로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비잔티움으로 로마의 수도를 옮기며 동로마제국을 키워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로마로 입성하기 바로 전날 밤, 꿈에 본 십자가 문양을 병사들의 방패에 그려 넣게 하며 벌린 최후의 혈전에서 승리하여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 1세이고 보니 콘스탄티노플로 이름이 바뀐 비잔티움으로 기독교인들이 많이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1세의 후계자인 콘스탄티누스 2세에 의해서 “아야 소피아”는 360년 2월 15일에 처음으로 착공되었습니다.
첫 번째 세운 교회는 지붕이 목조로 된 바실리카(Basilica) 양식의 건물로 AD 404년에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그 후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명령으로 역시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유스티니안 황제 때인 532년에 히포드롬에서 마차 경기 도중 일어난 니카 반란에 의해 다시 파괴되었습니다.
유스티니안 황제는 같은 해에 성 소피아의 재건축을 시작하며, 기술자만도 100여명에 노동자는 만 명이 넘게 투입하며, 가장 최고의 교회를 짓기 위하여
아주 귀중한 건축 자재를 제국의 여러 지역에서 운반해 오며 5년 10개월 간의 공사 끝에 537년 12월 27일 완공되었습니다
1500년의 세월동안 흥망성쇠를 통하여 지도에 적히는 나라 이름이 바뀌면서 종교 또한 바뀌는 격변에도 건물 자체의 결함없이 지탱해 올 수 있도록 든든하게 지어진 교회를 보는 우리의 눈과 마음은 감탄과 놀람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떻게 1500년 전에 이런 건물을 지을 수가 있었을까? 어떻게 아직까지도 그 많은 지진을 견뎌내며 건재할 수가 있었을까? 우리의 지식과 상식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그 현실 속에 우리가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현지어로는 아야 소피아, 유럽인들은 하기아 소피아, 그리고 우리는 소피아 성당이라고 부르는데, 마치 소피아라는 성인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처럼 들립니다마는 여기서 “소피아”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지혜”를 뜻하는 그리스어라고 합니다. 따라서 제대로 번역하면 “거룩한 지혜의 대성당”이 되어야 맞다고 합니다.
건물을 지탱하는 수많은 기둥들 중 녹색 대리석 기둥은 고대 7대 불가사의로 알려진 에베소의 아데미 신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의 성 요한 기념교회에서 멀리 있는 아데미 신전에 남은 하나의 기둥을 망원경을 통하여 보았기에 지금 여기서 그 실물을 보며 공상을 해보지만 사실 감이 잘 잡히지가 않았습니다. 하긴 이 건축물에 맞게 다시 다듬어졌을 테니까요.
그 옛날, 바울을 쫓겨가게 만든 에베소의 아데미가 거주하던 신전의 기둥이 그 당시 세계 최대 교회 기둥으로 사용되어, 그 기둥이 받치고 있는 교회 안에서 사도 바울의 서신들을 읽으며 강론하였을 테이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요!
이렇게 지어진 교회의 헌당 예식은 대단히 화려하였기에 황제가 헌당 예식에서
“오, 솔로몬이여! 내가 당신을 이겼도다!”라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성 소피아 교회는 황제 대관식, 또는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는 등 제국의 중요한 장소로 사용되었으나 1204년에 일어난 제4차 십자군 전쟁때는 십자군들의 약탈 대상이 되었으며, 그후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한 후, 술탄 메흐멧에 의해 모스크로 사용될 때에는 횟가루로 덧칠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터키인들이 모자이크를 파내지 않고, 두께 5cm이상의 횟가루도 덮어버렸기 때문에 1934년에 케말 아타튀르크 터키 초대 대통령에 의해 박물관으로 바뀌고 나서, 복원공사가 이루어져 오늘날에는 비교적 원형에 가까운 모자이크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의 돔은 직경이 남북으로 31.87미터, 동서로 30.87미터로 약간 타원이며 높이는 55.6 미터나 됩니다. 총 면적은 7,570m²로, 로마에 있는 베드로 대성당이 지어질 때까지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로, 오스만 제국이 정복하기 전까지 그리스 정교회가 916년 동안 사용했습니다.
교회의 앞부분에 서서 천정을 쳐다보면 성모 마리아와 그 품에 앉고 있는 아기 예수가 보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금으로 만들어진 모자이크입니다.
교회가 지어졌을 때 여왕이 예배 드리러 오면, 타고 온 마차가 올라 갈 수 있도록 층계 대신에 경사진 길로 오를 수 있는 이층으로 올라가면 천국과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문을 지나게 됩니다.
그 문을 통과하여 오른쪽으로 커다란 모자이크를 보게 되는데, 순금으로 만들어진 모자이크의 중앙에 예수님, 왼쪽에 성모 마리아, 오른쪽에는 세례 요한이랍니다. 그리고 벽 윗부분 동그란 판에 금박으로 새겨진 아랍문자는 알라와 모하메드의 이름이라네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오묘한 조화… 하기야 뿌리는 한 뿌리인 것을….
화려하였으나 지금은 그 화려함을 되찾기 위한 복원작업을 위해 오히려 벌거벗겨져 철골로 버티고 선 중앙 천정, 웅장한 그 건물 속에서 예배 드리고 찬양하던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이렇게 웅장하고 크게 지었다고 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이 안으로 끌어드릴 수가 있었을까요? 무소 부재하고, 그 크기가 때에 따라서는 우리의 마음 속에 들어올 수 있도록 작아지기도 하지만, 또한 온 우주를 끌어안을 수 있도록 크신 그 하나님을 위한 집은 과연 얼마만큼 커야 할까요?
결국 우리의 욕심만큼이요, 우리의 능력만큼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밖으로 나와 하늘 높이 치솟은 4개의 첨탑들 너머로 파랗게 비추이는 하늘을 한참 쳐다보았습니다.
외신에 따르면 2020년 7월 10일 터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성소피아 박물관을 이슬람 사원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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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명소이며 세계적 관광지이기도 한 이스탄불 성소피아 성당(Hagia Sopia)이 85년 만에 다시 모스크로 전환된다. (출처: 기독신문, http://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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