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强震)에 천년고도(千年古都)가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지난 8일 발생한 리히터 규모 6.8 지진은 1960년 아가디르에서 수천 명이 사망한 지진 이후 가장 강력한 수준이라고 한다. AP통신은 이번 지진으로 옛 수도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자리한 마라케시가 타격을 입었다며 구도심(舊都心) 메디나 일부 건물들까지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마라케시는 베르베르어(북아프리카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신의 땅’을 뜻하는데 ‘모로코’ 국명도 여기서 비롯됐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모로코 마라케시는 모로코 중부에 위치한 역사 도시로 중세시대 문화유산이 보존돼 있고 광장에는 전통시장이 열려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유네스코는 마라케시가 베르베르인 알모라비드 왕조가 1070~1072년 사이에 건설한 도시로 오랜 기간 국가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북아프리카에서 안달루시아에 이르는 서부 무슬림 지역 전역에 영향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메디나엔 쿠투비아 모스크와 성벽, 정원, 반디아 궁전 등 많은 건축물 유적들이 있었다.

 

 CNN에 따르면 코로나 발생 이전인 2019년에만 300만명에 육박하는 관광객이 이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알아울라TV가 전하는 이번 지진피해 대부분 구조대가 접근하기 어려운 산악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명피해 집계는 지진이 한밤중에 발생한 데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 매몰된 실종자 규모가 파악되지 않아 희생자 수는 늘어날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이고, 인명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적된 부분은 참담하다뿐만이 아니라고 했다.

 

 한 주민은 밤새 노숙하며 몸을 휘감았던 얇은 담요를 움켜쥐고 “여진(餘震)이 언제 또 발생할는지 몰라 지나가는 구급차만 보며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서 지축(地軸)을 뒤흔든 시간이 20초 정도 된다하는데 나에겐 몇 년 같았다”고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정황(情況)에 지진피해 난민들의 처지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겠지만, 정작 모로코 당국은 각국에서 내민 도움의 손길에 소극적이라는 뉴스가 갸우뚱하게 한다.

 

현지를 방문했던 관광객들까지 나서서 피해자들을 돕고 지구촌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로코 정부가 이를 허용하는 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현지인들의 불만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모로코 정부는 사태 초기 스페인·영국·카타르·아랍에미리트 4국에서만 도움을 받기로 했다. 모로코의 소극적 태도는 지난 2월 튀르키예 정부가 지진 발생 수 시간 만에 전 세계에 지원을 호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프랑스 지리학자 실비 브루넬은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에 “모로코는 전 세계가 도와주러 오는 가난하고 상처받은 나라로 비치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다. 하긴 체면에 목숨을 내건 사람들은 고드름똥을 싸면서도 감히 춥다고 말하지 못하고 “어 떨린다”며 주위 사람들 눈치를 살핀다고 얻어들었다.

 

 AP통신은 “곧장 파견될 태세를 갖췄던 일부 국제 구호팀조차 마냥 모로코정부의 공식 지원 요청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한다. ‘국경없는 구조대’는 “현재 구조대를 프랑스 파리에 대기시켜놓은 상태지만 모로코 측 허가가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며 “무너져 내린 잔해더미 아래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는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모로코 정부가 이번 재난을 스스로 헤쳐 나갈 역량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해외지원을 받는 데 소극적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심지어 신생국 모로코의 자존심 때문이란 얘기도 있었다. 긴급 재난사태에 도움을 주고 도움 받는 인류애(人類愛)는 이제나저제나 유효하다. 알량한 체면을 따지려들고 내세울 일이 아닐 법도 하건만 글쎄다.

 국가 위기 상황에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국왕이 부재해 정부 대응이 늦었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프랑스 일간 르몽드가 뒤늦게 보도했다. 르몽드에 따르면 모로코에 강진이 났을 때 국왕 모하메드 6세는 건강상 이유로 파리에 도착 에펠탑 근처에 소유한 1600㎡ 저택에 머물고 있었다. 호흡기관에 생기는 희귀염증 질환 사르코이드症(Sarcoidosis)을 앓고 있는 국왕은 2018년 파리에서 수술 받은 후 정기적으로 프랑스를 찾고 있다는데 모하메드 6세가 모로코 강진(强震) 소식을 듣고 파리를 떠난 건 이튿날 9일 아침이다.

 

 지진 피해에서 인명구조를 위한 ‘72시간’의 골든타임을 넘긴 모로코 정부의 태도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졌다. 무너진 시설물의 잔해를 맨손으로 들썩이며 생존자를 찾는 모양세는 모로코당국의 구조역량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타국의 도움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옹고집이 피해 규모를 더 키울 것이라는 지적이 빗발친다.

 

 모로코정부는 국왕이 수도 라바트에서 정치·군사 고위 인사들과 함께 재난 대응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을 언론에 공개했다. 모로코 TV에서는 이 화면만 반복 재생시키며 국왕이 공식적으로 재난에 대처하고 있다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무진장 애쓰나보다. 중앙집권체재 국가인 모로코는 국왕 중심적으로 통치되기 때문에 그가 돌아오기까지 공개적으로 지진에 대해 언급할 수 없을 거라며 르몽드가 대신 전했다. 그래서 사망자가 속출하고 건물이 붕괴되어도 정부 관계자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치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브룩시는 르몽드에 “뉘시라 지엄(至嚴)한 주권자에 앞서 섣불리 말하거나 행동에 나설 수 없는 이것은 불문율(不文律·an unwritten law)”이라고 말했다.

 아무렴, 왕정(王政) 국가의 DNA는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莫論)하는가보다. ‘잘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과 잘 되고 있는 것은 엄연(奄然)하다’고 여기는 무문(無門)의 고지식함을 괴이(怪異)타 마시길…. 지진으로 허물어진 땅에서도 샘물은 솟아날 것이다. 허덕이는 백성(百姓)은 평등(平等)해야 마땅할 것이며 위정자(爲政者)들은 민초들의 쓰라린 마음을 알뜰하게 보살피는 표상(表象)이 되었으면 한다.

 

 “어찌 못마땅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덜어내지 못한 체/한편으론 분쟁과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뉘라서 세상인심을 나무랄 순 없다하지만 맹랑하고 허튼 소린/ 자주하면 버릇이 된다고 합니다. 달이 기울면 별 반짝이듯이/ 너나없이 쉽지 않은 일 넘어선다면 오죽이겠습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CA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