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라 불려지는 선박

 

 19세기 말 남북전쟁 후 새로운 지도자를 그리던 시인 핸리 롱페로우(1807-1882)는 그의 시 ‘국가라는 배’(The Ship of State)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오, 국가라는 선박이여, 항해 하십시오! 항해하십시오!

 오, 미주연합이여, 강하고 위대하게! 인류는 다가올 미래를 공포와

 희망으로 맞이합니다. 인류가 당신의 운명에 숨죽이며 매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선장이 용골을 놓고~~

 당신의 희망의 닻이 용광로와 열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어느날 하루살이와 메뜨기가 같이 놀러 나갔다. 그런데 무언가 맘에 안든 메뚜기가 하루살이를 때렸다. 무방비 상태에서 한대 맞은 하루살이는 너무 분해 친구들을 데려와 메뚜기를 공격했다. 하루살이들이 메뚜기를 포위하고 마지막 소원을 물었다. 그러자 영리한 메뚜기가 대답하였다. 내일 싸우자. 하루살이는 메뚜기의 소원을 들어 주었다.

이 메뚜기는 다음날 개구리와 놀게 되었다. 개구리는 날씨가 추워지자 그만 놀고 내년 봄에 놀자고 하였다. 내년을 모르는 메뚜기는 개구리에게 내년이 뭐냐고 물었다. 내년에 겨울이 지나고 날이 따뜻해지면 오라는 거야.

 따뜻한 봄이 오자 동면에서 깬 개구리는 우물가에서 깡충깡충 뛰다가 우물에 빠졌다. 우물 안에 있던 개구리가 물었다 “너 어디서 왔니?” “나, 바깥 세상에서” 우물안 개구리는 바깥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우물 안에서만 사는 개구리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세상 물정을 모르는 존재이다. 이제 알겠다. 외부에서 들어온 개구리가 하여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철학자 플라톤이 국가라는 책에서 그 유명한 동굴의 예를 들며 철학자 왕에 의한 철인정치를 왜 주장하였는지를!

플라톤은 기원전 428년 아테네의 귀족 아들로 태어나 정치가로서의 길이 그의 꿈이었으나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누명을 쓰고 죽자 정치가로서의 꿈을 접고 철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아카데미라는 서양세계 최초 대학교의 원형을 설립하여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지중해 연변을 두루 여행하며 철인정치(철학자 정치)를 피력하게 된다. 정치권력과 철학이 하나로 합쳐져야 한다는 그의 정치관은 철학자 왕이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요구하게 된다.

그는 모든 면에서 완전한 철인 왕을 항해를 떠난 선박의 선장으로 비유하였다. 선장은 철학자 왕과 같이 완벽한 인간이어야만 한다. 따라서 선장의 선택에 의해 항로는 물론 선원을 포함한 모든 그 배의 운명이 결정된다.

하지만 플라톤의 유토피아적인 정치관은 철저한 엘리트 중심의 스파르타식 교육을 강조하는 폐단을 낳게 하며 타협 없는 독단으로 직진하게 한다. 당연히 자격이나 능력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참정권을 주는 민주주의에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의 열렬한 옹호자인 영국 철학자 칼 포퍼(1902-1994)는 20세기 초에 등장한 전체주의의 기원을 플라톤의 철인왕에서 찾았다. 실제로 그 정치형태는 히틀러와 스탈린에게서 그 모형을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정치상을 추구하였던 플라톤의 철인정치가 독재자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다는 것은 역사철학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다.

망망대해를 떠나가는 배에서 선장의 권한은 막강해야만 한다. 행정권은 물론 징계권을 포함한 사법경찰권을 임의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하며, 구금 체포의 권한을 부여받아야 한다. 하지만 선장에 정신적 문제가 있어 전 선원들이 위험에 처하게 되면 하극상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1954년 험프리 보가트가 주연한 ‘케인호의 반란’이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태풍이 몰아치는 급박한 상황에서 편집광 증세가 있는 선장은 강박증세를 보인다. 위기를 느낀 함대원들은 부함장을 중심으로 지휘권을 탈취하게 된다. 급박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최선의 인간의 선택을 드라마틱하게 다룬 작품이다.

캐나다의 추운 겨울을 피해 10명의 친구가 남쪽 플로리다로 여행을 떠났다. 리조트에서의 시작은 이미 준비되어 있는 음식과 일정표에 따르는 활동이라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발단은 경비를 줄이기 위해 단체로 콘도로 옮긴 다음부터 발생 하게 된다.

다음날 행선지를 결정하는데 그 중 몇 명은 골프 4명, 낚시 3명, 수영 2명 그리고 승마 1명 등 다양한 의견이 대두된다. 그 중 가장 연장자가 수영을 좋아해 10명 모두가 수영을 가게 되면 8명은 어쩔 수없이 수영을 가게 된다. 독재정치의 전형이다.

두 번째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골프와 낚시를 놓고 투표를 하는 방법이다. 낚시가 6명, 골프가 4명, 10명 모두가 낚시를 가게 되었다. 대의민주주의다.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애초 낚시를 좋아했던 사람은 3명 뿐이다. 이것이 대의민주주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마지막의 선택은 각자 취향대로 선택하여 가는 방법이다. 10명이 다 모일 수 없다는 결점이 있지만 방법을 찾으면 그다지 힘든 일도 아니다. 골프를 치는 친구 4명이 9홀만 돌고 골프장 부근 식당으로 나와 10명이 같이 모여 치맥으로 점심을 해결할 수도 있고, 저녁때 해변가에서 신선한 굴 요리를 곁들여 디너를 함께 해결할 수도 있다. 이것은 직접민주주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구성원 각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래서 힘없고 소외된 어떤 그룹도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면 당연히 대의민주주의도 민주주의 이념에 적합하지 않게 된다. 오직 직접민주주의만이 타당하다 할 수 있다.

캐나다는 대의민주주의 국가이다. 10%의 백신접종을 거부하는 트럭커들과 90%접종 완료한 트럭커들이 있다. 이미 모든 국민의 건강을 위해 많은 돈을 들여 백신을 접종하고 있으며 현재로선 이것이 최선의 방법인데 이에 불만을 품고 파업을 하며 질서를 어지럽히는 경우 이것을 저지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의 치안유지 방법이며 의무이고 치러져야 할 정치의 묘수이다.

4주째 접어든 파업시위가 진정 단계에 들어갔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이지만 결국 다수의 행복이 최대의 행복이고 최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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