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우리가 아는, 그리하여 우리에게, 우리들의 삶에 조그마한 기쁨을 주었던 모든 죽은 사람의 기억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가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한때 살았었으므로 그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최인호-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동물원의 우리 안에 갇혀, 초조하게 서성이는 한 마리 범의 모습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숱한 선생님들에 대한 추억, 수학 교과서 ~~
철창 안으로 보이는 죄수의 창백한 얼굴. 무성한 나뭇가지 위로 내려 앉은 하얀 눈송이, 이 모든 것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1953년 고교 2학년 교과서에 처음 실려 1982년 교과서 개편으로 사라진 ‘안톤 시나크’의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극히 일부 발췌한 것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생활의 무게로 다가오는 슬픔과 삶의 허무함을 느낌의 언어로 담은 서정적 시적인 느낌을 주는 수필이다. 

그러나, 196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닌 우리 세대에게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이 수필은 통속적인 감상주의가 좀 지나치게 느껴져서 그런지 내게 그다지 감흥을 주지 못하게 된다. 
그 후 발견한 사실이지만, 독일 전공 번역가인 김진섭 교수가 1936년 번역한 이 수필의 독일 작가 안톤 시나크는 1933년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한 88인 중에 한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번역작품은 나를 혼돈스럽게 하며 슬프게 한다.

요 근래 내 주위의 많은 분들이 유명을 달리하는 것을 보며 우리들의 살아온 삶의 무게에 실려 오는 허탈한 심정은 나를 슬프게 한다. 신앙인의 믿음은 이승에서의 이별은 끝이 아니라 내세의 약속에 있다는 말을 듣게 되어도, 죽은 사람들의 기억들은 위안이 되기 보다는 그 살아온 발자취의 허무함이 더해져 나를 더욱 슬프게 한다. 
역시나, 인간의 마음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처럼 지지고 볶아도 지상에서의 일상의 삶에 무게를 두게 된다.

오늘 하루가 지나면 2023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많은 일들이 발생 하였는데 그 가운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과격 무장세력 하마스와의 전쟁을 들 수 있다. 지난 10월7일 하마스의 전례 없는 테러공격은 유대인들에게 홀로코스트(Holocaust) 이후 최대의 피해를 주게 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고통을 안겨 주게 된다. (최소 1200명 이상이 살해 당했으며 여성과 어린이 민간인 등 1백여 명 이상이 인질로 붙잡혀 억류된다.)

그후 이스라엘의 반격에 의해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인 가자는 어린아이들과 부녀자들이 주류를 이르는 2만여 명의 팔레스타인들이 사망하게 되며 아비규환의 지역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스라엘 입장에선 이 기회에 하마스(Hama) 그룹을 송두리째 제거하여 후환을 없애려 한다. 그러나, 설사 그 작전이 성사된다 하더라도 이 분쟁은 절대 끝이 날 수 없는 전쟁이다. 왜냐하면, 오히려 하마스 세력보다 더 복수에 불타는 팔레스타인의 강력한 무장세력의 세대가 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남이 나를 범하면 나도 반드시 남을 범한다는 말이 있다. 잊지 말라! 팔레스타인에게 있어서 이스라엘 유대인은 2천여 년 이상 생존하고 있던 지역에 침투한 침략자일 뿐이다.

두 달여 간 마약 복용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다 종국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이승을 하직한 배우 이선균의 죽음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가 고통을 받을 때 그래서 누군가가 그의 곁에서 그와 같이 슬픔을 나눌 수 있기를 열망하였을 때 외면한 톱스타를 포함한 연예계와 매스컴은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인터넷의 새로운 여론몰이 위력은 그 함정에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늪이 되고 만다. 새로운 벤처기업의 출현과 함께 급성장한 IT 강국의 다른 일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심정은 또한 나를 슬프게 한다.

오늘 밤이 지나면2024년 새해가 밝아온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한다고 하였던가? 그래서 그런지 역사는 현재와 미래의 교두보라 할 수 있다.
1945년 2차대전 후 미국과 소련을 주축으로 한 연합국의 패전국 처리 과정에서 분단 국가라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관이 나타나게 된다. 그 공통점은 그들 분단국가의 의지가 아닌 외세에 의해 타율적 방법으로 대립적인 형태의 새로운 국가체제가 설립된다는 것에 있게 된다. 
한국과 독일이 대표적인 예인데, 그 후 독일은 통일이 되었으나 조국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후 70년이 지난 현재도 실질적인 전쟁상태로 소강상태에 빠져 있다. 한국의 국력과 북한의 인력이 합친다면 대한민국은 세계최고의 국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나리오는 그 주변국가(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아무도 원하지 않는 해결책이다. 
그래도 한반도에 2024년에는 통일이라는 희망의 물꼬가 열리기를 갈망해 본다.  적어도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6.25가 마지막 격전지가 되어야 한다. 
새해이기에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 보다는 기쁘게 하는 일들만 발생하기를 바란다.
2023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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