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우월주의(White Supremacy)

 

 

법정 스릴러의 대가 존 그리샴의 소설 ‘가스실(The Chamber)’은, KKK 단원인 백인우월주의자 샘 게이홀이 1960년대 말 유대인 인권변호사의 사무실을 폭파하고 그의 어린 두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 언도를 받은 스토리부터 시작된다.(무대는 미시시피주다.)

 

KKK는 ‘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약자로서 백인 우월주의, 반유대주의, 반카톨릭 등을 표방하는 미국의 폭력적 비밀 결사단체이다. 그들은 흰색 천으로 온 몸을 감싼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백인임을 과시하고 상대방을 주눅들게 만들기 위함이라고 한다.

 

미국 남북전쟁(1861~1865) 후 연방의회를 장악한 공화당 의원들은 노예였던 흑인들을 해방시킴으로써 내전 이전의 백인들의 권력구조를 분쇄하려고 계획하였다. 이에 반발해 일부 남부 연합군인들은 남부의 재건을 목표로 지하 저항세력의 중추 조직인  ‘KKK’를 조직하게 된다.

 

얼굴을 흰 두건으로 가린 이 비밀 결사단체의 최초의 목적은 흑인들을 백인과 동등한 급으로 같이 지내는 것을 막아 따로 격리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점점 그들의 세력이 확장되자 흑인은 물론 흑인해방에 동조하는 백인들까지 포함하여 죽음에 이르는 린치(Lynch)를 입히거나 그들의 집을 불태우는 등 보다 끔찍한 테러를 서슴지 않고 자행하였다.

 

그러나 그후, 그들을 제재하는 연방법이 제정된 후 형식적으로는 해체되었으나 암암리에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독버섯처럼 퍼져나가게 된다.

 

1950년대 20세기 중반에 접어들어 아일랜드, 이탈리아, 동구권을 비롯한 러시아 중국 등지에서 로마가톨릭 신자들과 유대인들의 이민이 급증하자 ‘쿠 클럭스 클랜(KKK)’단은 조직을 개편하여 흑인뿐만 아니라 ‘반가톨릭’, ‘반유대주의’를 강령으로 삼고, 반이민 경향이 있는 지역에 침투함으로써 세력을 확장하게 된다. 그들은 이민자들의 등장이 개신교와 백인들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난 9월24일,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주 코퀴틀람의 연방경찰이 그 지역에서 ‘백인 엄마와 어린이들만(Whites-only Moms & Tots)’ 모임에 가입할 수 있다는 포스터 광고가 나붙어 수사에 착수하였다는 발표가 있었다.

 

미국이 다양한 문화의 배경을 가진 그룹의 인종들을 용광로와 같은 미국문화권으로 만드는 체제의 국가라 한다면 캐나다는 모자이크 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국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전단지를 보게 되면 캐나다도 더 이상 백인 우월주의자나 신나치(Neo-Nazi)주의와 같은 트럼프 스타일의 전체주의가 발을 붙일 틈이 없던 시기가 지나간 듯한 느낌이 들게 된다. 더군다나 ‘강압적인 다양성에서 벗어나 유럽 출신 어린이들만의 자랑스런 부모모임에 가입하세요’라는 문구를 보면 이것은 명백한 인종 차별주의를 표현하는 대담하고 철면피 같은 인종차별 언사이다.

 

1924년 사스캐처원 식당주인 ‘Yee Clun(이크른)’은 아시아계 비즈니스 주인이 백인 여자를 고용하려면 지방자치정부(Municipality)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일명 ‘백인 여성 노동법(White women's labour law)’에 도전하였던 적이 있었다. 이 법은 1912년에 제정되어 1969년 폐지되었다.(식당주인 Yee Clun은 그 법이 폐기되기 2년 전인 1967 세상을 떠났다.)

 

이 스토리를 보고 있으면 그리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닌 데도 내가 알고 있는 캐나다가 아닌 먼 다른 나라의 불편한 역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왜냐 하면, 내가 알고 있는 캐나다의 이민정책은 경제발전을 위한 인구증가와 인력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당연히 이로 인해 캐나다는 다민족국가로 성장하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모자이크적인 다문화사회를 이룬 나라로 알려져 있다.

 

1965년, 청년 ‘피엘 트르도’는 자유당 소속으로 하원의원에 당선된다. 곧 이어 당시 피어슨 총리에 의해 법무장관으로 임명돼 진보적인 법안 통과에 공헌하며 눈길을 끌게 된다.

그후 피어슨 총리의 뒤를 이어 캐나다의 제 15대 총리로 취임하게 되며 현실적인 자주 외교노선과 더불어 새로운 이민정책의 물꼬를 트게 된다. 그런 시스템의 다민족국가의 다문화 사회가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캐나다다. 그런데 그 융합의 상징인 모자이크 사회가 소수의 극우세력에 의해 도전을 받고 있다.(프리덤 콘보이, 신나치주의 등)

 

BC주, 코퀴틀람의 ‘백인 엄마와 어린아이들만(Whites-only Moms & Tots)’이라는 포스터 광고 전단지의 노골적인 인종차별적 표현 사용을 보면 캐나다에도 인종차별 의식이 잠재해 있다고 느껴지게 된다. 그런 편견을 퍼트리는 사람들을 단순히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스치며 지나가는 평상시에는 얼마든지 친근감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다. 동시에 이웃사촌으로 여겼던 사람들이 ‘우리 백인은 우리들의 본래 소속인 백인사회에서 살 테니까 너희는 너희가 살던 곳으로 가라’고 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내가 이곳 캐나다에서 산지가 내년이면 50년이 된다. 그 기간 동안을 요약하여 말한다면, 한국인이냐, 캐나다인이냐, 그것도 아니면 ‘코리안 캐네디안이냐’의 나의 정체성,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는 투쟁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대답은? 시저(Caesar)는 루비콘강을 넘을 때 ‘주사위는 던져졌다’ 하였다. 돌아갈 수 없는 다리는 넘었다는 뜻이다. 이민자들은 그들의 운명을 자신들의 모국인 고국이 아니라 타지에 운명의 주사위를 던진 개척자들이다.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그래서 이민1세는 외롭지 않다. 왜냐 하면 우리들의 2세들이 그리고 또 그들의 후세들이 뒤를 이어갈 것이니까! (2023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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