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시설의 연쇄 이전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주장인즉슨, “청와대는 국민과 동떨어진 구중궁궐 같아서 제왕적 대통령이 되기에 십상이다. 한번 발 디디면 권력욕에 취해 나오기 어렵다. 그래서 청와대 일대를 이번 봄꽃이 지기 전에 시민들께 돌려드려서 가족 나들이 장소로, 신혼부부들의 웨딩 촬영지로… ” 라고 한국의 안보적 입장에 썩 어울리지 않는 낭만적 사유를 늘어놓았다.

세종로 정부청사나 외교부 청사는 전쟁 시 대통령의 안전 확보가 어렵다는 평이다. 그러더니 국방부 청사가 거론되었다. “청와대는 국방부 청사로 들어가고, 국방부는 그 옆의 합참 청사로 가고, 합참은 남태령에 있는 수방사 시설로 옮기게 하여, 5월 9일까지 이전을 모두 마칠 계획이다.”라고 발표했다.

또 “용산의 미8군을 내보내어 그곳에 시민 공원을 조성하고, 그 한쪽에 관저를 지으면 대통령이 시민들과 접촉하기도 쉬워지며, 가족 나들이 장소나 혹은 결혼식 장소로 국민들께 돌려드린다.”라는 구상이라고 했다.

 미군 측은 “옮겨갈 곳의 준비가 안 된 관계로 언제 나갈지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미군이 나간다 해도 심하게 오염된 토양을 처리하려면 5년 이상 7년여의 세월이 소요된다.”라는 환경부의 의견도 있었다.

‘안보시설의 연쇄 이전’은 대선이 끝난 뒤에 나온 얘기다. 세종로 청사의 안전 문제로 고민하던 중 어느 국방부 출입기자가 “그럼 국방부로 들어가면 되겠네.”라고 의견을 냈다. 3월 20일 국방부 일대의 꽤 과장된 조감도 앞에서 당선인이 여긴 대통령이 쓰고, 저긴 국방부가 쓰면 되고, 이쪽 벙커가… 어떻고 등등 군사기밀을 언론에 브리핑했다. 당선인과 인수위원 중에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군사보안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이적(利敵) 행위를 TV로 보는 심정은 착잡했다.

 전직 합참의장 11인이 “국방부와 합참의 연쇄 이전은 안보적 관점에서 위험성이 높다. 국민 여론이 그렇게 모아지면 그때 자세한 계획을 세워서 추진해도 된다.”라며 급한 이전에 완곡한 반대를 했다.

다음 날, 전 국방부 장관 이상훈이 ‘예비역 장성 천 명 일동’이란 거창한(?) 명의로 “우리는 대통령 집무실의 국방부 이전을 찬성한다. 군사시설의 이전이 안보 불안을 일으킨다는 건 거짓말이다.”라고 강변했다. 방위산업 관련 비리로 형을 살고 나온 자라서 그런지 옥살이에 대한 감정적 단말마처럼 들렸다. 장군 천 명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으니 그의 말은 신뢰성도 보잘것 없었다.

여기서 걱정되는 몇 가지를 짚어본다.

 첫째, 김용휴 장군을 비롯한 몇 명의 예비역 중장님들, 그대들은 한국의 전쟁 지휘부를 달포 안에 다 뜯어내어, 옮기는 것에 안보적 문제가 없다는 말인가? 안보 시스템을 유례없이 흔들고 수천 억원의 혈세를 낭비하면서 그렇게 옮기는 이유가 무엇인가? 군대 ‘군’자(字)도 모르는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그러는가? 아니면, 북녘 김씨 임금을 편들려는 것인가?

둘째, 청와대 본관이 보기에는 장려해도 사용하기엔 불편하다. 문 대통령은 외빈 영접, 고위직 임명 등의 행사 땐 본관을 이용하나, 통상 비서동의 한 편에서 사무를 본다. 아방궁이니 구중궁궐이니 하는 표현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문 정부를 헐뜯으려는 말장난이다. 안보는 매끄러운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몸을 바쳐 실행하는 과업이다.

 그러니 안보 관련 발언에는 말장난을 섞지 마라. 군사(軍事)에 허언은 용납될 수 없다. 정권 재창출에는 실패했지만 지난 5년간 첨단 군사장비를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국군의 전쟁수행 능력을 높이고 북.중.일의 침략 야욕에 쐐기를 박은 문 정부의 실제적인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셋째, 삼각산 아래 남향한 경복궁(청와대)은 6백 년 이상 한반도의 집권자가 차지한 상징적인 터전이다. 용산은 병정들이 총칼을 들고 진을 친 곳으로서 문화의 급이 다르므로 청와대 자리와 비교할 대상은 못 된다. 누대로 살던 안채를 버린 주인이 행랑아범이 사는 바깥채로 옮기겠다고 그 소란이니… 한반도 안에 그만큼 오랜 세월 통치자가 권위있게 자리한 곳, 통치문화를 꽃피운 터전이 어디 있다고.

 더구나 국방부 본청은 길에서 140여 미터나 떨어져 있고, 18m쯤 높이의 가파르고 둥그스름한 언덕을 올라가야 만난다. 시민들에겐 더 멀게 느껴지고, 길에서 볼 수도 없다. 즉 시민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형이다. 어쩌면, 그런 약점을 감추려고 공원이나 웨딩 이야기를 자꾸 곁들이는지도.

넷째, 보수논객 조갑제가, 또 동아일보의 사설도 “윤 당선인이 자꾸 ‘청와대 터를 국민께 돌려드리겠다.’라고 말한다. 누가 돌려달라고 했나? 그 혼자의 말이다.”라고 썼다. ‘영적 인물’을 자처하는 김씨가 졸라대던가? 건진 스승이 “용산의 언덕에 자리 잡으면 승천하는 용의 운기를 누릴 것이다.”라고 꾀던가? 그런 이들의 부추김에 나라의 안보체계가 흔들리고 까발려지는 것이 경망스럽다.

 청와대 이전에 국민 58%가 반대하고 33%가 찬성했다. 당선인이 “나는 반대여론 따윈 개의치 않는다.”라고 하던데 민주국가의 지도자가 국민을 상대로 그같이 거칠고 무례하게 말하는 자를 보지 못했다. 국민의 안위에 직결된 큰 사업을 공론화 과정도 없이 제 고집만으로 밀어붙이면서 그게 제왕적 사고의 전형(典型)인 줄도 모르는가 보다.

 “통일될 때까지 군 복무 미필자는 선출 고위직에 나설 수 없다.”라는 법률규정이라도 마련한다면 두 손 들어 환영하겠지만. (2022.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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