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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기 수필

    작은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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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휴가

 

 올해는 아들네 집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겨울에는 따뜻한 남쪽에 갔다오면 딱 좋은데, 게다가 요즈음에 나오는 가격을 보면 상당히 구미가 당긴다. 그런데 누군가 나에게 이런말을 했다. 혹시 나갔다 코로나 때문에 입국이 안되면 어쩔거야?

그 소리를 듣고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다. 괜히 출국했다가 들어오질 못하면 상당히 불편한 상황이 올것 같다. 그럼 국내에서 놀자. 내 나라니까 아무래도 움치고 뛰는것도 낫겠지.

 크리스마스날 딸네와 같이 저녁을 먹고 다음날 공항으로 갔다. 포근한 날씨에 길에는 눈이라고는 볼 수가 없다. 가을인지 겨울인지 분간이 안된다. 비행기를 탔는데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꽉 찼다. 대부분 마스크를 한 상태로.

우리 앞쪽에 앉은 젊은 청년들은 마스크를 안하고 있다고 5천 달러 벌금 경고를 받았다. 조심해야지 코로나 시국에.

 에드먼튼에 도착해 아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날씨를 검색하니 영하 28도란다. 4시간 사이에 30도 이상이 차이나는 곳에 왔다. 같은 나라에 위도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데 왜 이렇게 기온이 차이가 나는걸까? 가방을 끌고 밖으로 나가니 모든 차들이 입김…말고 차김을 뿜어대고 있었다.

 반갑게 아들과 상봉한 후 떠나려하는데, 아참 내 보청기, 왼쪽 보청기가 없어졌다. 얼마전 큰돈 주고 만든거다. 다시 아내와 공항으로 들어가 여기저기 찾다가 없길래 포기하고 ‘액땜한 걸로 치자’며 차로 돌아왔는데 의자에 앉으면서 본능적으로 손으로 의자를 훓었더니 뭔가 손바닥에 걸리는것이 있다. 잃은줄 알았던 보청기다. 차에 타면서 모자를 벗을때 빠졌었나보다. 밋밋하게 갔다오면 재미없으니 이렇게라도 추억을 하나씩 만들어야지.

 오다가 장을 보고 아들집에 도착하니 아폴로가 뛰어나와 어쩔줄을 모른다. 아내에게 갔다가 나에게 왔다가 펄쩍펄쩍 뛰고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다. 너무 추워 빨리 집으로 들어가는데 흥분한 상태에서 계단을 뛰어 오르다 미끄러져 어디에 부딪쳤는지 계단에 널부러져 꼼짝을 하지 않는다. 이런, 잔치집에 찬물을 끼엊는것 아닌가?

“아폴로, 아폴로” 불러대도 꼼짝하지 않는다. 모두들 걱정스런 눈으로 아폴로를 쳐다보는 중에 아들이 번쩍 안아다 리빙룸에 올려 놓으니 잠시 후에 살아나 나와 아내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꼬리를 흔들어 댄다. 근 반년만에 보는 아폴로 건강하고 활기차서 좋구나. 너무 추우니 나가서 걷지도 못하고 소변, 대변 볼려면 고생이 많다. 후딱 일만 보고는 쏙 들어온다.

 짐을 다 들여다 놓고 손과 얼굴을 깨끗하게 씻은 후 자고 있는 손자를 보러 갔다. 어둠속에 어렴풋이 보이는 아기의 실루엣… 저기 요람에 누워있는 저 아기가 나의 씨에서 나온 나의 분신이다. 누워있는 아기를 보니 울컥하는 뭔가가 올라왔다.

 잠시후 아기가 깨어 며느리가 아기를 우리에게 넘겨준다. 세상에 조그마한 아이가 갖출건 다 갖추었다. 코도, 입도, 눈도, 귀도 그리고 쭈글쭈글한 손도 얼마나 신비로운가. 드디어 나의 첫손자가 내 품에 안겼다. 빤히 쳐다보는 듯, 하품도 하고.  

한쪽 손을 들어 흔드는 것 같은 동작을 한다. 할아버지에게 인사하나? 그래 여기 있는 동안 너와 나 많이 친해지자. 고맙다 그리고 수고했다 며느리야, 아들아.

 저녁 먹고 지하실에 마련된 처소에 짐을 풀고 나는 일찍 잠이 들었다. 새벽에 무슨 소리에 깨어보니 침대 밑에서 아폴로가 짖고 있었다. 조르는 듯이 낑낑대다가 짖다가, 내가 데리고 위층으로 올려 보냈다. 안방에 들여보내고 다시 내려왔는데 한참 후에 문 밖에서 컹컹 짖어댄다. 그러기를 몇 차례 실랑이 하다가 좁은 더블베드 침대에 셋이서 자야 했다. 아폴로의 흥분은 그 첫날밤뿐이었다.

 아들과 며느리는 결혼 전부터 같이 살면서 집을 사기 위해 둘이서 열심히 돈을 모았다고 했다. 다행히 에드먼튼만 해도 집값이 토론토보다는 훨씬 저렴하기에 그들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집은 싹 수리가 된 방갈로인데 땅도 제법 컸고 동네도 조용한 것이 아이 키우고 살기에는 상당히 괜찮은 곳 같다.

 있는 동안 며느리의 아버지가 찾아와 같이 담소를 나누었다. 아직도 현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했다. 가기 전에 외손자를 안아보더니 표정이 흐뭇한 모습이었다. 아기 같던 막내딸이 듬직한 사위와 결혼해 이렇게 어여쁜 손자를 안겨주니 얼마나 고맙겠는가.

 우리는 40년 전 신혼여행을 에드먼튼으로 왔었다. 아내의 친구가 이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친구네 집에서 며칠 묵은 후 차를 빌려 타고 캘거리와 록키 마운틴을 돌았었다. 나는 40년 만에 여길 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네는 80년대 말에 우리 리치몬힐 집에 놀러 온 적이 있다.

 하루는 그들 부부가 들렸고 다음날 점심에 초대를 했다. 한참 30대 초반 청년 때 만나 이제 60대 중반 노년의 초입에 만난 우리들. 마치 매일 만나던 친구를 만난 듯이 반가웠고 지난 세월의 보따리들을 풀며 낮술을 시작했다. 미스터 박은 암으로 고생하다 이제 완치가 됐지만 그래도 조심하고 있는 중이라 술을 마시지 않는데 이날은 한잔 하겠다고 했다. 작년 팬데믹 초반에 아버님이 코로나로 인하여 돌아가셨다는 슬픈 이야기도 들었다.

 그날 술을 많이 마셔 다음날 아침까지 15시간이나 잤다. 이제 몸이 부대껴 술도 줄일 수밖에 없다. 하루 종일 집에서 아기와 아폴로와 놀았는데 토론토의 딸네 애들이 다 아프다고 한다. 영상통화를 하는데 콧물이 나는 손녀들을 보며 마음이 짠했다. 빨리 나아야지. 하루 종일 ‘Happy New Year’ 카톡 메시지는 끊임이 없다.

 설날에 The West Edmonton Mall을 구경갔다. 40년 전 왔을 때 세상에서 가장 큰 몰이 며칠 전에 오픈했다고 했다. 그 안에 해수욕장처럼 꾸며놓은 커다란 Water Park, 스케이트장, 페달보트 타고 바다사자 공연하는 곳, 미니골프장과 카지노 등 쇼핑뿐이 아닌 하루를 온전히 즐길 수 있게 해 놓았다.

 그곳에 있는 동안 아들이 하나님을 믿느냐, 예수님을 믿느냐고 물어온다. 왜 예전에 자기에게 성경도 사주면서 교회 나가라고 하더니 지금은 그러지 않느냐고 한다. 엄마, 아빠 때문에 걱정이 많으니 꼭 열심히 기도하고 신앙생활을 하란다.

부모자식간이 할말이 바뀐 것 같다. 그래 새해부터는 다시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도 충실하게 보도록 하자. 성경 일독도 다시 시작이다. 아들 때문에 나의 생활이 바뀌는구나.

 우리가 떠나는 날 아폴로가 아는지 침울한 표정이다. 눈이 오는 에드먼튼을 떠나 토론토로 귀환했다. 집에 들어오니 다 그대로다. 편안하다. 여름에 또 만나자. (20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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