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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억 칼럼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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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120년 전쟁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죄로 에덴동산을 상실했고, 그들의 장남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는 죄를 범하여 부모 형제를 떠나 방랑하며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며 반항하여 그분을 떠난 결과다.

그러나 그네들이 저지른 죄과를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잃어버린 낙원을 되찾아 평화와 기쁨을 맛보며 영원히 살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불행히도 그들은 하나님을 더욱 멀리 떠나 그들 욕망의 실현을 위해 온갖 죄악을 범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고 탄식하시며 홍수로 세상을 멸하기로 작정하시고 노아에게 큰 배를 지으라고 명하신다. 의인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구원하셔서 그들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기 원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건조하라 명하신 배는 길이가 150미터, 너비가 25미터, 높이가 15미터나 되는 엄청나게 큰 것이다. 당시의 조선술이 그런 배를 지울 수 있을 정도였는지 그리고 노아가 그 같은 배를 만들 기술과 능력의 소유자였는지도 알 길이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는 즉시 방주를 만들기 시작해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설계도 대로 이 거대한 배를 짓는 데 성공한다.

 

노아가 이 성사 불가능한(Mission Impossible) 사명을 달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120년이다. 이 장구한 세월 동안 그는 우리가 상상하기조차 힘든 고초와 고난과 진통을 당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기간을 노아의 950년 생애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을 것이란 관점에서만 본다면 성경에 기록된 노아의 방주를 제대로 이해한다고 볼 수 없다.

노아가 방주 건조를 위해 소모한 120년은 그가 세상과 자신을 상대로 싸운 치열한 전쟁이며, 그가 이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기에 인류는 멸종의 위기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역사운영은 그의 뜻에 따라 계속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아가 큰 나무들을 베어 방주를 짓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를 정신 나간 사람이라 비웃었을 것이다. 정상인이라면 홍수는커녕 비조차 내릴 기미도 보이지 않는 산 위에서 거대한 배를 짓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은 안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노아는 방주 건조는 하나님의 지시에 의한 것이며, 배가 완성되면 그 안에 들어오지 않는 모든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홍수로 쓸어버리실 것이라 말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노아의 설명을 듣고 사람들은 더욱 그를 조롱하며 손가락질 했을 것이다.

 

노아가 이런 세상의 조소와 멸시를 이겨낼 수 있었음은 아내와 세 아들과 자부들의 힘도 컸을 것이다. 아무리 괴롭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누군가 곁에서 힘이 되어준다면 포기하지 않고 굳건히 버틸 수 있는 법이며, 이런 역할을 노아의 가족들이 해주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노아가 오늘 날 4,300톤 급에 해당하는 엄청나게 큰 기선을 건조하는 불가능한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믿음을 지녔던 까닭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그 분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배를 만들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노아의 이 같은 믿음은 성서가 들려주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정의와 일치되는 것이다.

노아는 이런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였기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지니고 세상이 “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일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일에 불가능은 없다”라 외치며 방주 건조에 자신의 인생을 투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40일을 계속하자 온 세상이 물에 잠기고 노아가 만든 방주만이 물 위에 떠다니게 된다. 그러나 그 안에 탄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살았다는 기쁨보다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였을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방향도 모르게 떠도는 어두운 방주 안에 갇힌 그네들은 그들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노아는 그가 탄 배를 운행하는 항해사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홍수로 물에 잠긴 세상이 마를 때까지 동요함 없이 죽음의 항해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방주가 아라랏산 위에 섰을 때 밖으로 나와 땅을 밟은 노아에게 찾아온 기쁨과 감격과 감사는 크기만 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한 제사를 드렸고, 하나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고 노아를 축복하신다. 이는 아담과 하와에게 하신 축복과 동일한 것으로 하나님이 노아를 홍수 후 다시 시작되는 인류의 시조로 인정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노아에게 주어진 영광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노아는 참된 성도의 표본과 구원받은 신앙인의 모범으로서 “믿음을 쫓는 의의 후사”가 되었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노아는 하나님께서 에덴의 법정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약속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고, 그가 지은 방주는 주님의 몸 된 교회의 모형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다시는 홍수로 인간을 멸하지 않으시겠다는 언약의 증거로 구름 속에 두신 무지개는 전 인류에게 주시는 그분의 놀라운 선물이기도 하다. 그 오색찬란한 무지개를 갈망하고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은 영원한 나라를 향한 소망의 행진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독사에 물려 광야에서 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대에 달린 구리뱀을 쳐다봄으로 살아났고, “죄의 값은 사망”이기에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골고다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의 영원하신 무지개인 예수님을 바라보면 멸망으로 가는 길에서 영생으로 방향 전환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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