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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억 칼럼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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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의 생애(7)-믿음과 용기와 능력의 지도자 여호수아(상)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하여 정하여,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입구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그들은 그들 성읍에 받아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하게 하고, 피의 보복자가 그의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 중에 그의 이웃을 죽였음이라.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수 20:1-6)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24:14-15)

 

제사장 엘르아살과 각 지파의 지도자들과 더불어 정복한 가나안 땅을 분배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에 따라 여섯 개의 도피성을 세운다. 도피성은 실수로 살인한 사람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지정한 성읍이다. 당시에는 사법제도가 완비되어있지 않아서 살인이 일어나면 피해자의 가족이나 부족에서 보복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의도적이 아니고 단순히 과실로 사람을 죽게 해도 정당한 재판도 받지 못하고 무자비한 보복을 받아 죽은 일이 빈번이 일어나곤 했다. 이처럼 불행한 일을 방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일찍이 모세에게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면 사고로 사람을 죽게 만들면 그리로 피신하여 피의 보복을 당하지 않고 정당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각 지역에 도피성을 마련하라 명하신 바 있다.(민 35:9-15)

여호수아는 이 같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여섯 성읍을 도피성으로 택했는데, 그 중 셋은 요단강 서편에 나머지 셋은 요단강 동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요단강 서편에 있는 헤브론, 세겜, 게데스와 동편의 에셀, 나못, 굴란 등 여섯 도피성은 이스라엘 전역 30키로 내에 있어서 어디서 과실치사를 범할지라도 하루 만에 도피성으로 들어가 보복으로 인한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일단 도피성에 도달하면 가해자는 성문에서 그가 거기 온 까닭을 진술해야 했고, 장로들이 그의 말의 타당성을 인정하면 그들 성으로 받아들여 보복자들에게 상해 당하지 않도록 조처했다.

그런 후에 절차에 따라 그가 저지른 살인이 의도적인 것인지 단순한 사고였는지를 정식으로 심리하며 고의적인 살인으로 판명되면 보복자들에게 그를 넘겨주어야 했다. 그러나 우발적인 실수로 인한 살인이라 여겨지면 그 성에 머물러 살도록 했다.

그러다 그 사건이 일어날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으면 그는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만일 도피성에서 살기가 싫어서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 그 성을 벗어났다 그들을 찾는 이들에게 붙잡히면 과실치사였더라도 보복자들의 손에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 도피성을 나오면 누구도 그를 살인자로 취급하여 죽일 수가 없었다.

이 같은 사실들을 종합하여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어째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착해 살게 될 가나안에 도피성을 두도록 명하셨는가를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이 가나안에서 필요 없는 분쟁을 피하고 안전하게 살며 번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도피성을 두도록 하셨다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하나님께 가나안에 도피성을 세우도록 하신 목적은 아니었다. 우선 가나안에 세워진 도피성은 지역적으로 또 시간적으로 지극히 제한된 일시적인 것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그때 요단강 서편과 동편에 세워진 도피성은 모두 여섯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그리로 도피하여 보호받을 수 있는 시간도 그 성의 대제사장이 살아 있을 동안에 불과했다. 이는 제사장을 배출하는 레위 족속들이 관리한 당시의 도피성은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에 불과했음을 말해준다.

모든 인간은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롬 3:23), 죄의 값은 사망이다(롬 6:23). 따라서 우리 모두는 죄의 값인 죽음의 형벌을 피할 수 없는 비참한 운명을 지닌 존재들이다. 하지만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맞아들이고, 그의 품에 안기면 죽음의 형벌에서 벗어나 영생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요 3:16; 행 2:21).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도피성이신 것이다. 인종과 지역과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누구나 그리로 들어가기만 하면 죽음의 형벌을 면제 받을 수 있는 인류의 영원한 도피성인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설정하신 여섯 성읍이 구약시대의 도피성인 것이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혼란하고 복잡하며, 온갖 죄악이 난무하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우리가 탄 인생의 배를 침몰시킬 거센 파도가 몰려들지 알 수 없는 어둔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소망의 닻을 내릴 항구가 어디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한 채 공포와 절망 속에 표류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원한 도피성의 성주이심을 믿고, 그 성문을 두드리면 그 안으로 들어가 세상의 모든 불의와 불법과 모순, 핍박과 압제와 구속, 걱정과 근심과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 영생의 기쁨을 맛보며 복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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