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임금이로소이다 (하)

 

  구약성경 열왕기상 11장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마지막을 그리고 있다.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이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였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1~2절)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니.”(4~7절)

 

  안타깝지만 이것이 ‘여디디야’, 즉 ‘여호와께서 사랑하신 자’의 삶이다.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을 통해 낳은 첫째 아이가 죽은 뒤, 둘째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솔로몬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직접 지어주셨다.(사무엘하 12장)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자 여호와께서는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여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려니와”(열왕기상 9장 4~5절)라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솔로몬의 삶은 다른 길로 갔다.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왕상 9장 6~7절)”라는 저주의 길로 빠져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인간이 죄의 길로 내달린 것은 ‘여호와께서 사랑하신’ 솔로몬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던 다윗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는 말년에 주변 측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인구조사를 벌였고, 이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7만 명이 저주를 받아 죽는 사건을 일으켰다. 
 문제는 여호와께서 택한 백성들의 삶에서 터져 나오는 불의함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있다. 인구조사 사건을 두고 성경은 다소 상반되게 진술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무엘상 24장1절은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라고 기록하고, 역대상 21장1절은 같은 사건에 대해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고 말한다. 

 

 같은 사건을 두고 한 쪽에서는 하나님께서 일을 벌이신 것처럼, 다른 쪽은 사탄이 배후에 있는 것처럼 묘사한다.
 그러나 사실 이 대목은 열왕기상 9장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여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이란 구절에 종속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격동시켰든, 사탄이 다윗을 충동질 했든, 여호와께서 사탄을 시켜 인구조사를 하게 만들었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윗의 부적절한 행위 자체를 하나님께서 덮으신 뒤 온전하고 바르게 행한 것으로 여기시기로 하나님께서 이미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성경의 포커스는 등장인물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계획, 은혜에 맞춰져 있다. 

 

 그런 면에서 솔로몬 한 사람의 출생과 일생 말년을 통해 읽어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다. 짐승1천 마리로 번제를 드렸다거나 누구보다 뛰어났던 지혜, 그가 누렸던 어마어마한 경제적 축복 등에 관심을 갖는 것은 핵심에서 벗어난다. 

 하나님은 사무엘하 7장에서 다윗과 언약을 맺으신다.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12절)”는 것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16절)”는 말씀이다.
 역사의 관점으로만 보면 다윗에게 주신 언약은 아들 솔로몬을 지나기도 전에 깨져버렸다. 솔로몬의 불순종으로 그의 아들 대에서 이스라엘은 남왕국과 북왕국으로 갈라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온갖 우상을 섬겼던 솔로몬은 저주를 받아야 마땅하다.  
 

 

 솔로몬의 삶은 인간에게 하나님과의 언약을 수행할 자격이 없음을 보여준다. ‘여호와께 사랑 받은 인간’ 마저도 결국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육체의 정욕을 따라갔다. 십계명 가운데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제1계명조차 인간은 지켜낼 능력이 없다. 
 

여호와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이라는 조건을 다셨는데, ‘온갖’이라는 단어 속에 이미 솔로몬의 불가능이 내포돼 있다. 
이는 바울이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라디아서 3장10절)”고 기록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모든’과 ‘항상’이라는 조건에 걸려있는 인간은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저주 아래서 빠져나올 수 없다.

 

  그렇다면 언약을 성취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하다. 그분 스스로 언약을 성취하신다.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씨’는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이삭과 야곱,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어떻게 성취하실 것인가를 설명하는데 동원된 인물이다. 

 

 인간 대표’ 세상 왕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쪽에서의 불가능을 드러냄으로서 반드시 여호와의 능력과 은혜가 아니면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친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아브라함과 다윗, 이삭과 솔로몬의 죄를 덮어쓰고 대신 죽으셔야 했다. 그것이 갈보리의 십자가다.

 

 솔로몬 왕이 사용하던 그릇은 모두 금이다.(열왕기상10장) 은은 아예 보석귀물로 취급하지도 않았다. 또 그는 하루에 살진 소 10마리, 양 100마리, 사슴 노루 등을 하루 음식재료로 소비했다. 그러면서 예루살렘을 우상 소굴로 만들었다.  

 

 그가 전도서에서 내놓은 고백은 이것이다.
 “내가 내 마음 속으로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내가 내 마음 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3장 17~18절)

 

 솔로몬은 자신이 짐승과 다를 바 없는, 개차반이란 사실을 평생을 통해 절감했다. 그것이 율법 아래 속하지 않고, 은혜 아래서 살다간 임금이 기필코 살아내야 하는 일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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