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임금이로소이다(상)

 

유력한 집안에 잘 생긴 젊은이가 있다. 그 지역에서 그보다 잘 생긴 남자가 없으며, 다른 사람들보다 어깨 위가 더 있을 만큼 키도 컸다. 게다가 유력했다고 전해진 자신의 집안을 “보잘것없다”고 낮출 정도로 성품까지 겸손했다. 인간들이 갖고 싶은 모든 조건을 갖춘 그는 고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이다.

 

구약성경에서 사무엘 선지자가 일하던 막바지, 그러니까 사사시대 말년에 암몬 족속이 왕 나하스를 앞세워 이스라엘을 치려 했다. 위기감을 느낀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 선지자에게 몰려갔다. “우리를 다스릴 왕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도록 요청한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왕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대신 눈에 보이는 지도자를 원했다. 

 

하지만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신뢰를 저버린 행위였다. 그들은 출애굽 이후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고 그분께만 복종하기로 약속했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백성들이 너에게 한 말을 다 들어 주어라.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서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라(사무엘기상 8장7절, 새번역)”고 말씀하셨다. 사무엘은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왕 되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삼상12장12절)고 기록한다. 

 

그리고는 희한한 이야기를 하신다. “이제 너희가 구한 왕, 너희가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사무엘상 12장13절)고 말씀하시고, “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왕)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삼상 12장21절)고 경고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왕을 세웠을 때 벌어질 일을 미리 아셨다.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유익하게도, 구원하지도 못 하며 왕을 세우는 것 자체가 다만 헛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선지자 사무엘을 시켜 굳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다. 

 

사무엘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12장25절)고 부탁했다. 왕을 세우게 허락하시고, 그것이 헛되다고 하시고, 나아가 그를 따르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고는 사울을 왕으로 세우기에 앞서, 이스라엘이 처음 선지자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했을 때부터 주어졌다. 사무엘상 8장18절에서 하나님은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셨다.

 

 사울 왕의 모든 생애와 에피소드를 들여다볼 때 이런 상황을 종합해서 이해해야 한다. 사울이 왕에 등극한 뒤 이어지는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앞서 경고하신 내용에 수렴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이스라엘, 나아가 인류 전체의 역사와도 맥락이 같다. 창세기 이후 구약 사무엘상까지 오는 과정에 이스라엘이 한 일이라고는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모든 순간 세상나라 이방신을 섬긴 것뿐이다. 따라서 사울이 왕으로 부름을 받아 기적을 체험하고, 암몬 족속을 쳐부수고, 블레셋과 싸우고, 여호와의 영이 임해 새사람이 되어 예언을 했더라도 그것은 망하는 길로 걸어가는 단계에 불과했다. 

 

그 압축판은 사무엘상 15장에 등장하는 아말렉과의 전쟁 이야기다. 여호와께서는 사울에게 선지자 사무엘을 보내 “그들의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전쟁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아말렉 왕 아각을 사로잡았고, 적군 대부분을 전멸시켰다.

 

하지만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선악지식을 앞세워 판단했을 뿐, 전혀 따르지 않았고 오히려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염소를 끌고 왔나이다”하고 변명한다.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던 아담과 하와의 모습이 사울왕에게도 그대로 드러난다. 하나님의 명령보다 자기 생각을 앞세운 것이다. 그것을 제사라는 명목으로 포장까지 했다. 이것은 사울이 지위와 직책으로서 왕의 자리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대표로서, 여호와 하나님 머리 위에 올라 앉아, 그분의 명령까지도 가볍게 무시하는 진짜 임금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사무엘은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선언한다.

 

많은 오해가 여기서 발생한다. 사울의 불순종 때문에 왕에서 퇴출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 사울과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예견된 것이었다. 실제로는 사울이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여호와께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이미 창세 전에 버림받았던 결과가 아말렉과의 전쟁 사건을 통해 재차 확인된 것뿐이다. 

그런 면에서 사울은 복음의 내러티브에서 버림 받는 역할 수행을 위해 이스라엘 첫 왕의 자리에 오른 자였다. 그런 하나님의 계획이 역사 속에서 한치의 오차 없이 이뤄진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대목에 오면 인간을 ‘하나님의 모형과 형상을 지닌 고귀한 존재”라고 믿는 쪽에서는 큰 소리로 항변한다.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인간의 운명을 가지고 그렇게 장난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실제 그런 하나님이라면 절대로 믿거나 인정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쌓은 지식과 경험, 주변 상황을 참조해 닥쳐오는 불안과 공포를 이겨내려고 한다. 특히 인간의 유한성 앞에서 두려움은 더 커진다.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한 것도 이런 두려움 앞에서 자신들을 위해 앞장서서 대신 싸워줄 구원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세운 왕과 그런 통치자를 원하는 백성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손바닥에 ‘왕’ 글자를 새긴 임금이 출현했다 할지라도 ‘너희와 너희 왕이 다 같이 멸망하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사울이 함께 망하는 이유는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삼상12장25절)에 설명되어 있다. 선지자 사무엘은 사울 왕을 세우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요약한다.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후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김으로 범죄하였다”(12장10절)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 내내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을 쫓던 그들이, 키 크고 잘생겼으며 전쟁에 능하고 카리스마까지 갖춘, 원하는 왕을 세웠다고 해서 여호와만 섬길 리 만무하다.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과 사울 왕의 이야기에 한정되지 않는다. 역사를 통틀어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의 이야기다. 그들이 노리는 것이 하나님을 밀어내고 ‘왕’이라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를 왕좌에 앉힌다. 그것이 성경이 지적하는 악의 실체다.
그러나 죄에 빠진 인간이 왕의 자리에 앉을 때 그들은 반드시 멸망한다. 유일한 왕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기 때문이다. 인간을 대신해 악마와 싸워주실 분, 대신 죽으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없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을 품어 안고 먼저 죽음의 자리로 끌고 간다. 만사형통이 아니다. 왕의 자리를 탐하다 저주에 빠진 죄인과 함께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는 것, 그것이 성경의 복음이다. 그것이 진짜 왕의 역할이다. 
사울 왕은 그의 실패와 불순종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존재다.
(사람 낚는 예수, 사람 잡는 복음, 부크크출판사에서 일부 인용)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CA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