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를 일컬어 정보 홍수의 시대라고 한다. 손바닥 안에 있는 전화기에 몇 자를 처넣기만 하면 세상의 온갖 지식과 정보들이 금방 쏟아져 나온다. 그 조그마한 기계 속에 웬만한 도서관보다 더 많은 정보가 담겨 있어 사전이나 지도책, 전화번호부는 물론이고 수만 권의 장서도 필요가 없어졌다. 불과 1-2십 년 전까지도 아이들이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노래를 부르곤 했었는데, 근래 들어서는 인터넷과 유튜브 덕분에 누구나 텔레비전 방송을 내보내고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문자 그대로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이다. 요즘 나는 중국을 좀 더 깊이 이해하려고 중국계 캐나다인 잰 웡이 쓴 ‘레드 차이나 블루스(Red China Blues)’란 책을 읽고 있다. 저자는 맥길대학을 다니던 1972년 모택동 사상에 매료되어 중국 당국에 끈질기게 간청한 끝에 마침내 비자를 받아 공산화된 중국에 유학한 최초의 서방국가 출신 학생 두 명 중 한 명이다.한창 감수성과 지적 욕구가 강하면서 세상과 기성세대에 대한 삐딱한 시선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인 대학 초년생이었던 열아홉 살의 저자가 ‘사회주의 천국’에 대한 환상에 젖어 마침내 그 ‘천국’으로 직접 들어가서 노동자계급 ‘동무’들과 같이 섞여서 땀 흘리며 육체노동을 하며 자신 속에 마지막 남아 있는 브르죠아 근성을 말끔히 씻어낼 기회를 잡았다고 흥분해서 여행을 준비하는 이야기로 책은 시작한다.이 후 북경대학에서 유학 중에 겪었던 일들과 나중에 신문사 특파원으로서 목격한 1989년 천안문 사태까지 자세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책이다. 접시물보다도 얕은 지식을 가졌으면서도 스스로 대단한 지성인인 듯한 착각에 빠져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 인과의 대화’ 같은 책들을 가슴 두근거리는 충격을 안고 읽어 내려갔던 대학 초년생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라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다. 그 책 내용 중에는 서방 언론과 관련된 흥미로운 내용이 하나 있었다. 북경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자기의 꿈같은 북경 생활을 자기 혼자 누릴 게 아니라 서방세계에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잰은 미국의 대표 신문사 세 군데와 캐나다의 한 신문사에 편지를 보내 북경대학에서의 생활을 알리는 기사를 써서 보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 중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신문사에서는 기사를 보내주면 수정 없이 실어주겠다고 바로 답이 왔다.이어서 뉴욕에 있는 신문사에서도 답이 왔는데 내용은 이랬다. “우리가 가장 염려하는 건 내용의 정확성입니다. 절대적으로 편견도 없고, 당국의 검열로부터도 완전히 자유로운 정확성을 보장할 수 있느냐하는 겁니다. 당신에 대해 더 많은 걸 알지도 못 하고, 당신의 신뢰성에 대해 더 조사해 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 일을 더 이상 진행하기는 곤란합니다.”워싱턴과 캐나다 신문사에서는 아예 답이 오지 않았다. 뉴욕에서 날아온 답장에 기분이 상했던 잰은 결국 아무 매체에도 기사를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소련과 중국을 각각 ‘철의 장막’, ‘죽의 장막’이라 부를 정도로 공산권 국가에 대한 정보가 극히 제한적이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그 장막 내부에 직접 들어가 살고 있는 서방국가 출신 대학생이 보내오는 생생한 스토리는 누가 보더라도 대형 특종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신문사는 그 내용의 신뢰성을 문제 삼아 그렇게 거절했다는 사실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2014년 3월 12일 뉴욕 맨해튼에서 대형 아파트 폭발 붕괴사고가 터졌다. 사고가 나자 CNN을 비롯한 미국 언론매체 웹사이트들은 시시각각 올라오는 속보와 긴급 뉴스들로 도배질이 되었다. 사고가 난 아파트는 위에서 언급한 뉴욕 소재 신문사의 본사에서 채 20분이 안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언론사인 이 신문은 사고가 발생한 즉시 20여 명의 취재인력을 투입해 취재에 나섰다.그럼에도 이 신문이 ‘뉴스속보’란 이름으로 건물 붕괴 소식을 처음 전한 건 사고 발생 후 1시간 45분이나 지난 이 날 오전 11시 16분이었다. 오후 들어서도 관련기사는 3개가 고작이었고, 저녁에 다섯 개로 늘었다. 그 즈음에는 이미 한국 언론들조차 웹사이트에 관련기사를 3-6개씩 올려놓은 뒤였다. 당시 이 신문의 편집국장 질 에이브럼슨은 거의 사흘 밤낮을 회사에 머물며 정확하게 확인된 기사만 내보냈다. 덕분에 속보경쟁속에서 몇 건씩 오보를 내보냈던 대부분의 다른 매체들과는 달리 이 신문은 한 건의 오보도 내지 않았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어디에서나 늘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나라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언론매체를 통해서 파악하고 이해한다. 요즘은 신문, 방송, 잡지 등 전통적인 형태의 언론매체 외에도 인터넷을 통한 정보들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역사상 어느 때보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들을 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다.그런데, 희한하게도 예전에는 신문 한 두개만 읽으면 대충 세상 돌아가는 소식과 정보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 수 있었는데,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그리 간단하지가 않게 되었다. 정보가 홍수를 이루다 못해 쓰나미로 밀려들지만 정작 그 중에서 어느 것이 정확하고 믿을만한지 판단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는 정보들이 홍수를 이루다 보니 보통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가짜와 진짜를 가릴 방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정보 소스들만 골라서 보게 되고, 그런 확증편향적인 성향은 점점 더 한 쪽으로만 쏠리게 되어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균형감각을 잃어버리고 정보의 쓰나미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몇 해전 내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한동안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칼럼 글을 많이 썼던 적이 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 시사칼럼 쓰기를 중단하고 말았다. 칼럼의 소재가 되는 사건, 사고, 또는 사회현상에 대한 실체 파악에 점점 더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한국 내 뉴스와 관련해서 더욱 두드러졌다. 실체적 진실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위에 언급한 신문과 유사한 노력을 하는 매체는 단 한 곳도 찾을 수 없었다.그 동안 한국 정치와 사회에 관한 시사칼럼을 꽤 많이 써왔으면서도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나는 단 한 줄도 쓴 적이 없다. 아직도 온갖 주장들만 난무할 뿐 실체적 진실을 파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자살, 대통령 탄핵, 4대강 녹조 논쟁, 여객선 침몰사고에서부터 최근의 JTBC 사장 과천 접촉사고, 조국 관련 뉴스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정보가 혼란스럽지 않은 게 없다. 실체를 파악하려고 깊이 들여다 보면 볼수록 진실은 점점 더 흐릿해져서 안갯속을 헤매게 된다.이런 경향은 근래 들어 점점 더 심하게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있고 영향력이 큰 사건이나 사고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똑 같은 사안을 놓고 한 쪽에서는 “이 것은 누가 보더라도 A임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라고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이 것이 B인 것은 재론의 여지없이 명명백백함에도. ”라고 한다. 그러면서 “저 사람들의 뇌구조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저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서로 상대편을 한심하게 생각한다.그러니 둘 중 어느 편도 아닌 사람이 그 사안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저 양쪽 얘기를 들어서 대충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보통 상식을 가진 사람이 파악할 수 있는 ‘명백한 진실’은 ‘A나 B 중 하나는 진실이 아님이 명백하다’는 사실뿐이기 때문이다.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어떤 사안에 대한 건전한 토론은 고사하고, 그 시작점이 되어야 할 ‘실체적 진실’에 대한 합의 자체가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건전한 비판도, 토론도 불가능하다. 오직 핏발 어린 주장과 우격다짐과 상대방을 향한 증오와 경멸만 난무할 뿐이다. 우리 시대의 비극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인의 정서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恨)의 정서’이다. 근대화 이전 왕조시대에는 어느 민족이나 서민들은 다 핍박 받으며 고달프게 살았지만, 한국인들 머리 속에는 “부모를 잘 못 타고나서 그렇지 내가 너보다 못 할 게 없는데…”하는 생각이 유난히 강하다 보니, 똑같이 핍박 받고 수난을 당하더라도 속으로 느끼는 억울한 생각이 훨씬 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나와 같아야 할 사람들이 나보다 잘 살고 있는 게 보이니 늘 현실이 불만스럽고, 삶 자체가 억울한 생각이 든다. 이 억울한 마음이 속으로 쌓이고 쌓여 응어리진 것이 바로 ‘한국인의 한’이다. 평등의식이 강하다 보니 “네가 하는데 나라고 못 할까?”하는 마음에서 남들이 하는 걸 따라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유행이 급속도로 번져나간다. 당장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에서도 남들보다 처지는 걸 참을 수 없어 너도나도 뜯어고쳐야 직성이 풀리니 성형천국이 될 수 밖에 없다. 기질적으로 남이 나보다 잘 났다는 걸 인정할 수가 없으니 사촌이 나는 못 사는 논을 사면 배알이 꼬이고 속이 불편하다. 평균적으로 아무리 잘 살아도 ‘나보다 잘 난 게 없는 남’이 나보다 더 누리고 사는 걸 참을 수가 없으니 늘 불만족스럽고, 온 나라가 지옥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다. 평등해야 할 삶의 모습이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고 이를 극복할 길도 보이지 않으니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어릴 때 시골에서는 어쩌다 기차나 버스가 지나가면 동네아이들이 거의 예외 없이 길가에 나와서 승객들을 향해서 쑥떡을 먹이곤 했다. 자유당시절 미국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시골길을 지날 때 예외 없이 쑥떡을 먹였는데, 이 걸 보고 미 대통령이 “저게 뭐 하는 거냐?”고 물으니 옆에 있던 통역관이 민망하여 아이들이 환영인사를 하는 것이라고 둘러대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엉뚱한 방향으로 일이 커지고 말았다. 경무대에서 이 대통령을 만났을 때 미 대통령이 한국식 인사를 한답시고 이 대통령에게 쑥떡을 먹여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아이들은 왜 그렇게 외지인이 지나가기만 하면 쑥떡을 먹였을까? 시골아이들이 보기에 기차나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뭔지 모르게 자기들보다는 좀 잘나 보이니까 ‘니들이 뭐가 그리 잘 났냐?’하는 심리가 깔려 있지 않았을까? 즉, 무의식 중에 핏속에 흐르는 평등의식이 발동해서 나타난 본능적인 행위가 아니었을까? 항간에 유행하는 유머에 ‘x도 모르는 게 면장’ 시리즈가 있다. 유머도 시대를 따라 변해간다. 70년대 ‘최불암 시리즈’에서부터 맹구, 아줌마… 등을 거쳐서 최근에는 ‘아재개그’가 유행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면장’시리즈는 수십 년이 지나도 약간씩 버전을 달리 해가며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누구나 몇 번씩은 들어서 아는 내용인데, 어느 시골면장이 길을 가다가 꼬마아이의 고추를 가리키며 짓궂게 “이 게 뭐야?” 했더니 나중에 그 아이가 뒤돌아 가면서 “x도 모르는 게 면장이라고…” 했다는 게 원전(?)이다. 이 유머가 최근에는 “개x도 모르는 것들이 정치를 한다고…”라는 버전으로 변해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인터넷 검색을 해 보시길…) 이런 류의 유머가 대중들 사이에서 꾸준히 인기를 끄는 것도 높은 자리에 앉아 행세를 하며 거들먹거리는 자들을 ‘뭣도 모르는 자들’ 즉, 나보다 별로 잘 난 것도 없는 자들로 치부하려는 내면심리와 잘 맞아 떨어져 본능적으로 공감을 일으키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보기에 우리 한국인들의 핏속에는 태생적으로 이런 평등의식이 깊이 박혀 있다. 이런 유별난 평등의식은 우리사회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긍정적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태생적으로 타고나는 의식구조를 바꿀 수는 없으므로, 이런 우리의 특성이 우리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긍정적인 사회적 에너지로 발현되도록 지혜를 모아야겠다.
우리는 왜 그럴까? (1) 나는 평소에 다른 민족에 비해 한국사람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이한 행태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래서, 그런 특이한 행태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하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해보곤 한다. 흔히들 얘기하는 한국인의 특이한 점을 나열해 보면, 1.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생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한다. 미국(60%대)이나 영국과 독일(40%대) 등 어느 선진국과 비교를 하더라도 월등히 높다. 2. 한국은 세계역사상 유례없이 빠른 기간에 왕조국가에서 민주국가로의 변신에 성공한 나라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나면, 그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누가 이기든 뭔가 부정이 개입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당선자를 원천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4. 무슨 단체든 분열이 잘 된다.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사는 한인들의 모임인 한인회나 실업인협회, 노인회 등을 봐도 회장선거의 후유증이 없는 경우가 드물다. 늘 부정이 있었다거나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거나 하는 이유를 들어 승자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5. 한국인들은 좀처럼 같은 한국인을 존경하지 않는다. 특히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인물의 경우에는 자기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더라도 웬만해서는 존경을 받기 힘들다. 6. 한국인들은 한(恨)이 많은 민족이라고 한다. 따지고 보면, 근대 이전의 시대에 살았던 서민들 치고 지배계층에 억눌리고 시달리며 고달프게 살지 않은 민족이 어디 있었겠는가?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유독 한이 많다고 한다. 7. 한국인들은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 8. 한국에서는 뭐든지 유행을 타기시작하면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무서운 속도로 번진다. 그래서, 패션이든 문화현상이든 정치든 일단 ‘바람’이 한번 일어나면, 삽시간에 들불 번지듯 퍼져나간다. 9. 객관적으로 봤을 때 지금 한국은 어느 선진국 못지 않게 풍족하게 누리며 잘 살고 있으면서도 ‘헬조선’이라고 아우성치면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게 살고 있는 듯이 불평을 한다. 10. 세계에서 자살률이 최고로 높다. 도대체 우리는 왜 그럴까? 위에 열거한 현상들은 각각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들이겠지만, 일견 서로 전혀 상관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런 현상들의 배경에는 뭔가 공통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런 고민 끝에 내 나름대로 얻은 결론은 ‘한국인들의 유별난 평등의식’이 이런 현상들의 이면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옆집 아이가 대학을 가는데 우리 애가 대학을 가지 않는 걸 참을 수가 없다. 부모들이 모인 자리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우리 애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한다.”는 말이다. 비록 대학을 못 갔더라도 명문대학에 입학한 아이보다 결코 능력이 처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너보다 못 한 게 없다는 평등의식이 태생적으로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도나도 기를 쓰고 대학을 가서 나도 대학출신대열에 들어서 평등해져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한국은 엄격한 계급사회인 왕조체제를 과거 수천년 동안 유지해 왔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수십년만에 계급의식과 왕조체제의 잔재를 완벽하게 없애고 선거에 의한 민주정치체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이는 세계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한국인의 핏속에는 민주주의의 기본인 평등의식이 이미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선거후에는 늘 그 결과에 깨끗이 승복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선거를 치를 때도 내가 (또는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상대방보다 못할게 없다는 의식이 너무 강하다 보니 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일이다. 태생적으로 타고난 평등의식이 내가 남에게 밀리거나 졌다는 사실을 용납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남이 나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드니 웬만해서는 누구를 존경하기도 어렵다. (다음 호에 계속)
[문성모 풀이본]기미 독립선언서-문성모(목사, 전 서울장신대총장, 박재훈 큰빛교회 원로목사 자서전 저자, 우리는 지금 우리 조선이 독립국가이고 조선 사람이 자주국민인 것을 선언한다. 이것을 세계 모든 나라에 알리어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밝히며, 이것을 자손만대에 일러주어 민족자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지니게 하려 한다. 반만년 역사의 권위에 근거하여 이를 선언함이며, 이천만 민중의 충성을 합하여 이를 널리 밝힘이며, 민족의 한결같은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의 양심에서 비롯된 세계 개조의 큰 흐름에 함께 발맞추어 나아가기 위하여 이를 표명함이니, 이는 하늘의 명령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온 인류가 함께 더불어 살아갈 권리를 위한 정당한 움직임이라. 천하에 어떤 것도 이를 저지하거나 탄압하지 못할 것이라.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와 강권주의의 희생제물이 되어 역사가 시작된 지 수천 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압과 고통을 당한지 이제 10년을 넘은 지라. 우리의 생존권을 박탈당한 것이 무릇 얼마이며, 정신적 발전의 장애가 무릇 얼마이며, 높은 민족적 존엄성의 훼손이 무릇 얼마이며, 창의적이고 특별한 독창성을 가지고 세계문화의 큰 물줄기에 기여하고 도움을 줄 기회를 잃음이 무릇 얼마인가? 아, 슬프다. 지난날의 억울함을 풀어버리려면, 오늘날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장래의 위협을 제거하려면, 짓눌린 민족적 양심과 구겨진 국가적 체면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각 개인의 건강한 인격적인 발전을 이루려면, 불쌍한 자식들에게 수치스런 유산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그리고 자손만대에 길이길이 완전한 행복을 누리게 하려면, 가장 시급한 일이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찾는 것이라. 이천만 각 사람마다 마음의 칼을 품고 있고, 인류 공동의 성품과 시대적인 양심이 정의의 군사가 되고 인도적인 무기가 되어 우리를 응원하는 오늘날, 우리가 나아가 독립을 쟁취하려는 일에 어떤 강자를 꺾지 못하랴, 물러나 일을 도모함에 무슨 뜻을 펴지 못하랴. 병자년의 수호조약 이래 시도 때도 없이 여러 번 갖가지 약속을 어기었다 하여 일본의 배신을 탓하려 하지 아니한다.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현실사회에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나라를 식민지로 여기고 우리 문화 민족을 야만인 취급하여, 한갓 정복자로서의 쾌락을 탐낼 뿐 아니라, 예로부터 다져온 우리의 사회적 기틀과 뛰어난 민족적 심리를 무시한다 하여 일본의 의롭지 못함을 책망하려 하지 아니한다. 스스로를 자책하기에 급한 우리에게는 남을 원망하고 꾸짖을 겨를이 없다. 현재를 수습하기에 바쁜 우리에게는 옛날을 따지며 응징할 겨를이 없다.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과제는 오직 자기의 건설에 있을 뿐이요 결코 남을 파괴하는데 있지 아니하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에 따라 우리 자신의 새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요, 결코 옛 원한과 일시적 감정으로 남을 미워하여 물리치는데 있지 아니하다. 낡은 사상과 낡은 세력에 얽매인 일본 정치가들의 공명심에 의해 만들어진 부자연스럽고 순리적이지 못한 그릇된 상태를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사리에 맞는 바른 길과 큰 원칙으로 돌이키려 할 따름이라. 처음부터 이 겨레의 요구에 의해 나온 것이 아닌 두 나라의 합병의 결과가 마침내 억압에 의한 당장의 위안과, 차별에서 오는 불평과, 거짓된 통계수치 아래에서, 이해가 상반된 두 겨레 사이의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골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오늘까지의 실상을 살펴보라. 용기를 가지고 과감하게 지난날의 잘못을 바로잡고 진정한 이해와 동정에 기초한 우호적인 새 시대를 여는 것이 서로 간에 화를 멀리하고 복을 부르는 지름길임을 밝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또한 울분과 원한이 쌓인 2천만 백성들을 무력으로 억압하는 것은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일이 아닐뿐더러, 이로 말미암아 동양의 안전과 위태로움을 좌우하는 4억 중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두려움과 시기를 갈수록 고조시켜서 그 결과 동양의 모든 나라가 함께 쓰러지고 망하는 비운을 초래할 것이 뻔하니, 오늘 우리 조선의 독립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존과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유지하는 자로서의 중책을 온전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꿈에도 피하지 못하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며, 또 동양의 평화가 중요한 일부가 되는 세계평화와 인류복지에 필수적인 단계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이 어찌 사소한 감정상의 문제이겠느냐! 아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구나. 위력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는구나. 지나간 한 세기 동안에 갈고 닦고 오래 길러온 인도적 정신이 바야흐로 새 문명의 서광을 인류의 역사에 비추기 시작하는구나. 새봄의 빛이 세계에 찾아 들어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는구나. 한겨울 얼음과 찬 눈에 숨이 막힌 것이 지난 시대의 형편이었다면, 훈훈한 바람과 따사로운 햇빛에 기가 살아나고 맥이 뛰는 것이 이 시대의 대세이다. 그러므로 천지에 봄기운을 만나고 세계의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탄 우리는 아무런 주저함이 없으며 거리낄 것도 없다. 우리가 본래부터 타고난 자유권을 회복하여 즐거운 삶을 온전히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이 가득한 세상에 민족적 우수성을 꽃피울 것이다. 우리들이 이에 분연히 일어난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나아가고 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음산한 헌 집에서 지체 없이 뛰쳐나와 삼라만상과 더불어 즐거운 부활을 만끽하게 되는구나. 천백 세에 걸친 조상의 영이 안에서 도우며 온 세계의 기운이 밖에서 보호하나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앞에 놓인 광명을 향하여 달음질쳐 나아갈 따름이라. 공약 3장 1. 오늘 우리의 이 거사는 정의?인도?생존?존영을 위하는 민족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만 나타낼 것이요, 결코 배타적인 감정으로 달리지 말라. 1. 최후의 한 사람까지 최후의 한 시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거침없이 나타내라. 1. 일체의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의 주장과 태도로 하여금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조선건국 4252년 3월 1일 조선민족대표(朝鮮民族代表) 손병희(孫秉熙), 길선주(吉善宙), 이필주(李弼柱), 백용성(白龍成), 김완규(金完圭), 김병조(金秉祚), 김창준(金昌俊), 권동진(權東鎭), 권병덕(權秉悳), 나용환(羅龍煥), 나인협(羅仁協), 양전백(梁甸伯), 양한묵(梁漢?), 유여대(劉如大), 이갑성(李甲成), 이명룡(李明龍), 이승훈(李昇薰), 이종훈李鍾勳), 이종일(李鍾一), 임예환(林禮煥), 박준승(朴準承), 박희도(朴熙道), 박동완(朴東完), 신홍식(申洪植), 신석구(申錫九), 오세창(吳世昌), 오화영(吳華英), 정춘수(鄭春洙), 최성모(崔聖模), 최린(崔麟), 한용운(韓龍雲), 홍병기(洪秉箕), 홍기도(洪基兆)
옛 애국가 악보-2019삼일운동 100주년 기념예배 자료집에서 애국가 해설 현행 <애국가> 가사를 담고 있는 최초의 책은 윤치호 역술(譯述)로 1908년(융희 2년)에 발행된 ‘찬미가’(재판)이다. 이 책에는 제1, 10, 14장에 각각 다른 가사의 애국가가 수록되어 있다. ‘찬미가’는 공식적인 찬송가는 아니었지만, 애국가 가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아야 한다.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곡조에 맞추어 불렸던 옛 애국가 가사는 안익태의 애국가 곡이 정해지기 전까지 사용되었으므로 삼일운동 당시에도 이 곡들이 애국가로 불려졌다. 위의 가사 중 제1장은 “우리황상폐하”로 시작하는 애국가인데, 제목은 ‘KOREA’로, 곡명(Tune Name)은 ‘AMERICA’로 기록되어 있다. 멜로디는 현행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의 곡조와 같은데, 이는 영국 국가의 멜로디이다. 제10장은 1절이 “승자신손 천만년은”으로 시작하는데, 그 후 연대 미상(1905-1907년 사이로 추정)의 ‘도산본창가집’과 ‘대한매일신보’(1907.10.30)에는 무궁화가(無窮花歌)라는 제목아래 “성자신손(聖子神孫) 오백년은”으로 바뀌었고, 3절의 “이천만인”도 “천만인”으로 고쳐졌다. 곡명은 올드 랭 사인으로 현행 찬송가 280장의 곡(천부여 의지 없어서)이다. 제14장은 제10장과 제목(Patriotic Hymn)이나 곡명이 동일하다. 그리고 후렴 부분(무궁화 삼천리…)도 일치한다. 그러나 가사의 첫머리가 지금의 <애국가>와 같은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한다. 즉 현행 <애국가> 가사의 원형인 셈이다. 옛 가사대로 소개한다. 1. 동해물과 백두산이 말으고 달토록 /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대한 만세 2. 남산 우헤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 바람이슬 불변함은 우리 긔상일세 3. 가을하날 공활한대 구름 업시 높고 /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4. 이 긔상과 이 마음으로 님군을 섬기며 / 괴로우나 질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위의 가사 중 현행 <애국가> 가사와 다른 부분은 1절의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대한”, 2절의 “남산 우헤”와 “바람이슬”, 3절의 “구름 업시 높고”, 4절의 “님군을 섬기며 괴로우나 질거우나”등이다. 이렇게 삼일운동 전에 기독교가 민족종교로서 성장하는 과정이 찬송가집의 노래들을 통하여 보여지며 오늘날 한국 기독교에 교훈하는 바가 크다.
어버이날 편지 내가 이 세상에서 젤루 사랑하는 우리 아빠께! 아빠! 저 예지예요. 저는 4학년인데도 2학년 애들처럼 아빠께 짜증을 부리지요? 아빠! 이제는 의젓한 예지가 되도록 노력할께요. 그리고 이제 곧 있으면 어버이날이지요? 저는 옛날 어버이날에는 그냥 카네이션만 달아드린 것 같아요. 이제는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게요. 그리고 아빠 젤~~~~~루 사랑해요! / 예지 올림 딸 키우는 재미가 아들 열배라더니 딸의 옛 편지 하나에 아빠가 된 수고로움이 모두 가시고 행복한 웃음만 남아 있다. -어린 딸 예지가 보낸 편지를 읽고
. 바닥 드러내는 유럽의 젖줄. "하루 살아내기가 버겁다
. 악어 입 결박해 수화물로. 멸종위기종 밀수조직 적발
. "형소법 조문 안봤다" 발언에. 여야 설전 격화
. 전국 온열질환자 208명. 올해 들어 최다 발생
. Wildfires continue to threaten BC Interior communities
. BLUE JAYS vs. ASTROS: Official Full Game Highlights (August 5
. ㅅㅗㄴㅏㅁㅜㅂㅓㅂㅁㅜㄴㅅㅣㅈㅡㄴ3 206ㅎㅚ | 의사도 설명 못합니다
. TV문학관] 175화 객지와 타향
. 8월 8일은 무궁화의 날입니다
아이디 또는 비밀번호가일치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