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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노인의 날을 기념하여 열리는 제14회 늘푸른팔도잔치 ‘한가위 대축제’
▶ 2026년 노인의 날을 기념하여 열리는 제14회 늘푸른팔도잔치 ‘한가위 대축제’ 2026년 노인의 날을 기념하여 열리는 제14회 늘푸른팔도잔치 ‘한가위 대축제’ 어느덧 14회를 맞이하면서 윗유튜브 영상은 작년(2025년)에 개최되었던 **‘제10회 늘푸른팔도 잔치’**의 실제 현장 기록입니다. 작년 행사에는 도윤주 사회자의 진행 아래 수많은 토론토 지역 시니어 어르신들이 모여 매우 흥겹고 정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0:04). 다채로운 전통 놀이와 게임: 현장에서는 커다랗게 제작된 특별 제기를 활용한 제기차기 대회가 열려 어르신들이 직접 무대 위에서 실력을 겨루었습니다 (2:46). 또한 흥미진진한 팔도 사투리 퀴즈 맞히기(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사투리 등) 프로그램이 진행되어 고향의 향수를 달랬습니다 (6:47). 풍성한 공연과 노래자랑: 추석 한가위 행사와 생일 잔치를 겸해 클래식 바이올린 연주부터 전통 가요, 신나는 트로트 음악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21:00). 어르신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애창곡을 부르는 노래자랑과 함께 흥겨운 춤판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34:59). 푸짐한 경품 추천 및 선물: 퀴즈와 게임에 참여하신 분들께는 로얄제리 영양제, 건강 가방 등의 선물이 증정되었으며, 행운권 추첨을 통해 18홀 골프 티켓, 찰옥수수 등의 풍성한 경품을 나누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2:23). 따뜻한 식사 시간: 1부와 프로그램이 마무리된 후에는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함께 모여 정성껏 준비된 식사를 나누는 따뜻한 연회의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22:12). ⚠️ 2026년 14회 행사와 작년 영상의 차이점을 보면 올해 열리는 제14회 축제는 작년과 비교해 몇 가지 중요한 변경 사항이 있으므로 방문 전 꼭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구분 2025년 행사 (영상 내용) 2026년 예정 행사 (포스터 내용) 행사 장소 사리원 2층 대연회장 (실내) G Ross Lord Park Area #1 (야외 공원) 식사 형태 연회장 실내 요리 야외에서 즐기는 바베큐 파티 개최 일자 2025년 10월 7일 (화) 2026년 10월 1일 (목) 올해는 실내 연회장이 아닌 **넓은 야외 공원(G Ross Lord Park)**에서 시원한 가을바람과 함께 바베큐 파티로 진행되는 만큼, 작년보다 훨씬 더 활기차고 소풍 같은 분위기의 축제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행사 개요 일시: 2026년 10월 1일 (목요일) 낮 12:00부터 장소: G Ross Lord Park (Area #1) (주소: 4801 Dufferin St, North York, ON) 대상: 65세 이상 시니어 어르신들을 모십니다. 참가비: $10 행사 프로그램 축제는 총 2부로 나누어 진행되며, 야외에서 즐기는 바베큐 파티가 함께 준비되어 있습니다. 1부: 노인의 날 기념식 2부: 한가위 축제행사 주최 및 후원 단체 주최/주관: EVERGREEN PALDO (늘푸른팔도투게더) 미디어 후원: 캐나다코리안뉴스 후원·참여단체: 해피시니어센터, 토론토한인노인회, 성인장애인공동체, 스마일싱어롱, 슬로우조깅동우회, 캐나다파크골프협회, 고려한의원, 뷰젠보석, 데이빗헬스, 서울감자탕
cook
2026-09-17
제네시스 마그마 GT3 최초 공개, 르망 현장!. 페라리 뛰어넘는 단언컨대 세계 최고의 디자인!
lucasyun
2026-09-17
모든 여성은 부분적 또는 완전히 옷을 벗은 채로 발견됨". 시신 연쇄 발생 후 비상사태 선포.
. 모든 여성은 부분적 또는 완전히 옷을 벗은 채로 발견됨". 시신 연쇄 발생 후 비상사태 선포.
jny0801
2026-09-17
이란의 최악의 악몽: 사우디아라비아가 방금 꺼낸 절박한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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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ny0801
2026-09-17
해바라기 씨 봉투에 필로폰. 마약 유통 조직 무더기 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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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ny0801
2026-09-17
TIGERS vs. BLUE JAYS: Official Full Game Highlights (September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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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my42
2026-09-16
제네시스 마그마 GT3 최초 공개, 르망 현장!. 페라리 뛰어넘는 단언컨대 세계 최고의 디자인!
lucasyun
2026-09-16
한국 선수, 다시 기적을 만들다! 어쩔 줄 모르는 마롱|마롱 vs 이상수"
lucasyun
2026-09-16
뿌리와 홀씨 사이(상) ~[양경춘-재외동포 문학상 체험수기-수필 부문 가작]
[양경춘-재외동포 문학상 체험수기-수필 부문 가작] 뿌리와 홀씨 사이(상) 일러스트: AI 생성. *이 글은 토론토 양경춘 씨가 한국 재외동포청이 주관한 재외동포문학상 공모에서 체험수기-수필 부문 가작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상><하> 2번으로 나눠서 싣는다. 새벽 두 시. 나는 또 눈이 떠졌다. 알람은 맞추지 않았다.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이불을 젖히고 살며시 일어나 거실로 내려갔다. 어둠 속에서 손을 뻗어 의료용 침대 위 장모님의 몸을 천천히 돌려 방향을 바꿨다. 그 순간 장모님이 눈을 떴다. 말씀은 없으셨다. 나도 말하지 않았다. 이불을 여며 드리고 다시 조용히 침실로 돌아왔다. 문 앞에 서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대답은 쉽지 않았다. 사랑이라고 말하면 거짓은 아니지만 전부도 아니었다. 의무라고 말하면 더 정직하지 않았다. 어쩌면 진짜 이유는 이것이었다. 이민자로 살아온 사반세기 동안, 이 집 안이 내가 유일하게 완전히 속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이민자에게 ‘속한다’는 것은 국적이나 주소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곳에 있을 때 자신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가, 그 문제다. 캐나다에서 나는 늘 설명해야 했다. 내 이름의 발음을, 내 나라의 위치를, 내 경력이 왜 여기서는 통하지 않는지를. 그러나 이 집 안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냥 ‘사위’였고, 그걸로 충분했다. 장모님 가족이 토론토에 도착한 것은 1990년 가을이었다. 단풍이 절정이던 계절, 장인어른과 장모님, 처남들이 토론토 공항에 내렸다. 영어는 통하지 않았고, 돌아갈 수 없는 길이었다. 가족이 함께 편의점을 시작했다. 장모님은 새벽 일찍 나가 밤늦게 돌아오면서도 자식들 도시락만큼은 한 번도 빠뜨리지 않으셨다. 어린 시절 1·4 후퇴 때 빈손으로 이북을 떠나 낯선 남쪽 땅에 뿌리를 내리셨고, 쉰 중반의 나이에 다시 태평양을 건너셨다. 낯선 땅에서 살아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그분은 이미 몸으로 알고 계셨다. 1997년 겨울, IMF 외환 위기의 한복판에서 나는 가족의 손을 잡고 토론토에 왔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열한 살 아들이 물었다. “아빠, 우리 언제 다시 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창밖으로 서울의 불빛이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그 순간부터 나는 어느 쪽에도 완전히 있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대기업 부서장이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그 경력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수백 장의 이력서를 보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Canadian experience required.” 캐나다 경험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고, 일을 해야 경험이 생기는 진퇴양난. 나는 그 앞에서 매일 조금씩 낯선 사람이 되어 갔다. 결국 한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야간 헬퍼 일을 시작했다. 자정까지 계산대를 지키고, 음료 박스를 나르고, 새벽에 진열대를 채웠다. 영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계산하고, 영어로 웃었다. 집에 돌아오면 온몸이 납덩이처럼 가라앉았다. 그 첫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다. 거리마다 불빛은 화려했지만 우리 아파트는 조용했다. 한국이었다면 친척들이 모여 북적였을 시간, 우리는 작은 식탁에 둘러앉아 김치찌개를 먹었다. 창밖에는 눈이 내렸고, 아들은 말없이 영어 숙제를 하고 있었다. 이민이란 화려한 나라로 온 것이 아니라, 낯선 조용함 속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강추위가 몰아치던 1월 어느 날, 처음으로 장모님의 된장국을 먹었다. 빙판길에 두 시간이나 막혀 늦게 돌아온 나를 보시더니, 장모님은 말없이 냉장고를 여셨다. 따뜻한 된장국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나는 그 김이 사라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영어, 능력, 존재. 그러나 장모님의 밥상 앞에서는 그 어떤 증명도 필요 없었다.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내가 있어도 되는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그것이 내가 이 집에 속한 이유였다. 토론토의 봄은 늦게 온다. 긴 겨울 끝에야 얼어붙은 땅이 조금씩 숨을 돌리고, 무릎 높이까지 쌓였던 눈더미가 녹아내린 자리마다 작은 연둣빛 잎들이 고개를 내민다. 낮은 자리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는 것은 늘 민들레였다. 봄이 오면 주말 오후, 옆집의 다니엘과 말라 부부는 자기네 앞마당에 퍼진 민들레를 부지런히 뽑아냈다. 캐나다 사람들에게 민들레는 잔디를 망치는 잡초였다. 그러나 장모님은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못내 아까워하셨다. “이 귀한 걸 왜 뽑아 버리나?” 장모님은 낡은 호미를 들고 민들레를 캐셨다. 아무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을 찾아내어 제 것으로 만드는 사람의 표정이 그 얼굴에 서려 있었다. 바구니에 민들레를 가득 담으며 환하게 웃으시는 그 얼굴을, 나는 오래 바라보곤 했다. 그렇게 캐 온 민들레는 김치가 되어 식탁에 올랐다. 쌉싸름한 맛 속에 봄의 기운이 배어 있었고, 우리는 그 맛을 나누며 함께 웃었다. 나는 그때 몰랐다. 그 봄날의 풍경이 훗날 내가 가장 오래 붙잡게 될 기억이 될 줄은. 그 웃음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08년 무렵이었다. 했던 질문을 다시 하고, 물건을 엉뚱한 곳에 두는 일이 잦아졌다. 우리는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리고 2년 후 어느 날. 산책을 나간 장모님이 돌아오지 않았다. 세 시간이 지나서야 연락이 왔다. 큰 처남이 운영하는 11킬로미터 떨어진 리치먼드힐의 호텔이었다. 장모님은 몇 번 차를 타고 가 본 기억만으로 그 먼 길을 걸어가셨다. 호텔 로비에서 아들을 보자 환하게 웃으셨다고 했다. 그것은 단순한 길 잃음이 아니었다. 기억이 만들어 낸 선명한 현실을 향해 걸어가신 것이었다. 진단명은 알츠하이머성 치매였다. 처남들과 우리 부부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오래 침묵했다. 한국어만 쓰는 어머니를 영어권 요양 시설에 보내는 것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홀로 기억을 잃어 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여보, 우리가 모셔야 할 것 같아.” 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사위였다. 그 말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들렸지만, 사실 이미 선택은 되어 있었다. 이 집이 이 나라에서 내가 유일하게 속한 곳이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선택이 12년이 될 줄은 몰랐다. 처음으로 장모님의 몸을 직접 돌보아야 했던 날을 기억한다. 아내가 자리를 비운 오후였다. 나는 한참 문 앞에 서 있었다. 이것이 맞는가. 이것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인가. 기저귀를 갈아 드리고 나왔다. 아무도 보지 않았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 이후 나는 이 집에서 조금 더 편안해졌다. 마지막 경계가 사라진 사람만이 느끼는 그 편안함이었다. 한국의 관습에서 사위는 백년손님이다. 딸의 남편이 장모의 환부를 소독하고 연고를 바르고, 두 시간마다 체위를 바꾸는 일은 그 어떤 예절 책에도 나오지 않는 항목이었다. 캐나다에도 이 역할을 표현할 언어가 없었다. ‘son-in-law caregiver’라는 조합은 사전에 없었고,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도 없었다. 한국의 지인들은 “장하다”고 했고, 캐나다 동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문화 어디에도 내가 하는 일을 딱 맞는 언어로 설명할 자리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야겠다. 나는 이 12년을 아름답게만 기억하지 않는다. 두려웠다. 회의실에서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다가 전화기가 울리면 심장이 먼저 내려앉았다. ‘엄마가 또 나가셨어.’ ‘찾았어.’ 문자 두 줄이 하루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발표를 마치고 복도로 나와 벽에 기대는 때, 나는 내가 어느 쪽의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섭섭하기도 했다. 처남들은 각자의 삶이 있었다. 나는 사위였지만 주된 돌봄을 맡아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어디선가 만들어졌다. 그것에 대해 한 번도 크게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침묵은 때로 무거웠다. 짜증이 난 적도 있었다. 장모님이 같은 말을 몇 번씩 반복하실 때, 새벽 두 시에 또 현관 앞에 서 계실 때, 그 순간 내 안에서 올라오는 것이 연민만은 아니었다. 그것을 누를 때마다 죄책감이 따라왔다. 치매 환자에게 짜증을 내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 번은 출장이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순간 나는 안도했다. 장모님 곁을 지킬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흘 동안 이 집을 벗어날 수 있었는데 그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안도감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 나는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장 말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어느 날 장모님이 나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당신 누구요?” 그 말이 공기 속으로 스며드는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아주 잠깐, 해방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사실이 그 뒤로 오래 나를 괴롭혔다. <하>편으로 계속. 양경춘/토론토 출처 : https://torontokjournal.com/news/42881
cook
2026-09-16
뿌리와 홀씨 사이(하) ~ [양경춘-재외동포 문학상 체험수기-수필 부문 가작]
[양경춘-재외동포 문학상 체험수기-수필 부문 가작] 뿌리와 홀씨 사이(하) 일러스트: AI 생성. *이 글은 토론토 양경춘 씨가 한국 재외동포청이 주관한 재외동포문학상 공모에서 체험수기-수필 부문 가작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상><하> 2번으로 나눠서 싣는다. 어느 날 퇴근길이었다. 집 앞 골목에 차를 세우고 나는 한동안 시동을 끄지 못했다. 핸들 위에 이마를 얹었다. 눈물이 났다. 이유를 말하기 어려운 울음이었다. 무너진 것도, 억울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아주 오래 팽팽했던 어떤 것이 그 순간 갑자기 느슨해지는 것 같았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 몇 분이, 이상하게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나는 성인(聖人)이 아니었다. 그냥 사위였다. 어디에도 없는 역할을 맡은, 그냥 한 사람이었다. 이민자의 치매에는 특별한 슬픔이 있었다. 몸이 떠나온 곳과 기억이 머무는 곳이 서로 다르다는 것. 장모님의 몸은 캐나다에 있었지만 기억은 한국의 어느 장터와 옛집에 머물러 있었다. 어느 날 그것이 나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몸은 캐나다에 있었지만 내 감각의 절반은 한국에 있었다. 된장국 냄새, 민들레 김치의 쌉싸름함, 주위에서 들려오는 한국어. 그것들이 없으면 나는 온전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낮 동안 나는 차가운 영어로 버텨 냈다. 그러나 퇴근 후 마주하는 장모님의 야위어 가는 손을 잡을 때 나는 비로소 사위였다. 우리는 같은 처지였다. 어디에도 완전히 없는 사람들. 장모님이 기억을 잃어 가면서 짧은 영어마저 잃고 한국어만 남긴 것은, 어쩌면 가장 정직한 귀환이었는지도 모른다. 가장 먼저 새겨진 것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다. 한번은 경찰이 장모님을 찾아 순찰차로 집으로 모시고 왔다. 현관 앞에서 젊은 백인 경찰관이 장모님 앞에 쪼그려 앉아 천천히 말을 건넸다. 장모님이 그 얼굴을 한참 바라보시더니 말씀하셨다. “당신 참 잘생겼네.” 경찰관이 나를 돌아보았다. “She says you have a kind face.” 내 통역에 그도 활짝 웃었다. 그러나 그 통역은 반만 맞았다. ‘잘생겼다’는 장모님의 언어에서 낯선 사람에게 경계를 풀 때 쓰는 말이었다. 무섭지만 믿고 싶을 때 건네는 말. 그 결은 어떤 영어로도 옮겨지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새로 개발된 GPS 시계를 구입했다. 장모님의 작은 손목 위에 채워 드리며 창문 너머 뒷마당의 민들레를 바라보았다. 민들레 홀씨는 바람이 데려가는 곳으로 간다. 방향을 거스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 홀씨에 실을 묶으려 하고 있었다. 날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으니, 어디로 날아갔는지만이라도 알려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의 전부였다. 영하의 날씨에 얇은 옷 한 겹만 걸치고 나가신 장모님이 몇 시간 동안 돌아오지 않아 경찰 헬기까지 동원됐던 그 밤이 있었다. 찾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다리가 풀렸다. 순찰차 안에서 장모님은 멋쩍게 웃고 계셨다. 그 웃음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났다. 그때 처음으로 분명히 알았다. 나는 이 분을 사랑하고 있었다. 한번은 지도 위의 점이 오래 멈춘 적이 있었다. 공원 벤치였다. 장모님은 무릎 위에 손을 모으고 앉아 계셨다. 나는 말없이 그 곁에 앉았다. 바람이 불었고, 우리는 함께 풀밭의 민들레 홀씨가 날아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홀씨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로 바람을 탔다. 그러나 결국 땅에 닿으면 뿌리를 내릴 것이다. 어디든 닿는 곳에서. 새벽이면 장모님은 외투를 입고 현관 앞에 서 계셨다. “아들네 호텔에 가야 한다.” 처음에는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기억 속 현실은 논리로 설득되지 않았다. 나는 그냥 곁에 앉아 있었다. 현관 바닥의 찬 공기가 발끝으로 스며들었다. 이 나라에서 내가 경험한 가장 이상한 종류의 친밀함이 그 바닥 위에 있었다. 장모님의 몸은 점점 가벼워졌다. 그러나 침대로 안아 올릴 때마다 더 조심스러워졌다. 무게 때문이 아니었다. 온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몸은 생의 끝으로 갈수록 무게보다 온기가 먼저 느껴진다. 그 온기가 손바닥에 잠깐 머물다 사라질 것 같아 두려웠다. 욕창을 발견한 날이 있었다. 엄지손톱만 한 붉은 상처. 내가 잠든 사이 생긴 것이었다. 그날 이후 두 시간마다 체위를 바꾸는 일이 시작되었다. 내가 출근한 낮엔 아내가 하고, 퇴근 후 밤엔 내가 맡았다. 새벽 두 시, 네 시, 여섯 시. 어둠 속에서 거실로 내려가 조심스럽게 몸을 돌려드리면 장모님이 잠시 눈을 뜨곤 하셨다. 계단을 올라오다 눈물이 차오를 때가 있었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사람이 사람을 돌본다는 것의 가장 오래된 모습과 잠깐 마주친 느낌 때문이었다. 식사는 점점 느려졌다. 밥이 죽이 되고, 죽이 미음이 되었다. 한 숟가락을 삼키는 데 십 분이 걸리는 날도 있었다. 어느 주말 아내가 미음 그릇을 들고 들어가자 장모님이 낯선 얼굴로 바라보셨다. “당신 누구요?” 아내는 굳어 있다가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 나 몰라? 딸!” 그날 밤 아내는 부엌 싱크대 앞에 오래 서 있었다. 물이 넘치고 있었지만 아내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수도를 잠그고 그 옆에 앉았다. 아내가 한참 뒤에 말했다. “엄마 기억 속에서 나까지 지워질 줄은 몰랐어.”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지금까지 아내는 딸이기를 멈춘 적이 없었다. 간병인으로 살면서도, 어머니가 딸의 얼굴을 잊은 날에도. 나는 그냥 곁에 앉아 손을 잡았다. 말이 필요 없는 자리가 거기 있었다. 그리고 어느 봄날이었다. 거실에 앉아 계시던 장모님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나는 말없이 그 곁에 앉았다. 한참 뒤 장모님이 아주 희미하게 웃으셨다.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이 짓는 웃음이었다. 병이 앗아간 것들—이름, 얼굴, 언어, 시간—그 모든 것을 가져간 뒤에도 끝내 가져가지 못한 어떤 것이 아직 당신 안에 있었다. 기억이 사라진 사람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대답을 얻지 못했다. 2022년 겨울, 장모님은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내가 울었고, 처남들이 울었고, 나도 울었다. 12년 동안 고여 있던 시간들이 그제야 천천히 흘러내렸다. 1990년 첫 겨울도 이처럼 눈이 많이 내렸을 것이다. 처음과 끝이 같은 계절의 빛깔을 띠고 있었다. 장례를 마친 뒤에도 한동안 새벽이면 눈이 떠졌다. 이제는 달려갈 방이 없었다.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었다. 간병이 끝난 자리에 남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은 것은 자유가 아니라 낯선 적막이었다. 12년 동안 나를 일으킨 것은 전화벨 소리였고, 문자 진동이었고, 새벽에 방문 열리는 소리였다. 그 소리들이 사라지고 나니, 오히려 그 소리들이 얼마나 나를 살아 있게 했는지를 알았다.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장모님은 떠나셨다. 그러나 봄마다 민들에는 피어났다. 낮게 엎드린 잎새들 가운데 유달리 노란 꽃등을 높이 켜 올린 민들레 한 송이가 오늘따라 유난히 눈에 밟힌다. 나는 한동안 그 꽃 앞에 서 있었다. 장모님이 호미를 들고 웃으시던 그 표정이 떠오른다. 아무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을 찾아내어, 제 것으로 만드는 사람의 표정. 어쩌면 그것이,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린다는 것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바람이 분다. 흔들리던 민들레가 기어이 하얀 홀씨를 멀리 날려 보내고 있다. 이제 나는 그 홀씨를 붙잡지 않고, 다만 그것이 닿을 어느 따뜻한 흙을 상상하고 있다. <끝> 양경춘/토론토 출처 : https://torontokjournal.com/news/42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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