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닭들도 다이어트를 한답니다.”
“살이 많이 찌나 보네요? 그럼 고기가 많아져서 더 좋지 않은가요?” 하면서, 우리는 그저 별 생각 없이 웃었다. 그러나 양계에 관련된 직업을 가진 그분의 나머지 설명을 들으며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장면들을 접하게 되었다.
닭장 속의 닭들은 절대 운동량이 부족하게 마련이다. 운동을 못하면 살이 찌고 너무 살이 찌면 닭들이 갑자기 알을 낳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며칠 굶겨서 체지방이 줄어들어야 다시 알을 낳기 시작한다는 말에, 이제는 닭도 다이어트가 필요한 시대라며 웃었지만 웃음 끝은 허전하고 씁쓸했다.
기계로 부화된 어미 닭들은 처음에는 본능적으로 알을 품지만 부화할 때까지의 시간을 견디지 못해 도중에 포기한다고 한다. 자연 부화된 어미만이 끝까지 자리를 지켜 알을 부화시킨다. 사랑 받고 자란 사람이 사랑도 할 수 있다는 이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미 닭의 사랑을 받고 부화한 닭들은 마음껏 자연식을 먹고 자유롭게 운동하며 평온하게 자란다. 덕분에 성격이 활발하고 인내심도 강하며 의욕적이고 모성애도 지극하다고 한다.
수십 가지의 첨가물이 들어간 사료로 사육된 닭들은 모성애도 책임감도 부족할뿐더러 하루 종일 불을 밝힌 좁은 닭장에 갇혀 자라면서 스트레스를 받아 부정적이고 예민한 성격이 된다. 그 고기와 그들이 낳은 알을 먹는 우리 혈관에도 같은 종류의 피가 흐르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참을성이 부족하고 허약한 젊은 세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우리는 부적절한 동물 사육 방식에서도 발견하게 된다.
‘닭들의 다이어트’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사람은 건강과 미용을 위해 다이어트를 한다. 그러나 닭들에게는 더 많은 알을 생산하기 위한 방편일 따름이다. 생명의 존엄성을 고려한다면 닭들의 삶은 형벌인 셈이다.
하기는 요즈음 그런 운명을 사는 것이 어디 닭뿐일까. 동물만이 아니라 물고기도, 심지어는 과일이나 채소도 인간의 식욕을 채우기 위해 호르몬으로 억지 성장을 강요당하고 24시간 불을 밝혀가며 잠을 재우지 않아 밤낮없이 뜬 눈으로 지낸다.
현대의 채소나 과일은 겉모습은 반듯하게 잘생겼어도 옛날 우리 선조들이 자연에서 햇빛으로 키워낸 제철 먹거리들에 비해 그 영양가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서, 여간 많이 먹지 않고서는 기대하는 효과를 얻기가 어렵다고 한다. 나날이 비대해지는 인간의 탐욕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동식물이 희생되어야 하는 것일까.
비만에 관한 대화를 나누던 중, 아들이 신문에서 읽었다며 기사 한 꼭지를 전해주었다. 개가 비만이 된 죄를 물어, 키우던 개와 주인이 격리조치를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인스턴트 식품을 즐겨 먹던 주인이 자기 음식을 개에게도 늘 나누어주며 함께 먹다가 그만 비만이 된 경우였다.
동물이 지닌 본능보다 한 차원 높은 사고능력과 제어능력을 갖고 있다는 주인도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해 비만이 된 상황에서 개에게 다이어트를 시킬 능력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은, 닭들이 다이어트 하는 경우나 인간 위주로 배합한 사료를 동물들이 먹어야 하는 경우와는 다르다. 우리에게는 취사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고 그로 인해 전혀 새로운 자신의 삶과 운명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앤디 앤드루스는 그의 책 <선택>에서 “너의 선택 하나 하나가 중요하다. 하지만 반대로 네가 하지 않는 선택 하나하나가, 네가 하지 않는 행동 하나하나도, 역시 그만큼 네 삶을 바꿀 것이다” 라고 말한다.
결국 성공한 삶이란 인생의 구비구비에서 수없이 마주치게 되는 선택이라는 갈림의 길목에서 얼마나 지혜로운 선택을 했느냐에 달려있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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