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의 봄 눈

 

 


 그날도 오늘처럼 성긴 눈이 바람에 실려 흩날리고 있었다. 영구차 뒤 편의 문이 열리고 그 앞에 간단한 제사상이 차려졌다. 세월에 부식된 허수아비처럼 다들 넋을 놓고 서 있어서, 손가락으로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날리는 눈발처럼 흩어져버릴 것만 같았다. 3월에 내리는 눈은 서설이라고 위안하며 가슴을 뚫고 올라오는 생각들을 애써 눌러 담았다. 소리 내어 울면 좋은 곳으로 못 가신다는 말을 떠올리며 울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면서도 엉엉 울고 싶었다. 인간의 미화된 말간 눈물이 아닌, 짐승처럼 처절한 울음을 한바탕 토해놓고 나면 소낙비가 쏟아진 뒤처럼 몸도 마음도 후련하고 가벼워질 것만 같았다.  


 평소에도 베개가 없이는 한순간도 머리를 눕히지 못하던 분이었다. 염을 할 때는 베개를 빼내어야 한다는데 한 번 베개 위로 올라가 이미 굳어진 머리는 내려올 줄을 몰랐다. 생을 바꿔가면서까지 그렇게 힘들게 지켜야 할 무엇이 있던 것일까. 꼿꼿이 치켜든 고개 때문에 보통 규격보다 높이가 더 높은 관 속에 몸을 눕혀야 했다. 돌아올 수 없는 먼 길 떠나면서도 살아생전 당신의 올곧은 자존심은 한 치도 낮추고 싶지 않았는지 모른다.


 아버지의 삶이 마지막 문턱에 놓인 상황에서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였다. 숨 쉬는 일조차 힘에 겨워하는 모습에 이승에 붙잡아두어야 할 이유를 더 이상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주렁주렁 매달린 주사약 주머니를 바라보는 일도, 눈물 없이 휠체어를 미는 일도 이미 익숙해 있었다. 어쩌면 지금 이렇게 아버지 등 뒤에서 휠체어를 밀며 함께 있던 순간도 행복했노라고 먼 훗날 회억(回憶)하리라 짐작하면서도, 그 상황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자체가 불경스러워 애써 떨쳐버리곤 했었다. 


 병실 복도에 깔린 침묵 위로 휠체어를 밀고 가며 우리는 각기 다른 생각에 빠져들기 일쑤였다. 그때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나는 차마 묻지 못했다. 혹시라도 그분 입김을 통해 우리 누구도 감당 못 할 ‘죽음’이란 단어에 대한 두려움이 실려 나오면 어쩌나 싶어서, 도망치고 싶은 공포를 잠시라도 못 본 척 외면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아버지 역시 두고 가는 세상에 대해 끝내 침묵으로 말을 접었다. 나는 그때 더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이 못내 가슴에 옹이로 남았다. 


 맨 꼭대기 층에 있는 식당에 올라가 녹차를 시켜놓고 한참을 앉아있곤 했는데, 그때 참으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둘 만의 시간이 주어진 셈이었는데, 죽음의 그림자를 가득 담은 내 눈을 들킬 것만 같아 대화는커녕 아버지 눈을 바로 보기도 두려웠었다. 사십칠 년을 보아온 맏딸의 눈, 언뜻 들여다 만 보아도 무엇을 담고 있는지 단박에 읽어낼 것 같아 아버지 눈과 마주치는 일이 그때는 그렇게 겁이 났었다. 


 “엄만 뭐하니, 엄마 밥은, 니 엄마 잠 좀 자야 할 텐데.” 연신 엄마 타령을 하실 때, 당신 목숨이 경각에 달린 줄을 몰라서가 아니라 어쩌면 두고 갈 아내가 걱정되어 미리 챙기셨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병명을 감추고 있는 내게 희망을 이야기할 때면 차라리 모든 걸 털어놓고 사라져버리고 싶기도 했다. 내가 아플 때는 언제라도 나 대신 아프셨던 분인데 손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견딜 수 없어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주저앉곤 했었다. 


 며칠 있으면 아버지 기일이다. 돌아가시고 벌써 몇 번째 맞는 기일이던가. 내 삶의 줄기에서 아버지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 인생이라는 풀기 어려운 숙제 앞에서는 그분을 불러내어 의논할 일이 더 많아진다. 아직도 함께 풀어가야 할 삶의 과제가 많기만 한데,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아득한 세상에 나 혼자 있다. 어떤 아름다운 것도 끝은 있게 마련이고 아무리 소중한 인연과도 종국에는 이별한다는 것을 미처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해만 지면 살아나는 그리움에 나는 아직도 밤이 두렵다.


 어둠이 자리 잡은 창밖에 눈발이 사납게 흩날리더니 바람이 잦아들면서 비로소 차분해진다. 시간이 치유 못 하는 아픔도 있을까, 세월을 등에 업고 시나브로 슬픔을 삭이며 느린 걸음을 걸어왔다. 이제는 웃으면서 아버지를 말할 수도 있다. 그게 슬픔이든 고통이든 대상이 너무 크면 감히 가슴에서 꺼내지 못하는가 보다. 세월로 오래 녹여내어 작아진 조각들을 최근에야 언어라는 힘을 빌려 하나씩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세월이 못할 일은 세상에 없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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