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way From Her>는 기억력의 파괴로 차츰 인격을 내려놓게 되는 질병인 알츠하이머를 주제로 삼은 영화다. 캐나다의 겨울을 상징하는 끝없이 펼쳐진 눈밭에서 노부부가 스키를 타며 계절을 함께 보내고, 차를 마시고, 책을 읽으며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부부로 정을 쌓아가는 일상을 담담한 스케치로 보여준다. 단조롭고 평범한 생활 속에 담긴 그들 삶의 모습이 지루하다기보다는 평화로운 그림으로 펼쳐진다.
그러나 아내에게 ‘알츠하이머’라는 비정한 바람이 몰아치자 평화롭던 그림이 부분적으로 지워지면서, 기억의 꽃들은 마치 무지개를 헝클어놓은 듯 엉켜버린다. 영혼의 창을 밝히던 불들이 하나씩 꺼짐을 의식한 그녀가 자신을 전문 요양원에 맡겨 달라고 말할 때 망연히 굽어보던 남편의 눈동자를 나는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요양원의 규정상 처음 한 달간 환자가 적응하는 기간에는 면회가 금지된다. 아내와 하루도 떨어져 지내본 적이 없는 그는, 그녀의 체취만 남은 텅 빈 집에서 하루하루를 견딘다. 그러나 ‘한 달’이라는 기간이 아내가 남편의 존재를 기억 속에서 완전히 밀어낼 수도 있는 시간이었음을 누군들 짐작했을까.
놀랍게도 아내는 요양원에서 새로운 남자와 사랑을 키운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를 매일 찾아가 낯설어지는 아내를 지켜보는 그의 인내가 아슬아슬 위태롭다. 자신이 살던 세계를 깨끗이 지워버리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그 병이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 아닌 ‘환자 자신에게도 고통이고 아픔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새로 사귄 연인과 자연스럽게 일상을 함께하는 아내에게 때로는 소외감으로, 때로는 질투심으로 남편은 괴롭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아내가 좋아하던 책을 반복하여 읽어주고 이제는 퇴원한 ‘아내의 애인’을 다시 만나게끔 주선하는 남편의 초인적인 노력 앞에서도 병마는 거만한 웃음을 거두려 하지 않는다.
병세가 깊어진 상황에서 의학적으로 가능한 일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 잠시 기억을 되찾아 “당신은 나를 버릴 수도 있었는데,” 라며 남편을 껴안는 것으로 아픈 사랑을 마무리한다. ‘당신을 만났던 첫 순간 당신의 손에서 전해지던 따스한 촉감을, 진정 내 생애 최고의 순간들이 바로 어제의 일만 같아요’ 하는 ‘Only Yesterday’ 곡이 잔잔한 울림으로 남는다.
온 마음을 다해 서로 정을 키우고 그 못지 않은 운명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온 노부부. 아내의 고통을 고스란히 짊어진 남편의 시각으로 전하는, 젊지 않은 사랑 이야기에 가슴이 아릿하다. 작가는 젊음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젊은 사랑’에서 노부부의 ‘묵은 정’쪽으로 시선을 돌려서 사랑과, 관계와, 함께 가꿔온 시간들을 이야기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할 만큼 차분한 톤으로 한결 같은 사랑을 보여주면서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수렁에 빠진 노부부의 삶이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가능하면 표현을 절제한다.
사람이 살아가며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있는 그대로를 겸허함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운명과 맞서는 강인한 의지력을 발휘할 수도 있고, 신적인 존재에 간절히 의지하기도 할 것이다. 의지로 운명을 꺾을 수 없다는 것쯤이야 모를 나이가 아니지만 그저 묵묵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노년의 뒷모습은 어쩐지 쓸쓸했다.
쓸쓸함을 견디는 일, 그것이 노년이 아닌가 싶었다. 작가는 인간의 원초적인 고통이나 고독은 조바심 치거나 엄살을 부린다고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한없이 작기만 한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하고 의연하게 견디며 화해하는 길임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2015-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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