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작문 연습

 

 

나는 뒷마당 바깥마루(deck)에 파라솔을 펴놓고 야외책상 위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의 작문연습이다 


비가 내릴 참 인가보다. 

아니, 이미 내리고 있다가 그치고 있다. 

처마물 소리가 톡 톡 톡 드린다. 

일기 예보를 보건데 오늘 오후 황혼녘까지는 비가 오락 가락 내리다 말다 할 것 같다. 


마당의 분홍빛 가을꽃 더미에 벌들이 분주히 날으는 것을 보면 구름 짙은 하늘이지만 금방 비가 내릴 것 같지 않다. 


들깨꽃이 피고 있다. 냄새들 중에 들깨 냄새만큼 나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때가 연중의 이맘때이었다. 나는 막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였고, 우리는 그 무거운 M1 소총을 들고 훈련화 발 밑에서는 먼지가 풀석풀석 일어나는 황톳길을 뛰면서 훈련장으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저 만큼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서 한 농부가 들깨단을 뒤집어 놓는 일을 하고 있는데, 풍겨오는 그 들깨 냄새에 나는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왜 눈물이 주르르 났을까? 지금은 다만 기억에 그저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나왔다는 기억뿐이지만, 아마도 집 생각, 어머니 생각, 아니 그 순간에 무거운 총을 들고 뛰는 것이 힘들어서 주르르 흘린 눈물이었을 것이다. 헉헉거리며 한 발도 뛰기 싫은 순간 순간에, 뛰어가라는 명령을 어길 수 없어서 전우들과 함께 뛰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전우들과 함께 뛰어가고 있기에 주저앉지 않고 뛰었을 것이다. 혼자라면 도저히 뛰지 못했을 것이다. 


파라솔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운치 있게 들린다. 거기에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소리와 참새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멀리 차 지나가는 소리가 묘한 조화를 이루어 들린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소리는 처마 홈통을 고쳐야 한다는 신호이다. 홈통에서 물이 새며 떨어지는 소리이다. 


“떨어지는 낙숫물소리”에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서려있다. 군대 제대하고 난 후 시절이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친구 강ㅇㅇ가 “길영아, 오늘 ㅈ대 ㅎㅅ이 강의 듣는데 가자!” 하여 우리는 그 강의실에 갔다. 그런데 그 강의시간에 학생들의 시 발표가 있었고, 그 중의 하나가 “떨어지는 낙숫물소리”였을 것이다. 요지는 ‘낙수소리”라고만 해도 되는데 왜 구태여 “떨어지는”이나 “물”이 들어가도 괜찮을까?였을 것이다. 교수님의 말씀에 그것이 괜찮은 것은 그 시(詩)에서는 운율이 중요시 되기 때문이라고, 하신 것 같다. 하여튼 그런 식으로 내 기억 남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학교 앞 어느 주막에서 술을 마시고…… 

그때 그렇게 친구들과 어울렸던 그 시절이 금조각 보다 더 귀한 보석으로 내 추억의 보고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 가만히 젖어보는 그 시절의 바람에 실려오는 들깨 내음, 최루탄 냄새, 그리고 낙숫물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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