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눈부실 때가 있다. 그것은 비 온 뒤의 5월의 신록일 것도 같고, 수목원에서 하늘로 뻗은 나뭇가지들을 우러러 보았을 때 아프도록 강한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보일 때, 잔잔한 파도가 이는 호숫가 물위로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볼 때 너무도 눈이 부셔서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눈을 가리게 된다. 갓 대학 졸업한 젊은 청년을 바라 볼 때, 신입사원일 것 같아 보이는 의욕에 찬 아침 출근길의 젊은이들의 바쁜 발걸음 속의 싱그런 에너지…
눈이 부시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건만 그때는 물론 몰랐었다. 그저 언제나 고민 많고 웃음 많고, 꿈 많던 누구에게나 그랬던 젊은 날의 초상이 아니었던가. 함빡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휘어질 듯한 나무 가지의 꽃무리 보다 더 눈부신 것은 윤기 나는 초록 잎새들을 자랑하는 숲의 화음이다.
밖은 5월의 신록이건만 도서관에서 책 속에 파묻혀 열중하고 있는 모습도 눈부시다. 젊음이 눈부신 것이다. 젊음이 눈부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은 이미 젊음에서 한 발자욱 뒤로 물러서 있음을 뜻한다. 이제 눈부신 나이에서 슬쩍 비켜서서 보니 그 눈부심은 청춘의 심볼이며 놀라운 팽창과 도약의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그 시기로 돌아간다면?
소설가 박경리는 말년에 이렇게 말했다.
"모진 세월가고.. 아아 ~~ 편안하다.
늙어서 이렇게 편안 한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 가분하다"
그리고 소설가 박완서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안하고 싶은 것을 안 할 수 있어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안하고 싶은 것을 안하고 싶다고 말 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난 살아오면서 볼 꼴 못 볼꼴 충분히 봤다.
한번 본거 두번 보고 싶지 않다.
한번이면 충분하다.
한겹 두겹 어떤 책임을 벗고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을
음미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소설도 써지면 쓰겠지만 안 써져도 그만이다."
이젠 고인이 된 두 작가의 말년의 시를 읽으며 나도 생각해 본다.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가?
내가 첫 손녀를 보았을 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딸이 첫아기를 해산했을 때 마치 내가 아기를 낳는 것처럼 흥분하고 설레었다. 그 순간 나도 다시 시계를 돌려 첫아이를 낳던 젊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은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맘속 깊은 곳에서 고개를 젓고 있는 나를 보았다.
인생 한번이면 족하다. 독신으로 생활을 하는 성직자에게 참 좋겠다고 부러운 듯 말하는 사람을 보면 그 분의 결혼생활이 미루어 짐작된다고 한다. 왜 아까운 세월 혼자 사느냐고 하는 사람이라면 결혼 생활이 아마도 행복한 모양이라고 짐작이 간다고 한다.
그러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 언제나 해가 뜬 화창한 날만 있을 수는 없을 것이고 또 언제나 흐린 날만 있지도 않을 것이다. 은퇴하고나니 어떤 분은 집에서 헐렁한 옷 입고 서성거리다가 앉아 커피 마실 때가 제일 좋다고 말한다. 통근시간에 쫓기느라 아침에 일찍 일어날 걱정 안 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사람도 있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이다.
늙어서 편해지는 것도 많다. 모든 것이 느긋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한 발짝 뒤에 서서 생각할 수 있어진다. 노오랗게 단풍 든 가로수와 떨어져 누운 잎새들을 보면서 조금은 여유를 찾게 되나 보다. 곧 겨울이 오겠지.
“하염없이 내려 쌓인 눈도 봄이 오면 어쩔 수 없이 녹고 만단다. 눈 속에는 언 땅을 뚫고 움터 솟아 올라오려고 애쓰는 안까님이 있단다.”
이렇게 말하고프다. 그리고 다시 또 새들의 날개짓을 부르는 연두빛 봄이 나뭇가지 끝 작은 잎사귀에서부터 돌아오겠지. 그렇게, 그렇게 눈부시게. (2014)
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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