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는 바늘귀 두 개짜리 바늘에 대해 잘 모른다. 아주 오래 전에 잘 아는 분이 내게 준 선물이 있었는데 한 개의 바늘이었다. 선물이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부피가 있을 법한데 바늘 한 쌈이 아니라 달랑 한 개였다. 참 어쩜 이렇게 쩨쩨한 선물이 다 있나 하고 속으로 생각한 내 마음을 아셨는지
“바늘을 여러 개 주면 귀한 것을 모르니까 한 개만 주는 거예요. 이것은 정말 귀한 바늘이예요. 잘 쓰세요.” 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분은 출근길에 만나서 친하게 된 이웃 학교 여선생님이었다. 나보다 스무 살쯤 연상으로 돗수 높은 안경을 쓴 독서광이었는데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 일본어로 된 문학잡지를 빌리는 단 한 명이 바로 그분이었다. 어쩜 그 분을 위해 도서관에서 일본책을 구입하는 지도 몰랐다.
아침 출근 버스 안에서는 언제나 지난 밤에 읽은 책 이야기를 해주었다. 정년을 몇 년 앞둔 그 분은 자기 아파트에는 아무도 초대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나만은 예외가 되었다. 당뇨 때문에 고생이라 때로는 넘어지는 일도 있어서 무릎이 멍들기도 했기에 걸을 때는 내가 옆에서 늘 보살펴드리는 기분이었다.
혼자 사는 그 분께 매일 아침 모닝콜을 해드리고 우리는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같은 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한 정거장 더 가서 그 분의 학교가 있었다. 몇 년을 그러는 동안 우리는 아주 친해져서 맘을 터놓고 비밀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분은 정말 아는 게 많고 사람을 끄는 묘한 화술을 지니고 있었다. 때로는 내게 여러 가지 조언도 해주었다. 옷을 항상 잘 다려 단정히 입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지 말 것이며 외출 후에는 옷을 털어 걸어두어야 한다는 등.
아무튼 내가 그 분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그 분 방에는 항상 그때는 귀했던 원두커피를 끓여 다른 선생님들이 들락거리게 한다고 했는데 이상한 것은 13층에 살던 내가 쪼르르 7층에 있는 그 분의 집에 갈 때가 있었는데 한번도 차라든가 그런 걸 내어놓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마실 것이나 먹을 것을 좀 들고 가곤 하였다. 아마도 내가 가지고 가서 그랬을 것이라고도 생각해 본다.
매번 방학이 오면 어김없이 해외여행을 다녀오셨는데 선물로는 이야기 보따리가 다였지만 어떤 선물보다도 아주 흥미로웠다.
그 분께로부터 받은 눈에 보이는 단 한가지 선물이 바늘이었다. 그 바늘이야말로 정말 오래도록 기억되고 내 생애에 커다란 의미가 있는 바늘이다.
나는 이 바늘을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조침문을 쓴 유씨 부인처럼 바느질 상자에 고이 모셔두고 아이들 떨어진 옷을 꿰맨다든가 떨어진 단추를 달기도 하면서 바느질에 취미를 붙였다.
이 바늘은 특이하다. 바늘귀가 두 개인 것이다. 그 후에 나도 그런 바늘을 구해서 아직 모르는 이에게 한 개씩 나누어주며 잘 쓰라고 똑같이 당부를 하였다. 독일 가는 사람이 있으면 사오라고 부탁도 했다.
그 후에 보니 인도에서도 중국에서도 그걸 만들고 있는데 벨기에제 바늘이 제일 좋았다. 나는 어느덧 바늘 수집가가 된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눈이 나빠진 후에도 바늘귀를 쉽게 낄 수가 있어서 그냥 바늘을 실에 대고 누르면 바늘귀에 쏙 들어가도록 되어서 편리하다고 할까.
바느질을 할 때마다 아끼고 절약하며 살라는 말없는 교훈을 내게 주신 그 분을 떠올린다. 그 분은 내게 바늘 한 개로 많은 지혜를 선물로 주셨던 것이다. 아직도 우리 가족은 그 분을 로사 선생님이라고 추억하고 있다. (2012)
2015-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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