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클로폴리스의 팬던트
액세서리를 별로 걸치지 않는 나지만 여행지에서 별로 비싸지 않은 팬던트를 하나 사서는 때때로 목에 걸고 다니기도 한다.
몇 년 전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남편과 둘이서 트롬이라 불리는 전차를 타고 사흘 동안 시내 구경을 하고 돌아다녔다. 사람들은 트롬 안에서도 교회 앞을 지날 때는 성호를 그었다. 재래시장에서 과일을 사먹어 보기도 하고 수퍼에도 들어가 보고 하노라 발바닥이 아픈 것도 몰랐다.
아클로폴리스 바로 아래에 있는 동네를 기웃기웃 구경하며 다니다가 신기한 것을 발견했는데 타원형의 은으로 세공된 그림에 연하게 칼라를 넣은 것이었다. 아무 데서도 본 적이 없었다. 성모마리아의 모습인데 열쇠고리 용도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아름다웠다. 주인에게 이걸 목에 거는 팬던트로 만들어 줄 수 있느냐고 했더니 그는 흔쾌히 고리를 떼어내고 줄을 맬 수 있도록 고쳐주었다.
실은 그 집에 화장실을 빌리려고 들어갔던 것인데 화장실은 2층의 아주 불편한 곳에 있었지만 쓰도록 해주었기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오는 길에 그 집에서만 볼 수 있었던 신기한 걸 발견하고 친절에 보답하느라 값을 부르는 대로 주고 샀던 것이다. 그 후 내내 목에 걸고 다녔다.
오래 전 여고 졸업 40주년 기념여행에서 40년 만에 만난 친구의 목에 걸려있던 십자가가 새겨져 있는 사각형의 초록색 돌로 된 팬던트가 좋다고 딱 한번 말했을 때 그 친구는 선뜻 풀어서 내 목에 걸어주었던 적이 있었다.
그 친구를 한국 방문길에 찾아갔다.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시골 고택을 지키며 멋지게 살고 있었다. 나는 친구가 차려주는 맛깔진 밥상을 기분 좋게 먹고는 뒷동산으로 올라갔다. 봄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오르는 길에 표고버섯 농장이 있었는데 갓난아기 주먹 같은 표고 하나를 뚝 따서 내 입에 넣어주었다. 향긋한 표고 향기가 입안에 감돈다. 머리칼에 봄눈이 내려와 살폿이 앉았다가 날아간다.
피아노가 전공인 그 친구는 피아노를 칠 때 자기가 아닌 자기 엄마를 본다고 했다. 무언가 친구가 득도한 듯 철학적인 듯한 말을 했다. 어머나 이 애가 그 동안 내공이 많이 쌓였구나.
L.A 에서 나에게 선뜻 팬던트 목걸이를 풀어 주었던 일이 생각났다. 몇 초쯤 망설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회를 놓치면 어쩌나 하고 순간적으로 내 가슴에 있던 아크로폴리스의 팬던트를 빼내어 친구의 목에 걸어주었다. 몸피가 나보다 좀 아담하게 작아서 무거울까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 기억하고 있어. 네가 여러 친구들과 함께 너희 집에 모여 찬송가를 녹음해서 보내주었던 것 잊지 않고 있단다. 그 때 네가 피아노 반주를 했었지?”
그 때 그 노래를 들으며 나는 마구 울었었다. 흡사 미친 것만 같았다. 고마워서 울고 다듬어지지 않은 합창소리가 꼭 내 목소리 같아서 웃고… 또 듣고 또 듣고, 또 울고 또 웃고…
똑 같은 여러 명의 내가 그 노래 속에 있었다. 10여 년 전 그 때 암 투병 중이었던 나. 아우성 속의 친구들의 격려 때문이었던가. 그 후 나는 기적적으로 건강을 되찾았다. 진정 고마운 친구이다.
내 목에 걸려있는 십자가 표시가 있는 초록색 돌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한다. 친구의 목에도 지금 걸려 있을까. 그 아클로폴리스의 팬던트가. (2011)
201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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